제조기업에 재고자산은 '딜레마'다. 다량의 재고는 현금을 묶기 때문에 고민스럽고, 소량의 재고는 미래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또 걱정스럽다. 이 딜레마는 최근 더 심해지고 있다. 공급망 불안정에 따른 원재료 확보의 필요성과 경기침체에 따른 제품 수요의 불확실성이 샌드위치 형태로 기업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벨은 기업들의 재고자산이 재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살펴본다.
OCI그룹은 지주사 체제 전환을 위해 올해 5월 기존 OCI를 OCI홀딩스(지주 존속회사)와 OCI(신설 사업회사)로 분할했다. 태양광을 비롯한 주요 투자 사업을 지주사가 가져갔고 사업회사 OCI는 본업인 화학과 함께 이차전지·반도체 소재 신사업을 담당한다.
신설회사로 새출발한 OCI는 기업가치 상승을 위해 반도체용 폴리실리콘과 이차전지용 실리콘음극재 생산을 준비 중이다. 다만 이들 신사업이 안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만큼 본업인 카본케미칼 부문의 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
올해 유독 석유화학 업황이 좋지 않았던 탓에 카본케미칼 부문의 성장이 정체됐지만 OCI는 설비 정기보수와 판매물량을 연말로 미루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올해 3분기까지 카본케미칼 재고자산도 정체된 상황이지만 절반 이상이 제품 항목으로, 연말 물량 납품 이행으로 재고부담도 상당 부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OCI홀딩스 계열 카본케미칼 재고 정체, 가동률은 상승
올해 3분기 OCI의 카본케미칼 부문 재고자산은 최근 3년 사이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0년 1690억원이었던 카본케미칼 재고자산은 이듬해 2096억원으로 치솟았으나 이번 3분기 말 기준으로는 1574억원까지 떨어졌다.
다만 올해 3분기 수치의 경우 OCI홀딩스 아래에 남아 있는 카본케미칼 사업의 재고자산을 제외한 수치다. 올해 5월 지주 체제 출범 과정에서 OCI차이나, OCI재팬 등 카본케미칼 부문 해외 법인은 OCI홀딩스 산하에 남아있는 상태로, OCI홀딩스로 잡힌 카본케미칼 재고자산(482억원)을 더하면 OCI 계열 전체 카본케미칼 재고자산은 2056억원으로 지난해 말과 큰 차이가 없다.
카본케미칼 부문의 포트폴리오인 카본블랙, 피치 등은 주로 고무, 바인더 등에 사용되는 원재료의 성격을 띤다. 경기침체와 함께 이들 전방산업의 업황이 하향 곡선을 그리는 상황에서 OCI는 카본케미칼 생산 가동률을 높여 선제적으로 재고를 쌓았다. 주요 제품의 가격이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제품 공급 시기를 연말로 미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톤당 973달러이던 피치 가격은 올해 상반기 640달러까지 떨어졌다가 3분기 말 기준 711달러로 올라온 상황이다. 타이어 업체들이 매입하는 카본블랙 원재료 가격 역시 지난해 말 톤당 190만원대에서 3분기 기준 170만~180만원선으로 내려온 상태다.
이에 OCI는 저가에 제품을 팔기보다 고객사 수요에 따라 제품 물량 공급을 연말로 이월하고 대신 가동률을 끌어올려 미리 제고를 쌓았다. 2018년까지 70%대 가동률을 유지하던 카본케미칼 부문은 2019년부터 4년 연속 가동률이 60%대에 머물던 상황이다.
올해의 경우 카본케미칼 가동률을 75%(3분기 말 기준)로 끌어올렸고 이에 따라 재고자산 중 제품 항목이 상반기 말 566억원에서 803억원으로 올라갔다. 같은 기간 다른 항목(상품·원재료·저장품·기타 등)의 수치에 큰 변화는 없었다.
◇정기보수 마무리·해외법인 편입, 카본케미칼 정상화
카본케미칼 사업장 정기보수도 제품 재고를 미리 쌓아야 했던 또다른 배경으로 꼽을 수 있다. 최근 두달(10~11월) 간에 걸쳐 진행된 카본케미칼 사업장 정기보수로 가동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제품을 사전에 생산해 공급 물량을 예정대로 비축한 것이다.
현재 OCI 아래 카본케미칼 사업장은 포항·광양에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사업장 정기보수가 끝나고 내년 초로 예정된 OCI홀딩스 산하 해외법인의 OCI 편입이 완료되면 카본케미칼 부문의 정상화 작업도 마무리된다.
국내 사업장에서 생산된 물량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공급되고 있지만 해외법인의 생산분은 주로 현지에서 소화되고 있다. 이중 OCI차이나의 생산능력(피치 30만톤·카본블랙 8만톤)이 가장 크며 OCI재팬의 경우 주로 판매 및 원료 소싱에 주력하는 법인이다.
OCI는 신주를 발행해 현물출자 방식으로 OCI홀딩스가 보유한 OCI차이나(지분율 100%·1164억원), OCI재팬(지분율 100%·23억원) 등의 지분을 확보할 계획이다. 법원의 인가를 거쳐 내년 1분기 중 편입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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