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세아상역과 한세실업은 세계 최대 의류 OEM, ODM 업체 중 하나로 꼽힌다. 두 업체 모두 전 국민이 힘들었던 1980년대에 태동했다. 에너지나 천연자원은 없고 잘 살고자 하는 의지만 넘쳤던 시절 노동집약 사업인 의류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인건비가 낮았던 덕분에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고속성장기를 지나고 있었고 의류 OEM 업체들은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해외로 눈을 돌려야만 했다.
해외진출은 위기이자 기회였다. 전 세계 곳곳에 공장을 건설해 생산능력을 빠르게 키운 덕분에 글로벌 유명 브랜드 바이어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국내에서 쌓은 경험과 기술력과 함께 큰 시너지를 냈기 때문이다.
◇ 업계 최초 ODM 도입한 세아상역, 업계 선두주자로
글로벌세아그룹의 역사는 30여년 전 시작됐다. 1951년생인 창업주 김웅기 회장(사진)은 전남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36살이던 1986년 그룹 모태인 세아상역(구 세아교역)을 설립했다. 세아상역은 의류 OEM 업체로 국내외 패션 브랜드로부터 일감을 수주받아 의류를 생산, 납품하는 사업을 전개했다.
1980년대 당시 의류 제조업계에서 OEM 방식으로 의류를 생산하는 업체는 거의 없었다. 있더라도 소규모 생산에 그쳤을 뿐 대규모 생산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기였다. 김 회장은 섬유업체인 대봉산업과 충남방적에서 근무하던 시절 OEM 방식의 대규모 생산을 고안한 뒤 세아상역을 창업했다.
창업 초기부터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수주를 받은 세아상역은 매년 최대 매출액을 경신하며 승승장구했다. 창립 첫 해 46만달러였던 매출액은 2년 만에 764만달러로 증가했고 10년째인 1996년에는 2363만달러로 껑충 뛰었다. 이에 한세실업은 1997년 미국 현지에 법인을 설립해 북미, 유럽 등 세계 각지로 영업 영토를 늘려나갔다.
이듬해인 1998년에는 과테말라에 공장을 설치해 생산캐파를 빠르게 늘렸다. 이후 2000년 니카라과, 2004년 인도네시아, 2005년 베트남에 각각 의류 생산시설을 설립해 중미, 아시아 등 대륙별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세아상역은 업계 최초로 ODM 방식을 도입한 회사기도 하다. 김 회장은 바이어로부터 오더를 따내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고안한 디자인 제품을 거꾸로 고객사에 제안했다. 그 덕분에 세아상역은 의류 ODM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세아상역은 또 업계에서 가장 먼저 해외 생산기지를 수직계열화한 업체다. 전 세계 곳곳에 OEM, ODM 공장을 세운 데 이어 인도네시아엔 원단 생산 회사를, 코스타리카엔 원사 생산 업체를 설립했다. 원사에서부터 원단, 봉제, 포장까지 의류생산 전 과정을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수직계열화가 이뤄지면 가격과 품질, 납기에서 차별화가 가능하다.
세아상역은 사업 다각화를 통해 사세를 빠르게 키워나갔다. 2007년 인디에프를 인수해 의류 OEM·ODM에서 패션사업으로 영역을 넓혔고 2018년엔 세아STX엔테크를 품어 플랜트사업에 진출했다. 이어 2020년 제지·포장사업(태림 포장, 테림페이퍼), 2021년 친환경 수소에너지사업(발맥스기술), 2022년 건설사업(쌍용건설) 및 외식사업(르쏠) 등을 잇따라 인수해 지금은 1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 그룹으로 성장했다.
◇ 한세실업, 발빠른 해외진출로 고속 성장
한세실업의 태생은 세아상역보다 빠르다. 1945년생인 창업주 김동녕 회장(사진)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경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교수와 창업을 고민하다 ‘의류를 수출해 국가에 헌신하자’는 목표로 1972년 의류 제조·생산 회사인 한세통상을 세웠다.
의욕은 넘쳤지만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일이 잘 풀리는 듯했지만 1979년 제2차 오일쇼크로 자금줄이 막혀 부도를 겪었다. 김 회장은 전열을 정비한 뒤 1982년 한세실업을 설립했다.
한세실업은 경기 부천에 위치한 작은 의류공장에서 OEM 사업을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곧바로 미국 거래처도 확보할 수 있었다. 한세통상 시절 김 회장의 성실성과 꼼꼼함을 기억하던 바이어들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세실업은 K마트와 월마트를 시작으로 점차 거래처를 늘려나갔다.
수주량이 늘어난 덕분에 해외 생산기지 건설도 빠르게 이뤄졌다. 창립 6년 만인 1988년 사이판에 첫 해외법인을 설립했다. 이어 1991년과 1996년 제2공장과 제3공장을 세우며 생산능력을 확대한 뒤 니카라과 현지법인을 인수하며 중남미 지역에도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2000년에는 베트남에 대규모 공장을 설립하기로 하고 아시아 대륙 생산기지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2001년 베트남 첫 법인 한세VN에 이어 2005년 한세TN, 2010년 한세TG 등 총 3개의 공장을 세워 최대 생산기지를 확보했다.
이외에도 2004년 중국(청도한세), 2005년 인도네시아(KBN) 및 과테말라, 2007년 캄보디아(캄보한세) 등 법인을 세우며 전 세계 8개국 25개 법인 및 10개 사무소를 운영하는 업체로 성장했다.
한세실업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중남미 수직계열화’를 꼽고 관련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남미 지역에 원단 복합단지를 설립해 ‘염색 및 가공→원단 중개→봉제 및 제조’로 이어지는 공정을 한꺼번에 수행한다는 계획이다.
중남미 지역은 대형 바이어들이 있는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좋고 카프타(CAFTA·중미자유무역협정) 관세 혜택이 있다. 또 각국 정부가 의류 제조 인프라 투자에 적극적이다. 한세실업은 2026년까지 과테말라 미차토야 지역에 3억달러(약 3960억원)를 투자해 친환경 방적·편직·염색 생산설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한세실업도 의류 제조업을 기반으로 다양한 이종산업에 발을 뻗쳤다. 2003년 인터넷서점 업체 예스24를 인수해 온라인사업에 진출했다. 이어 2011년과 2016년 각각 유아동복 업체와 성인복 업체를 인수해 한세엠케이로 통합하고 패션사업을 본격화했다. 2014년에는 동아출판을 인수해 예스24와의 시너지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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