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초도발행에 도전하는 SK온이 발행계획을 수정했다. 당초 이사회에서 3000억원 규모로 찍는 방안을 결의했지만, 모집액을 2000억원으로 축소해 기관 투자수요를 파악해보기로 했다.
최근 금리 압박과 더불어 LG에너지솔루션 등 경쟁사에 비해 낮은 신용등급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증액 한도도 최대 5000억원이 아닌 4000억원으로 조정했다. 기관투심을 사로잡기 위해 ESG채권으로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회사채 발행환경 악화 감안
SK온은 증권신고서를 통해 오는 24일 2000억원 규모로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트랜치별로 2년물 800억원, 3년물 1200억원을 모집한다.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4000억원까지 증액 가능성을 열어뒀다.
조달 추진안은 당초 계획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달 22일 이사회 안건에 올라왔던 발행 예정 금액은 3000억원이었다. 추후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5000억원까지 증액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해당 안건은 참석 이사회 위원 8명의 전원 만장일치 찬성으로 가결된 바 있다.
다만 이사회 가결 이후 금융시장 상황을 고려해 최초 신규 발행 금액을 조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크레딧 스프레드(회사채와 국고채간 금리차)가 확대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에 국채금리가 급등세를 나타내자, 국내 채권 금리도 상향 압력이 높아진 탓이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유동성이 떨어지는 회사채의 투자 수요가 감소하는 점을 감안하면 크레딧 스프레드가 확대될 여지가 높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은행채·여전채 발행 물량까지 늘어나면서 회사채 약세를 부추키고 있다. 올해 딜클로징을 앞두고 회사채 발행을 준비 중인 기업들의 희비가 갈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시장 변동성에 에코프로비엠 등은 발행 자체를 취소하기도 했다"며 "현 시점에서 조달에 나서는 발행사들은 투자수요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곳들"이라고 말했다.
◇순차입 급증, 크레딧 매력도 반감
SK온의 조달금액 변경은 신용등급을 의식한 조치로도 풀이된다. 금리상승 기조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A+' 크레딧으론 조달비용 측면에서 부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다. 지난 6월 기업신용평가(ICR)에서는 신용등급과 아웃룩 'AA(안정적)'를 받았지만, 회사채(SB)등급은 'A+(안정적)'를 받았다.
경쟁사 신용등급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회사채 등급이 'AA'이며, 포스코퓨처엠은 'AA-'다. 신용등급이 더 높은 포스코퓨처엠의 경우 지난달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아쉽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 1500억원 모집액을 초과하는 6800억원 규모의 매수주문을 받았었지만, 개별민평금리에 비해 상단에서 투자수요가 몰렸던 탓이다.
지난달 SK온이 신용평가사 3사에 회사채 등급평정을 의뢰할 때부터 크레딧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신용평가업계 한 관계자는 "SK온은 같은 2차전지 업종인 LG에너지솔루션이나 포스코퓨처엠과 비교했을 땐 차입금 등 재무비율이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고, 수익성 측면에서도 여전히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SK온은 올해 상반기 지출 비용이 5조원에 달했다. 자본적지출(CAPEX)은 4조8087억원을 기록했다. 모회사 SK이노베이션(5조5643억원)의 86%가 SK온 몫이다. SK온의 상반기 투자 규모는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중 가장 많은 규모다.
다만 투자가 영업활동 현금흐름 부재 속에서 진행됐던 대규모 투자라 향후 재무구조 관리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상반기 현금흐름표에 따르면 현금성자산은 3조2177억원에 무려 1조9567억원 가량 순차입을 일으킨 모습이다. 배터리 사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나, 외부투자재원 의존도가 큰 편이다.
이에 비해 LG에너지솔루션은 1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이 대규모 투자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삼성SDI도 영업현금으로 벌어들인 현금 내에서 투자를 진행하는 기조다.
◇녹색채권으로 ESG 민감한 '기관 투심' 노린다
SK온이 첫 회사채 발행 흥행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택한 방안은 '녹색채권' 전략이다. 글로벌 전반적으로 ESG경영, 탄소중립에 대한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녹색채권에 대한 기관 투자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과 포스코퓨처엠도 모두 녹색채권으로 발행해 흥행에 성공한 바 있다.
녹색채권 지정 배경은 조달자금 활용처가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위한 공장 건설이라는 점이 인정되서다. 녹색채권은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프로젝트나 인프라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전기차는 온실가스 감축 등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SK온은 이번 회사채 조달 자금을 모두 블루오벌SK 설립 지원에 활용할 방침이다. 블루오벌SK는 SK온이 완성차 업체인 포드와 손잡고 지난 7월 북미에 설립한 합작사다. 현재 켄터키주와 테네시주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신용평가업계도 2차전지 성장세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비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사는 "작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자동차 시장 충격에도 전기차 판매량은 63% 이상 증가했다"며 "2차전지 생산업체의 증설도 가속화되고 있어 2차전지 시장의 성장세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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