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감사 활동은 크게 업무감사와 회계감사로 구분된다. 이 중 회계감사는 회계전표와 계정원장, 재무제표 등이 정확하고 타당한가를 판단한다. 이러한 활동은 회사의 내부감사기구인 감사위원회가 주로 담당한다.
상법에서 감사위 내 재무·회계 전문가를 1인 이상 선임하도록 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회계 감사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감사위의 회계 전문성과 더불어 분식회계 또는 부실 감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기업에 따라 감사위 소속 재무 전문가 구성 등 세부적인 차이는 존재하지만 그 수는 점진적으로 늘고 있으며 이사회 내 영향력도 점차 강화되는 추세다.
◇감사위원회 도입과 회계 투명성 국내 감사위원회 제도는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도입됐다.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동시에 기존 감사제도의 문제점을 보안해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게 골자였다. 당시 감사는 임시주주총회 소집청구권 등을 보유하고 있어 기업 내 영향력은 강력했다. 하지만 대주주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이는 경영 감시 기능의 부재로 이어지기도 했다.
1999년 대규모 상장법인에 대한 감사위 설치가 의무화되면서 관련 제도는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사외이사제도 도입이 함께 이뤄지면서 감사의 독립성도 확보했으며 이는 다수의 사외이사로 운영되는 영미식 감사위 제도의 안착을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2018년에는 외부감사법 개정으로 외부감사인을 직접 선정하고 회계처리기준 위반이 발견된 경우 이를 조사하고 보고하는 의무를 가지게 됐다.
제도 도입 이후 24년이 지난 현재 감사위는 내부감사기구로서의 역할과 권한, 독립성 등이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해 체계를 갖춘 상태다. 최근 사업연도 말 기준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이면서 상장사일 경우 감사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감사위 구축 대상일 경우 재무·회계 전문가도 의무적으로 선임해야 한다.
자산총액이 1000억원 이상인 상장사 경우에는 상근감사를 두거나 감사위를 설치할 수 있다. 상근감사 대신 감사위를 구축할 경우 재무·회계 전문가를 선임해야 한다. 자산총액이 1000억원 미만인 상장사와 자본금 총액이 10억원 이상인 상장사 또는 비상장사는 원칙적으로 감사를 선임해야 하지만 감사위를 구성할 수도 있다.
다만 자산 1000억원 미만 상장사 등이 감사위를 설치하는 경우에는 재무·회계 전문가를 의무적으로 선임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회계 등의 전문 경력이 있는 인사로 구성하면 된다.
◇감사위 '재무 전문가' 요건은 감사위 내 재무전문가를 1인 이상 두도록 법으로 정해두는 이유 중 하나는 회계감사 본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이들이 분식회계와 부실 감사, 재무건전성 제고 등 감독 기능 강화에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재무·회계 전문 감사위원은 기업공시서식 작성 기준에 따라 크게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우선 제1호 유형으로 공인회계사 자격을 보유한 사람으로서 그 자격과 관련된 업무에 5년 이상 종사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제2호 유형은 회계와 재무 분야에서 석사학위 이상의 학위를 취득한 사람 중 연구기관(대학 포함)에서 관련 분야의 연구원이나 조교수 이상으로 근무한 합산 경력이 5년 이상인 경우다.
상장사에서 재무·회계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기간과 임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5년 이상 또는 임직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10년 이상인 사람은 제3호 유형에 해당한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한국은행법'에 따라 한국은행에서 재무·회계 관련 업무나 이에 대한 감독 업무에 근무한 합산 경력이 5년 이상인 사람은 제4호 유형이다.
부가적으로 감사위원회 모범규준은 법에서 요구하는 자격과 경력 이외에도 추가적인 자격을 권고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재무제표 작성에 적용되는 회계기준과 회계감사, 내부통제, 리스크관리 등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다.
◇활동성과 영향력은 재무·회계 전문가로 활동하는 감사위원의 실질적인 역할과 수행 능력, 성과 등을 정량화된 지표로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실질적인 의사결정 과정 등을 세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감사위 내 재무·회계 전문가의 비중과 감사위원장 또는 이사회 의장, 감사위 외 소위원회 위원장 여부 등을 통해 이들의 활동성과 영향력 등은 일정 수준 가늠해 볼 수 있다.
우선 재무·회계 전문가가 감사위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실제 삼정KPMG가 코스피200 기업 감사위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감사위 내 재무·회계 전문가 비중은 최근 5년 동안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8년의 경우 20.8%였지만 이듬해 38.5%까지 증가했고 작년 말 기준으로는 41.2%를 기록했다. 감사위 내 평균 숫자는 2018년 0.7명에서 2022년 1.4명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유형별로는 재무·회계 분야 학위를 보유한 2호와 금융기관 등 경력자로 분류되는 4호가 많았다. 2호 유형의 경우 작년 말 기준으로 36.7%를 차지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4호 유형은 34.4%로 뒤를 이었다. 두 유형의 합산 비중은 71.1%에 달했다. 나머지 1호(회계사)와 3호(상장사 회계 등 경력자) 유형은 각각 23.9%와 5%를 기록했다.
감사위 내 재무·회계 전문가는 비중뿐만 아니라 이사회 내 활동성 측면에서도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는 게 재계 평가다. 최근 들어 재무·회계 전문가가 감사위원장과 더불어 이사회 의장과 감사위 외 소위원회 위원장까지 맡기는 경우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추세는 삼성그룹과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포스코그룹 등 국내 상위 대기업 집단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삼성과 SK는 재무·회계 전문 감사위원을 이사회 의장으로까지 선임하고 있다. 특히 SK그룹의 중간지주사 SK스퀘어는 올 상반기 기준으로 4명의 감사위원 전원을 재무 등의 전문가로 구성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투명경영위원회와 지속가능경영위원회, 리스크관리위원회 등의 위원장을 함께 담당하는 게 특징이었다. LG와 포스코 2개 그룹은 감사위원장을 모두 재무 전문가에게 맡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