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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주식에 투자하기 유난히 위험한 달이죠. 그밖에도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겠군요." 마크 트웨인의 저서 '푸든헤드 윌슨(Puddnhead Wilson)'에 이런 농담이 나온다. 여기에는 예측하기 어렵고 변덕스러우며 때론 의심쩍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주가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상승 또는 하락.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면 주식시장은 50%의 비교적 단순한 확률게임이다. 하지만 주가는 기업의 호재와 악재, 재무적 사정, 지배구조, 거시경제, 시장의 수급이 모두 반영된 데이터의 총합체다. 주식의 흐름에 담긴 배경, 그 암호를 더벨이 풀어본다.
◇How It Is Now SK바이오팜 주가는 일 년 새 두 배 이상 뛰었습니다. 지난해 10월 14일 52주 최저가 5만900원을 기록한 이후 지속해서 상승했습니다. 지난 8월 10일엔 장중 10만3000원까지 치솟으며 52주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 현재 주가는 고점 대비 다소 조정을 받은 상태로, 8만원대를 소폭 웃돌고 있습니다.
SK바이오팜은 2011년 지주사 SK의 라이프사이언스 부문을 물적분할해 출범했습니다. 공모주 광풍을 불러일으킨 주역이기도 합니다. 코스피에 입성한 건 2020년 7월. SK그룹 계열사라는 후광에 더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신약 두 개를 보유했다는 점을 인정받으며 증시에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상장 당시 공모가액은 밴드 상단인 주당 4만9000원이었습니다.
상장 직후 상한가 행진을 벌였습니다. 시초가액이 공모가액보다 두 배 높게 정해진 뒤 3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달성하며 '따따따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습니다. 상장 5거래일째 21만7000원에 장을 마치면서 역대 최고가를 세웠습니다. 이어 두 달가량 19만원대 전후를 유지했습니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당해 연말부터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역대급 공모 흥행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주가는 상장 8개월 만에 시초가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이후에도 줄곧 우하향 곡선을 그렸습니다. 이랬던 SK바이오팜이 지난해 말부터 반등하기 시작한 겁니다.
◇Industry & Event 주가 상승을 견인한 건 단연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입니다. 국내 기업으로선 SK바이오팜이 처음으로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품목허가 획득까지 신약 개발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약물입니다. 지난 2019년과 2021년 각각 미국과 유럽 규제당국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SK바이오팜은 세노베메이트 미국 출시 시점부터 직접판매(직판)에 나섰습니다. 직판을 하면 수익성을 대폭 개선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국내 기업의 의약품 해외 직판은 '불가능의 영역'이란 인식이 강했습니다. 국가에 따라 보험, 약가제도, 유통 구조 등이 달라 전문 인력과 노하우가 필요한 데다 초기 직판 체제를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도 어마어마한 탓입니다.
소수 전문의만 처방이 가능한 뇌전증 치료제의 특수성을 활용하면 충분히 직판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미국 뇌전증 전문의는 약 1만명, 뇌전증 전문센터는 200여곳에 불과합니다. 비교적 적은 수의 영업사원만으로도 미국 전역에서 영업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미국에 100% 자회사를 설립하고 권역별 담당 세일즈 디렉터를 채용하며 영업망을 확보했습니다.
올해 들어 직판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2분기 세노바메이트 미국 매출은 분기 역대 최대폭 성장을 이루며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상반기 누적 매출은 1173억원이었습니다. 작년 한 해 벌어들인 1692억원의 70%에 육박하는 매출을 2분기 만에 달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연내 손익분기점(BEP·수익과 비용이 같아지는 지점) 달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시장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는 분석입니다.
여기에 최근 발표한 중장기 성장 로드맵도 주가 상승의 원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이사(사장)이 7월 기자간담회에서 장기적인 지향점과 세부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성장·수익성' 두 마리 토끼 잡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궁극적으로 2026년 150억달러(약 20조원) 기업가치를 지닌 글로벌 '빅 바이오텍'으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도 제시했습니다.
이 사장은 세노바메이트 미국 매출로만 2032년까지 4조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직판 체제가 안착한 만큼 BEP를 넘긴 뒤부턴 대부분 매출이 수익으로 잡힌다는 설명입니다. 이를 재원으로 추가 성장동력을 장착하겠다는 계획도 내놨습니다. △표적단백질분해(TPD) △방사성의약품 치료제(RPT) △세포유전자치료제(CGT) 등 차세대 플랫폼을 도입해 세노바메이트 의존도가 높다는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겠다는 구상입니다.
이와 관련 구체적인 움직임도 보였습니다. 7월 미국 소재 TPD 기업 프로테오반트 사이언스를 인수하고 계열 내 최고(Best in Class)·계열 내 최초(First in Class) 신약을 개발 중입니다. RPT의 경우 이미 그룹 차원에서 확보한 방사성 동위원소가 있다는 점을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웠습니다. 지난달 국내 최고 방사선의학 전문 연구기관과 손을 잡으며 본격적으로 연구개발(R&D)에 뛰어들었습니다.
◇Market View 증권가에선 SK바이오팜 주가가 추가적으로 상승할 여력이 있다고 전망합니다. 최근 나온 레포트를 정리해 보면 모든 애널리스트가 매수를 권하는 투자 의견을 냈습니다. 목표가는 증권사별로 10만5000원부터 13만원까지 분포해 있습니다. 이들 리포트의 평균 목표가는 11만9546원입니다. 16일 종가 80900원보다 48%가량 높은 금액입니다.
우선 세노바메이트의 장기 성장성에 대해선 이견이 없는 듯 보입니다. 꾸준히 쌓이는 트랙레코드와 엔데믹에 따른 대면 영업 강화로 향후 미국 시장에서 더욱 가파른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처방수가 증가하면서 원가율이 감소, 내년부터 이익 창출력이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태기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세노바메이트의 확장성에 주목했습니다. 하 연구원은 "SK바이오팜이 미국 마케팅 전략에 변화를 줘 기존 뇌전증 전문의 중심에서 정신과전문의 시장으로도 확대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미국 성장률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고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면 장기적으로 전 세계 시장으로 매출이 확산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위해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TPD 기반 신규 항암제에 대한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위 연구원은 "TPD 기술은 소분자화합물 발굴 역량이 핵심"이라며 "수면장애 치료제(수노시)와 뇌전증 치료제(세노바메이트) 개발로 다져진 SK바이오팜의 소분자화합물 전문성을 확장하기에 적합하다"고 설명했습니다.
◇Keyman & Comments SK바이오팜은 올 초 수장 교체라는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1월 조정우 전 대표 체제에서 이 대표 (
사진)체제로 전환했습니다. 조 전 대표는 세노바메이트 개발과 허가·출시를 이끈 R&D 전문가입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금호석유화학 금호생명과학연구소 등을 거쳐 SK그룹 디스커버리랩장, 신약개발사업부장 등을 맡았습니다.
반면 이 대표는 투자 전문가로 꼽힙니다. 삼정KPMG 투자자문 전무이사, 동아쏘시오홀딩스 대표이사 부사장, 동아에스티 글로벌사업담당 부사장 등 역임 후 2019년 SK그룹에 합류했습니다. 2020년엔 SK 바이오투자센터장 부사장을 맡아 다수 바이오 투자를 성사시켰습니다. SK팜테코의 프랑스 이포스케시 인수와 미국 CBM 지분 투자 등도 그가 진두지휘했습니다.
이 대표 취임을 기점으로 SK바이오팜의 성장 전략에 변화가 나타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전까지 세노바메이트 인허가와 시장 안착에 쏠려 있던 무게추가 포스트 세노바메이트 시대를 위한 투자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시각입니다. 이에 따라 대규모 M&A 등이 한층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점쳐집니다.
특히 그는 '현장 경영'을 중시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요즘도 미국을 수시로 방문해 영업 직원을 직접 교육하고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더벨과의 만남에서 "미국 영업 직원과 그들의 가족 구성원까지 전부 파악하고 있을 정도로 현장을 지원하고 있다"며 직판 성공의 비결을 귀띔했습니다. 세노바메이트의 성장 가속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도 눈길을 끄는 인물입니다. 최 팀장은 올해 출범한 혁신신약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앞서 3월 SK와 SK바이오팜은 유망한 바이오벤처나 기술에 대한 투자 협력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 TF를 결성했습니다. 중장기 성장전략 관련 굵직한 결정이 TF에서 이뤄졌습니다. 최 팀장이 RPT 플랫폼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입니다.
신약을 향한 열정과 야망. SK바이오팜은 꽤 진심인 모습입니다. 지난해 R&D 비용으로만 매출의 58% 이상을 쏟았다는 점이 그 방증입니다. 국내 제약사 평균 매출 대비 R&D 비중이 약 10%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편입니다. 올해 R&D 조직도 가다듬었습니다. 신약개발부문 산하에 있던 신약개발사업부를 최고경영자(CEO) 직속 조직으로 격상했습니다. 기술이전과 임상, 인허가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입니다.
물론 과도한 기대는 경계해야 합니다.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TPD·RPT·CGT 모두 이제 막 개화하기 시작한 분야입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데다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시장을 선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개발이 어려운 분야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남들이 선택하지 않았다는 길을 선택한 SK바이오팜의 여정은 어떤 결말을 가져올까요. 국내에서 시총 20조 빅 바이오텍이 탄생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