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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er Match Up남양유업 vs 매일유업

60년지기 라이벌, 10년 전 엇갈린 운명

①[출범과 성장]'본업 주력 vs 다각화', 유업계 위기 속 신사업 역량 '부각'

서지민 기자  2023-10-12 11:18:42

편집자주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한국 낙농업과 유업의 발전은 현재의 3대 유업체가 싹을 틔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모지였던 1960년대 국내 유가공시장에서 맨손으로 시작한 서울우유협동조합과 남양유업, 매일유업은 생산시설 구축과 젖소 수입부터 시작해 유제품 시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은 수십년간 성장하는 과정에서 오너일가 중심의 가족경영, 분유 수출 선도, 제품 다각화 등 여러 면에서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팽팽한 경쟁구도를 형성했다. 실향민 출신 창업주에서 그들의 장남으로 승부가 이어졌고 2009년 나란히 매출 1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3년 일어난 남양유업의 대리점 갑질 사건을 기점으로 50년지기 라이벌의 운명이 엇갈렸다. 불매운동으로 남양유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이 매일유업이 주력 제품군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나선 사업 다각화가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남양, 국내 첫 조제분유 출시로 유가공 품목 선두 이끌어

남양유업은 1964년 설립됐다. 홍두영 명예회장이 해외 출장에서 선진국의 분유 사업을 본 후 국내로 돌아와 유가공 시장에 뛰어들었다. 낙농업 발전을 통해 1960년대 가난했던 농촌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마음에서였다.

매일유업은 1969년 김복용 선대회장과 농어촌개발공사가 민간합작으로 설립한 한국낙농가공이 전신이다. 1971년 김 명예회장이 한국낙농가공을 인수하면서 매일유업을 설립했다. 남양유업과 마찬가지로 우유와 분유, 발효유 등 유제품을 중심으로 사세를 키워나갔다.

두 기업 간 경쟁에서 처음 주도권을 쥔 건 선두주자인 남양유업이다. 남양유업은 1967년 국내 첫 조제분유인 남양분유를 출시했다. 당시 국내에는 우리나라 아기들의 체질에 맞지 않는 일본산 탈지분유와 미국산 조제분유가 전부였고 이마저도 가격이 비싸 일반 소비자들이 구매하기는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양분유의 성공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남양유업은 ‘우량아 선발대회’를 열며 대표 분유 기업으로 시장에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1974년 매일유업도 첫 조제분유를 출시했으나 충성도가 높은 분유 시장에서 이미 전국적 브랜드로 자리잡은 남양분유를 따라잡기는 힘들었다.

남양유업은 분유 업계에서의 압도적 지위를 기반으로 1978년 유업계 최초로 기업공개를 진행하고 성장가도를 달렸다. 1980년대 공주공장과 경주공장을 연이어 짓고 1989년 로젠하임 치즈, 1991년 불가리스, 1994년 아인슈타인우유 등을 출시하면서 제품 품목을 늘렸다.

매일유업도 공격적으로 외형을 키우면서 경쟁사 추격에 나섰다. 1989년 요구르트 공장, 1990년 치즈 공장을 설립하고 우유, 발효유 등 유가공 제품을 출시했다. 그러나 우유 시장에서는 서울우유, 그 외 시장에서는 남양유업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점유율 경쟁에서 밀려났다.

◇매일, 불가피했던 사업다각화로 유업계 위기 속 빛 봤다

매일유업은 유가공 제품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업 다각화를 선택했다. 2001년 와인 전문 자회사 레뱅드매일을 세우고 이탈리아의 아트사나와 판매 계약을 맺어 출산 · 유아용품 판매 사업에 진출했다. 2009년에는 카페 ‘폴바셋’을 론칭하고 자사 우유를 사용한 아이스크림과 프리미엄 커피를 선보였다.

과감한 투자로 신규 사업을 빠르게 전개한 매일유업의 경영 스타일은 2000년대 후반 우유 시장이 정점을 찍고 내수 시장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경쟁사들이 음료사업 비중을 늘리는 등 수익구조 재편에 고심할 때 가장 앞서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남양유업도 생수시장, 탄산수 등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섰으나 본업 외 사업을 최소화하려는 창업주의 고집과 더불어 2013년 대리점 갑질 사건으로 인한 불매운동 등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신사업에 힘을 쏟지 못했다. 카페 사업도 매일유업보다 약 5년 늦은 2014년에야 백미당을 론칭하면서 발을 들였다.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의 경영 실적은 2013년부터 역전되어 점차 격차가 벌어졌다. 이러한 흐름에 직격타를 날린 건 매일유업이 2018년 출시한 성인영양식 브랜드 ‘셀렉스’다. 셀렉스는 국내 단백질 식품시장을 개척한 제품으로 꼽히며 매일유업이 건기식 사업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듬해 남양유업이 같은 성인영양식 ‘하루근력’을 출시하며 맞불을 놓았다. 그러나 셀렉스가 연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는 브랜드로 클 동안 남양유업의 하루근력은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으면서 시장 안착에 실패했다.

출생아 감소와 우유 소비 침체로 유가공 산업의 위기감이 매년 높아지는 가운데 사업다각화에서의 적극성 차이가 매출을 가르는 요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시장 관계자는 “앞으로 신사업 역량이 유업계 회사들의 생존에 더욱 주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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