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이 최대 3000억원의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 AA0의 우량한 크레딧을 보유하고 있지만 최근 증권채에 대한 시장의 선호가 높지 않은 상황이라 흥행 여부는 미지수다. 고금리 장기화 전망이 커지며 증권사의 부동산 프로젝트금융(PF)관련 리스크가 대두하고 있는 상황이다.
쉽지 않은 시장 상황이지만 회사채 발행을 추진하는 건 금리 전망이 밝지만은 않아서인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 상반기에도 금리 인하기조가 나타나지 않을 것에 대비해 발행에 나선 셈이다. 다만 현재 대규모 발행이 절실하진 않은 만큼 증액에는 보수적으로 접근 할 전망이다.
◇ AA급 ‘언더발행’ 잇는데 증권채는 ‘오버금리’ 만연 한국투자증권은 오는 17일 납입을 목표로 회사채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모집금액을 1500억원으로 설정하고 트랜치를 2·3년물로 나눠 오는 10일 수요예측을 실시해 발행금액과 금리를 결정한다.
국내 최고 수준의 시장지위를 가지고 있는 증권사이자 AA0급의 우량한 등급을 가진 만큼 모집금액 이상의 수요를 모으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투자자들이 최근 증권채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런 금리 수준을 책정받기는 쉽지 않을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회사채 시장에서 증권채는 상대적으로 디스카운트를 받고 있다. 최근 미래에셋증권(AA0)과 한국금융지주(AA-) 등이 개별민평대비 높은 수준에서 모집금액을 채웠다. 지난 5일 수요예측을 치른 현대백화점(AA0)이 1500억원을 조달하며 -10bp에 모집금액을 채운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에선 최근 국채금리가 급격히 치솟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이라 증권채 발행 환경이 녹록치 않다고 바라본다. 특히 부동산 PF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가 최대 우려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올 들어 국내 증권사의 우발채무가 늘어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 상반기 말 기준 우발채무는 42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말 39조6000억원에 비해 2조원 이상 늘었다. 특히 유동화증권의 부실 발생 시 신용공여를 제공하는 매입확약이 우발채무 증가를 주도했다. 우발채무 중 매입확약이 37.1조원 수준으로 전체 우발채무의 87.9%에 달한다.
최근 발행을 살펴보면 AA등급의 증권채 가운데서도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한 익스포저 규모에 따라 투자 심리가 갈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최근 회사채를 발행한 NH투자증권은 소폭 증액하고도 언더 발행에 성공했다. 업계에선 NH투자증권의 부동산 관련 리스크요인이 크지 않다는 점이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발행할 수 있었던 요인이 됐다고 본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NH투자증권의 우발부채 잔액은 2조6000억원가량으로 집계됐고, 이 중 부동산 금융 비중은 43%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반해 한국투자증권은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자체 신용공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상반기 말 기준 한도대출약정과 대출채권매입확약, 사모사채 인수확약 총 금액은 5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3조2000억원 가량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상반기 말 기준 브릿지론 및 계약금 대출 등의 익스포져 부담이 1조2000억원가량으로 피어대비 다소 큰 편”이라며 “부동산 경기에 따른 자산건전성 지표 변동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고 봤다.
◇ 만기도래 채권 없어, 증액 검토는 보수적일 전망 한국투자증권은 연내 만기도래 채권이 없음에도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시장 상황이 우호적이지 않음에도 발행에 나서는 건 내년 상반기 발행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발행의 목적으로는 지난해 12월 발행해 올해 11월 만기가 도래하는 기업어음(CP) 2500억원의 상환을 내새웠다. 해당 CP는 레고랜드 사태 여진으로 시장 조달이 어려웠던 시기에 발행돼 금리가 7%에 육박한다. 상환대상물의 금리가 높은 만큼 회사채 조달로 상환하는 데 부담은 없다.
다만 조달 환경이 비우호적이기 때문에 차입만기 장기화를 추진하기에 적절한 시점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업계에선 이번 발행이 불확실한 금리 전망을 고려해 내년 이후 도래하는 만기 회사채 수요를 대비하는 의미가 크다고 바라본다. 불확실성 대비 차원의 성격이 크기 때문에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증액발행엔 보수적인 기조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연초 효과를 노리고 내년 초 발행에 나서는 게 자연스럽다”면서도 “다만 내년 초까지 금리 인하가 가시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상존하고 발행이 과도하게 집중될 수 있는 만큼 올해가 가기 전에 일정 수준의 자금을 확보하려는 발행사들의 니즈도 존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