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농심과 삼양식품은 모두 오너일가 중심의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확립하고 있다. 농심은 고 신춘호 명예회장 이후 신동원 회장 체제가 더욱 공고하게 자리잡는 것으로 평가된다. 신동원 회장의 장남 신상열 구매실장(상무)의 경영 보폭도 확대되면서 또다시 장자승계 윤곽도 뚜렷해졌다.
삼양식품의 경우 지배구조 변화에서 불닭면을 빼놓기 어렵다. 소유·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촉발한 촉매제로 작용했다. 지배구조 투명화와 라면사업 경쟁력 강화를 축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오너 3세 전병우 이사(전략운영본부장)의 지주사 지배력이 확대된 게 특징이다.
◇20년전 후계 확정 신동원 농심 회장, 사업 지배력 강화
신동원 회장은 신춘호 명예회장이 2021년 3월 사망하고 그해 7월 '회장'에 취임했다. 다만 지분 측면에서는 20여년 동안 농심그룹을 사실상 지배했다. 신춘호 명예회장이 일찌감치 장자승계로 후계구도를 매듭지었기 때문이다.
신동원 회장은 2003년 농심에서 인적분할로 탄생한 농심홀딩스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지배력을 키웠다. 2003년 농심홀딩스 지분율은 2.78%에서 36.38%로 크게 상승했다. 2017년 5월에는 27만여주를 쌍둥이 동생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에게서 매수하며 지배력이 커졌다. 올해 6월 말 기준 농심홀딩스 지분율은 42.92%에 달한다.
2003년 농심홀딩스 최대주주가 되기 전에는 해외사업을 이끌며 후계자로 명분 쌓기에 집중했다. 농심이 해외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일본 도쿄 사무소에서부터 글로벌 진출을 주도했다. 신동원 회장은 1987년 도쿄 사무소 근무를 자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1년까지 이곳에서 근무하며 일본에 농심 브랜드가 뿌리내릴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형제 사이 분리 경영은 신동원 회장 체제를 강화하는 요인도 된다. 신춘호 명예회장의 세 아들인 신동원 회장과 신동윤 부회장, 신동익 부회장은 각각 농심, 율촌화학, 메가마트를 독자 경영한다. 게다가 신동익 부회장은 올해 농심 지분을 일부 매각했다. 지분율도 2%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신동윤 부회장의 농심 지분율은 전무하다. 신동원 회장의 모친 김낙양씨는 농심 지분을 전량 처분하기도 했다.
오너 3세 중에서도 신동원 회장 장남 신상열 상무의 농심홀딩스 지분율이 가장 많다. 신동원 회장은 자신이 신춘호 명예회장에게서 물려받은 방식처럼 중장기 증여 등으로 지분을 신 상무에게 이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 측면에서 신동원 회장은 기존 라면 중심 구조를 탄탄하게 다지면서도 신사업 추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이다. 이는 신춘호 명예회장 시대와 다른 색깔을 내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지분으로 나타나는 지배력뿐만 아니라 선대와 다른 경영으로 지배력을 강화하는 전략으로도 평가된다. 신동원 회장은 스마트팜·대체육·건강기능식품을 신성장 동력으로 낙점했다.
◇불닭면이 쏘아올린 지배구조 개편 '라면사업 강화+소유 투명화'
불닭면으로 사세가 급격하게 커진 삼양식품은 ESG 경영을 요구하는 외부의 높아진 시선에 부응하기 위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이어왔다. 사업 측면과 소유구조 양쪽을 건드렸다. 라면사업 강화와 소유구조 투명화에 역점을 뒀다.
지난해 5월 지주사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내츄럴스)의 제조사업을 삼양식품에 양도했다. 삼양라운드스퀘어는 제조사업 없이 그룹 차원 사업 활동을 관리하는 지주사 고유의 기능에 집중하고 삼양식품은 제조업 기반 사업구조 개편으로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었다.
이어 10월에는 삼양식품이 일산물류센터·곤지암 물류센터 건물, 차량 운반구, 토지 등 유형자산 230억원을 물류 계열사 삼양로지스틱스에 처분했다. 물류 역량 강화를 위한 의사 결정이었다. 또 냉동식품시장 진출 본격화를 위해 삼양식품이 삼양냉동의 B2C 영업채널을 양수했다.
삼양라운드스퀘어의 지주사 체제 강화는 일정 부분 소유구조 투명화에도 기여했다. 2대 주주였던 아이스엑스를 흡수합병하며 옥상옥 구조를 없앴다. 아이스엑스는 오너3세 전병우 이사가 지분 100%를 보유했던 개인 기업이다. 아이스엑스 소멸로 오너일가-삼양라운드스퀘어-삼양식품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로 한 단계 간소화됐다.
합병 이후 전 이사는 개인기업 아이스엑스를 활용한 간접 지배가 아닌 삼양라운드스퀘어 직접 지배력을 높이게 됐다. 김정수 부회장과 배우자 전인장 회장의 지분율은 하락하면서 상대적으로 전 이사의 지배력이 커지는 효과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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