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안정성을 보는 잣대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현금'이다. 현금창출능력이 뛰어나고 현금흐름이 양호한 기업은 우량기업의 보증수표다. 더벨은 현금이란 키워드로 기업의 재무상황을 되짚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HD현대중공업이 흑자 사이클에 들어섰다. 2021년 하반기 시작된 선박 발주 호황기에 대규모로 수주한 선박들의 작업이 본격화하며 일감의 양이 늘고 있다. 앞으로 고정비 절감효과를 통해 이익 규모를 더욱 늘려갈 것이라는 데 업계 안팎의 전망이 일치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적정 수준의 현금 보유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과제가 떠오르고 있다. 조선사들은 선박 건조 과정에서 자체 자금의 투입 비중이 높은 만큼 현금이 곧 실적의 기반이다. HD현대중공업은 작업 주기에 따라 외부 조달을 통해 영업에서의 현금 유출을 만회하는 등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2023년 2분기 말 기준으로 현금 보유량(현금 및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의 합계)이 8943억원으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보다 11.1% 줄었다.
최근 몇 분기 동안 HD현대중공업의 현금 보유량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4분기 두드러진 감소 폭을 보였다. 이는 매출이 증가세 속 특히 작년 4분기 눈에 띄는 증가 폭을 보였던 것과 같은 흐름이다. 즉 작업물량이 늘어나면서 현금 투입이 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분기 HD현대중공업의 현금흐름 내역을 살펴보면 분기 기준 현금 감소의 주 원인은 -3885억원으로 집계된 영업활동 순현금흐름이다. 투자활동을 통해서도 1044억원의 현금 순유출이 발생했다.
이와 같은 현금 감소 요인을 HD현대중공업은 외부 조달, 즉 재무활동을 통해 메우는 중이다. 2022년에는 분기별 재무활동 순현금흐름이 꾸준히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상환 우선 기조를 유지했으나 올해 들어서는 1분기 1383억원, 2분기 4149억원으로 재무활동을 통한 현금흐름 창출이 늘고 있다.
조선업과 같은 대규모 장치산업은 고정비 지출 부담이 크다. 때문에 매출 증가세는 곧 고정비 절감효과를 통한 이익 증가의 신호다. 이미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분기 143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직전 분기 대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올해 1분기 415억원의 영업손실을 내기는 했으나 이는 과거 수주한 해양플랜트 공사의 하자배상 청구소송에 따른 일회성 비용 775억원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 지출이 없었다면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4개 분기 연속 흑자를 유지하는 중이다. 이익 규모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다만 조선업은 공사 진행도에 따라 매출을 측정하는 회계방식을 따르는 반면 실제 현금의 유입 시기는 선박을 인도할 때 대금을 많이 받는 '헤비테일' 계약을 따른다. 실적상 이익과 영업활동을 통한 실제 현금 유입 사이에 시간차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선박은 수주 시기와 척수, 가격 등 조건이 항상 일정하지 않은 만큼 작업 물량이 늘어나며 원재료 조달 등 필수 지출이 증가하는 시기와 선박 인도척수가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시기가 겹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적정 수준의 현금을 유지하는 것이 조선사에게는 중요한 과제다. 이 과제를 HD현대중공업은 재무활동을 통해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HD현대중공업의 작업물량 증가세는 생산설비 가동률로 확인이 가능하다. 2021년 말까지만 해도 조선부문 63.6%, 해양부문 11.1%, 엔진기계부문 100.2% 였던 가동률이 올해 2분기 말 기준으로는 조선부문 79%, 해양부문 71.5%, 엔진기계부문 124.4%까지 높아졌다. 적정 현금 유지의 과제 역시 무게를 더해간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영업활동에서의 일시적 현금 유출을 외부 조달로 상쇄중인 만큼 이자비용 관리에 더욱 세심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올해 상반기 HD현대중공업은 이자비용 710억원을 지출했다. 전년 동기보다 41.5%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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