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사들은 2021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선박 발주의 슈퍼사이클을 통해 막대한 수주잔고를 쌓았다. 이 선박들의 건조가 시작될 시점이 왔다. 조선사는 자체 자금으로 배를 짓는 만큼 유동성이 중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조선사들이 잔고를 실적으로 전환하기에 충분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더벨이 점검한다.
조선업계에 수주 훈풍이 불며 실적을 향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국내 조선3사(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가운데 가장 먼저 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이미 순수하게 영업활동으로만 현금을 창출하는 단계에 들어서 있다.
현대중공업은 불어난 수주잔고를 소화하기 위해 유동성 투입 부담이 갈수록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수주잔고의 ‘질’이 좋아진 만큼 수익성 개선을 바탕으로 현금 창출능력을 키워가며 유동성을 보전해나갈 것으로도 예상된다.
현대중공업은 올 3분기 연결기준 매출 2조2036억원, 영업이익 143억원을 거뒀다.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1.7% 늘고 영업손실 1083억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이익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국내 조선 3사 중 유일하게 영업흑자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업계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3분기 흑자전환은 예고돼 있었다. 2분기에 이미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1607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영업을 통해 플러스 현금흐름을 만들어낸 것도 현대중공업이 조선 3사 중 처음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업계를 향한 실적 개선 기대를 현실화하는 선봉에 서 있는 셈이다.
조선사의 이익이 늘어났다는 것은 매출이 증가하면서 고정비용을 넘어서고 있다는 말이다. 조선사의 매출은 선박 건조량 및 공정 진행률에 따라 인식되는 만큼 현대중공업의 이익 증가는 선박 건조작업의 확대를 위한 유동성 투입을 늘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현대중공업은 현금 보유량(현금 및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의 합계)이 지난해 말 2조2884억원에서 올해 3분기 말 1조6651억원까지 줄어들었다. 다만 이와 같은 유동성의 감소가 향후 조업 전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닌 것으로도 분석된다.
현대중공업의 올 3분기 말 기준 현금 보유량 1조6651억원은 국내 조선사 중 최대치다. 같은 기간 대우조선해양의 1조1506억원, 삼성중공업의 9329억원보다 많다. 6000억원이 넘는 현금 유출에도 풍부한 유동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작년 3분기 IPO를 통해 1조800억원을 조달한 덕분이다. 애초부터 현금이 차고 넘쳤다는 말이다.
현대중공업은 IPO 조달자금을 활용해 이자 부담부터 경감했다. 작년 3분기 말 4조1262억원에 이르렀던 총차입금은 그 해 4분기 말 3조4846억원까지 줄었다. 이후 현대중공업은 마이너스 재무활동 현금흐름의 기조를 유지하며 총차입금을 3조4000억원 선으로 억제하고 있다. 올해 3분기 말 기준으로는 3조4137억원이다.
이와 함께 플러스 영업활동 현금흐름을 지속하기 위해 자본적 지출(CAPEX)을 확대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자본적 지출은 작년 3분기 726억원에서 올해 3분기 1497억원까지 추세적으로 늘었다. 종합하면 현대중공업은 넘치는 유동성을 통해 재무부담은 줄이고 현금 창출능력은 확대하는 선순환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앞으로 선박 건조를 위한 유동성 투입 부담이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조선업 슈퍼사이클을 통해 대거 수주한 물량의 건조작업이 시작될 시점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10월 말 기준으로 현대중공업 조선부문에 쌓인 수주잔고는 최근 몇 년 사이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현대중공업은 건조물량의 증가를 통해 매출 증가효과뿐만 아니라 수익성 개선효과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수주잔고에서 LNG선, LPG선,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 선박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최근 몇 년 중 가장 높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고부가 선박에 집중된 수주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이익을 창출하면서 유동성 투입 부담을 충분히 상쇄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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