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지속되는 반도체 수요 부진 여파로 17조원에 달하는 재고자산을 떠안게 됐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70%, 지난해 말과 비교해도 10% 가까이 재고자산이 늘었다. 이에 따라 재고자산 평가손실 규모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뛰었다.
올해 1분기 고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됐던 반도체 업황 부진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IT 등 전방 산업의 재고 소진이 예상보다 더딘 탓이다. SK하이닉스는 기존에 발표했던 감산 및 투자 축소 기조를 이어가는 한편, 인텔에서 2021년 인수한 솔리다임의 체재 개편에 나서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 노력 중이다.
◇재고자산 규모 15조원→17조원, 평가손실도 껑충 올해 1분기 말 기록된 장부금액 상 SK하이닉스의 재고자산 규모는 17조1823억원에 이른다. 지난 연말 잡혀있던 재고자산 규모인 15조6647억원보다 9.6%쯤 늘었다. 1년 전인 지난해 동기의 재고자산인 10조3930억원보다는 70%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1분기부터 10조원을 넘겼던 SK하이닉스의 재고자산은 여전히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4분기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1조원을 조금 밑돌았던 증가분이 이번 올해 1분기에는 1조원을 가뿐하게 넘겼다. 재고자산이 3조원 가까이 껑충 뛰었던 지난해 2~3분기 만큼은 아니지만 무시하기 힘든 수치다.
재고자산을 늘린 주범은 제품 항목이다. 지난해 말 3조8387억원이었던 규모가 1분기만에 7000억원이 늘어 4조5952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감산 및 투자 축소를 발표하며 몸집 줄이기에 나섰지만,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해 설립한 솔리다임 등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 증가 영향을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재고자산이 늘어나면서 평가손실 규모 역시 커지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판가 하락 등이 주된 원인으로, 지난해 말 1조3353억원이었던 SK하이닉스의 재고자산 평가손실충당금은 올해 1분기 2조4406억원까지 불었다.
특히 지난해 3분기와 4분기 사이 재고자산 평가손실충당금 간 차이는 6698억원이었는데, 지난해 말과 올해 1분기 사이에는 1조1000억원 이상으로 증가분이 2배 가까이 늘었다.
◇반도체 업황 회복세 지연, 감산 및 투자 축소 기조 지속 업계 및 증권가는 당초 올해 1분기를 메모리 반도체 판가 하락 및 수요 부진의 최고점으로 예상했다. 전방 IT 산업의 메모리 재고 소진과 더불어 데이터센터 및 기업용 서버의 DDR5 세대 교체가 본격화되면서 2분기쯤부터는 회복세 조짐을 보이리란 예측이 우세했다. 삼성전자가 지난 1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감산을 선언한 것도 기대감을 더했다.
다만 기대감과 달리 글로벌 반도체 업황은 여전히 어두운 상태다. 감산 등 반도체 업계의 재고 조절에도 불구하고 이미 시장에 풀린 반도체 재고량이 워낙 많았던 탓이다. 이에 트렌드포스 등 글로벌 시장조사업체도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D램과 낸드 가격 낙폭을 조정 중이다. 트렌드포스는 기존에 10~15% 수준으로 예상했던 D램 가격 하락 예상폭을 13~18%로 수정했다. 낸드 플래시도 기존 5~10%에서 8~15%로 변경됐다.
SK하이닉스는 장기화 추세를 보이는 반도체 시장 업황에 대응해 기존 감산 및 투자 축소 기조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에 1분기 설비투자(CAPEX)는 1조7478억원으로 전분기(5조319억원) 대비 65.3% 감소했다. 연구개발(R&D) 투자에 사용되는 경상개발비 규모도 같은 기간 1조1268억원에서 9176억원으로 줄었다.
한편, SK하이닉스는 최근 자회사 솔리다임을 기존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노정호 사장 체제에서 바꿔, 데이비드 딕슨 솔리다임 부문장을 노정호 사장과 함께 각자 대표로 내세웠다. 딕슨 부문장은 1993년 인텔에 입사해 SSD 등 낸드 사업을 이끌어온 주요 인물 중 하나다.
인텔 낸드 사업부를 인수해 세운 솔리다임은 현재 SK하이닉스의 막대한 재고자산 확대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솔리다임의 재고 문제 해결과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인수 의의를 세워야 하는 만큼, 이를 감안한 교체라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