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도 제한 폐지와 기초자산 확대를 골자로 한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 개정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높은 허들로 유동화채권은 일부 대기업만 발행하고 대부분 기업들의 활용도가 낮았다. 정부는 자산유동화에 대한 진입 문턱을 낮춰 기업들의 새로운 자금조달 채널로 안착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두고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공기업들이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회사채로 적자를 메우고 있는 가운데 자산유동화로 회사채를 일정 부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경우 자산유동화 시장에도 구축효과를 불러 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반기 국회 법사위·본회의 통과 목표11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자산유동화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결을 앞두고 있다. 이후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 절차를 거치게 된다. 공포후 6개월이 지나면 공식적으로 시행된다.
앞서 지난 2월에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며 첫 발을 내딛었다. 개정안은 올 하반기 중으로 본회의 통과가 유력한 것으로 점쳐진다. 이 경우 시행 시점은 내년 상반기가 된다.
자산유동화법은 1998년 외환위기(IMF) 당시 제정되면서 등록유동화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사실상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변화된 시장 여건을 반영하지 못했다. 신용도 낮은 기업은 활용이 제한되면서 주로 통신사·항공사 등 일부 대기업 위주로 활용돼 왔다. 이번에 개정이 이뤄질 경우 25년만에 의미있는 변화가 생기는 셈이다.
이번 개정안은 유동화증권 발행이 가능한 기업의 신용도 제한 폐지를 주요 골자로 한다. 기존에는 'BB' 이상 기업만 발행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공기업, 무등급 기업까지 가능해졌다. 여기에 채권·부동산 중심의 기초자산 범위를 장래에 발생할 채권을 비롯해 특허권, 상표권 등 무형자산으로 확대했다.
유동화증권을 발행하기 위해 필요한 유동화전문회사(SPC)의 형태도 기존 유한회사에서 주식회사로도 가능해진다. 상법에 의한 이익준비금 적립 의무도 면제된다. 발행사가 유동화증권 지분 5%를 의무적으로 보유하도록 해 발행 확대에 따른 리스크를 관리한다.
◇한전 등 공기업 수혜 기대…"구축효과 우려, 추가검토 필요"IB 업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일반기업보다 공기업들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동안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토지를 유동화해왔고 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발행량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기초자산이 확대되고 발행 절차가 간소화됨에 따라 한전 등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공기업이 조달채널을 다각화할 수 있게 됐다.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5년간 14조원을 확보하는 자구책 가운데 자산유동화로 80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사실상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차원의 개정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IB 업계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은 상황이 어려운 공기업들에게 자산유동화를 통한 조달을 터주는 것"이라며 "특히 한전이 채권과 무형자산 등을 기초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면 추가 조달이 가능해진다. IB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지난해말 가까스로 사채발행한도를 2배에서 6배로 확대됐다. 그럼에도 적자가 이어지며 지난해에만 약 33조원의 역대 최다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1분기에도 5조원 가량의 적자가 예상된다.
대규모 적자를 회사채 발행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약 32조원에 달하는 회사채를 발행했다. 전년(10조4300억원) 대비 3배에 달한다. 올해도 3월말 기준 8조원을 발행했다. 한전채 물량 부담은 한전보다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 여전채 수요를 구축하는 효과를 불러오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한전이 자산유동화를 통해 조달에 나설 경우 새로운 구축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신탁랩 규모가 줄어든 가운데 한전의 유동화 물량이 쏟아질 경우 채권시장에 이어 단기시장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일부는 좋아할 수 있지만 시장 측면에서는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