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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진 명예회장, 소신 깨고 '공동의장' 복귀 배경은

해외 빅파마 합종연횡 사례 참고…'2세 경영 수업 연장선' 해석도 제기

최은수 기자  2023-03-03 16:47:18
은퇴 2년만에 셀트리온그룹으로 복귀하게 된 서정진 명예회장이 맡게 된 업무는 이사회 '공동의장'이다. 경영상의 핵심 의사결정자로 복귀하는 셈이다. 창업주인 그는 그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단 소신을 줄곧 밝혀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결정이다.

셀트리온그룹이 정도경영이라는 밀고나가기엔 대외 환경이 엄중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장 3사 합병을 비롯해 그룹에 당면한 주요 과제를 헤쳐나가야 하는 만큼 인수합병(M&A)과 투자로 성장한 빅파마들이 주로 선택하던 '한시적 의사결정체제'를 도입한 모습이다.

◇국내서 찾기 흔치 않은 '이사회 공동의장', 해외선 빅파마 합종연횡서 주로 목격

서 명예회장은 앞으로 4곳의 그룹사(셀트리온홀딩스,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에서 사내이사를 맡고 이사회 의장 역할을 하게 된다. 주목되는 점은 단독 의장이 아니라 '공동'의장이라는 점이다.

셀트리온홀딩스·셀트리온·셀트리온제약은 장남인 서진서 의장이,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차남 서준석 의장이 맡고 있다. 서 명예회장은 아들들과 함께 공동의장으로서 그룹 현안을 함께 의사결정하게 된다.


이는 국내 제약바이오 및 자본시장에서 서 명예회장의 복귀를 다소 모호하게 바라보는 배경이다. 국내 기업 가운데 이사회 공동의장 체제를 도입한 사례는 극히 적다. 2018년 티몬이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모바일 커머스 시장에서 승부수를 던질 목적으로 신현성 티몬 창업주와 유한익 대표를 이사회 공동의장으로 세운 정도가 회자됐을 뿐이다.

해외기업 가운데서도 이사회서 '공동의장' 체제로 채택한 사례는 많지 않다. 다만 유구한 글로벌 빅파마의 역사 속에선 공동의장제가 종종 등장한다. 공동의장제는 M&A나 대규모 사업제휴를 비롯한 빅딜을 단행한 회사들이 추후 성장동력 발굴과 사업 방향성을 정립할 때 주로 나타난다.

최근으로 시야를 좁혀보면 작년 1분기 비공개 라운드에서 30억달러(한화 3조9000억원)를 투자 받은 재생의료 전문 회사 알토스 랩스(Altos Labs) 사례가 꼽힌다. 현재 알토스 랩스 이사회는 나스닥 상장 바이오텍 라이엘이뮤노파마(Lyell Immunopharma, Inc.) 설립자인 릭 클라우스너(Rick Klausner) 박사와 GSK의 R&D 부문 사장 할 바론(Hal Barron) 박사가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알토스 랩스는 앞서 클라우스너 의장과 세엘진(Celgene)이 인수한 주노테라퓨틱스(Juno Therapeutics), 일루미나(Illumina)가 M&A한 그레일(GRAIL) 출신 인사들이 공동 설립했다. 창업주와 투자사(GSK) 간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다보니 이를 조율하기 위한 이사회 공조체제를 꾸린 셈이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서 명예회장이 공동의장으로 복귀하는 것도 그룹이 합종연횡을 앞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에 힘이 싣는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글로벌 빅파마는 M&A나 대규모 투자 등의 이해관계에 따라 꾸린 이사회 공동의장제를 운영한 뒤 경영이 안정화 되면 다시 리더십을 한 데 집중해 왔다"며 "서 명예회장의 이번 등판 역시 '한시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명료한 R&R보단 다방면 가능성 열어 둬… '2세 경영 연장선상' 해석도

공동의장제는 주로 변혁 및 미래지향적 가치 판단, 더불어 오너십 체인지가 필요한 시점에 등장했다. 그간 빅파마의 성장을 이끈 M&A 전략을 뒷받침하는 제도로도 활용됐다.

특히 공동의장제가 한명의 리더십으로 모든 복잡한 경영 판단을 내리기 힘든 상황에 등장해 왔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서 명예회장이 국내선 사례를 찾기 힘든 공동의장제로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도 지금 셀트리온그룹이 처한 상황을 미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단초인 셈이다.

셀트리온그룹은 서 명예회장이 공동의장으로서 주요 제품을 미국에 신속히 출시하고 현지 유통망의 전열을 가다듬는데 필요한 핵심 사안들의 의사결정을 적극적으로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로선 셀트리온그룹에서 서 명예회장을 포함한 공동의장별 세부 업무 및 총괄 부문(R&R)을 나누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관점에선 경영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공동의장제가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서 명예회장의 두 아들이 경영 전면에 선 상황에서 맞닥뜨린 대변혁을 부친이 구원투수로 지지해주는 차원이라는 의견이다.

한편 서 명예회장의 복귀로 셀트리온 이사회는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신민철 부사장이 임기만료로 제외되게 됐다. 서 명예회장이 '차기 경영권자'로 지목했던 기우성 부회장(CEO)은 물론 이혁재 제품개발부문장 전무는 신 부사장과 마찬가지로 임기가 만료됐지만 재신임 됐다.

업계 관계자는 "셀트리온그룹은 창업 주역들이 아닌 철저한 이사회 중심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제기된다"며 "이 과정에서 이사회의 권한을 공동의장 제도로 강화할 경우 2세 경영을 연착륙할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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