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A급 발행사 유동성

호황기 빌린 9조, 날 선 부메랑 되나

①A+ 옥석가리기, A0부턴 차환 불투명…증자·자산매각 가능성도

이경주 기자  2023-02-10 08:00:57

편집자주

고금리 지속과 경기침체 우려. 2023년 우리 기업을 가장 위협하는 요인이다. 중소를 넘어 중견사들까지 유동성 관리에 불이 떨어졌다. 저금리 시기 빌린 수조원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데 투자자들은 외면하고 있다. 그 와중에 실적 전망은 밝지 않다. THE CFO는 주요 중견사들의 유동성을 점검하고, 최고재무책임자(CFO)의 대응 전략을 취재한다.
회사채는 기업이 부채자본시장(DCM)에서 돈을 빌릴 때 가장 저렴한 수단 중 하나다. 기관투자자와 직접 거래를 하기 때문이다. 은행대출은 은행이 고객돈을 빌려 다시 꿔주는 것이기 때문에 보다 비싸다.

특히 공모채는 경매와 비슷한 수요예측을 거쳐 흥행할 경우 더 낮은 금리로 조달이 가능하다. 다만 의무적으로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을 산출 받아야 한다. 국내 등급은 AAA서부터 C까지 있는데 중견사 체급에 해당하는 등급은 A급(A+, A0, A-)이다.

중견사들(A급)은 경제가 안정되고 저금리가 유지되는 시기엔 중위험·중수익 투자처로 조명 받는다. 덕분에 연간 10조원이 넘는 규모로 발행이 가능했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돌아서면 그 만큼 곤란해진다. 투자자들이 ‘안전’한 곳만 찾기 때문이다. A급은 그 대상에 들기 쉽지 않다. 같은 회사채로 차환이 힘들다.

올해가 바로 그 때다. 상환할 여력이 없다면 더 비싼 비용을 치르고 차환해야한다. 이도 여의치 않으면 증자나 자산매각을 동원해야 한다. 경기침체기에 재무적 어려움까지 가중되는 '이중고'다.

◇A급 총 9.6조 만기…9월에 ‘1.8조’ 집중

KIS자산평가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A급 회사채는 총 115건, 금액으로는 9조6228억원 규모다. 저금리 시기에 차환수요를 크게 웃도는 순발행에 나선 결과다. 그 영향으로 평시보다 올해 만기액이 크다.




3년물도 금리가 1~2%에 불과했던 2019~2021년에 집중적으로 찍었다. 발행액은 2019년 14조1780억원에서 2020년 9조6030억원, 2021년 13조5550억원으로 다시 커졌다. 같은 기간 만기액은 연간 6조8860억~8조360억원 수준으로 발행액을 크게 밑돈다.

A급은 만기구조(트렌치)가 2·3·5년물로 주로 구성된다. 2019~2021년 찍은 채권 만기가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이에 지난해 만기액이 11조7098억원으로 치솟은데 이어 올해도 10조원에 가까운 대응부담이 생겼다.

올해만 보면 특정 월에 조단위 만기가 쏠려있다. 이달 1조3739억원, 3월 1조860억원, 6월 1조540억원, 9월 1조863억원, 10월 1조7985억원이다. 이때 차환 수요가 있는 A급들은 자금유치 경쟁부담이 더 클 수 있다.

노치별로는 A+급 올 만기액이 4조8924억원으로 가장 크고, 이어 A0 3조185억원, A- 1조7120억원 순이다.




◇2월 드러난 양극화 투심…효성화학 전량 미매각

지난해 4분기만해도 A급은 물론 AA급도 회사채 수요를 모으기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미국 주도의 긴축정책이 장기화하면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은 지난해 11월 초 기준금리를 3.25%에서 4%로 0.75%포인트(p)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했고 한 달여 만인 12월 중순 또 0.5%p(4.5%) 올렸다. 여기에 국내는 레고랜드 사태에 부동산PF 부실화에 우려까지 더해져 시장이 더욱 위축됐었다.

다만 올들어 1월 중순부터 회사채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초우량사인 KT(AAA)를 시작으로 포스코와 LG유플러스 등 AA급 우량사들이 수요예측에서 조단위 수요를 모으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연초 예산집행을 시작한 기관투자가들이 포트폴리오 다변화차원에서 회사채 투자가 필요한 상황을 노린 전략이었는데 적중했다.

그런데 투자열기는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낮은 AA급 이상으로 한정되는 분위기다. A0에 부정적 아웃룩이 달린 효성화학이 1월 말 1200억원 모집을 위한 수요예측을 했는데 한 건의 신청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미매각분은 결국 전량 주관사들이 떠안게 됐다.

이후 신세계푸드(A+) 등 일부 A급들이 성공하긴 했는데 특별한 상황에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1월 중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로 올린 것을 두고 금리인상 기조가 마무리됐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 작용했다.

국고채 금리가 이를 선반영해 되레 기준금리를 밑도는 현상(9일 기준 3.33%)이 지속되고 있는데 AA급 회사채도 함께 금리가 낮아졌다. LG화학이 1월 말 발행한 3년물 금리가 3.725%인데 기준금리와 불과 0.225% 높은 수준이다.



<사진:더벨 플러스>

이 탓에 작년 하반기 금리가 치솟았을 때 고객 돈을 빌린 은행이나 보험사 등이 AA급 투자로 역마진을 내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손실을 보완하기 위해 A급 중에서도 펀더멘털이 좋은 회사를 선별해 투자를 하고 있는 분위기다. A급 전체를 투자대상으로 보진 않는다.

IB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기관들의 수신금리가 적게는 4%대에서 많게는 6%대까지 높아졌다"며 "그런데 AA급 발행금리가 3%후반에서 4%초반대로 형성되니 역마진이 나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수익 균형을 맞추기 위해 A급을 선별해 투자하고 있는 것이지, A급 전체로 온기가 옮겨진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열위한 A0나 A-급은 여전히 올해 발행이 불투명하다는 평가다. A+급 중에서도 펀더멘털 방향성이 좋지 않은 발행사도 마찬가지다. 앞선 관계자는 “올 부정적 아웃룩이 달린 A급은 A+라도 어려울 것”이라며 “A0나 A-급은 현재 투자자들 관심 밖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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