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엔 CFO(최고재무책임자)가 있지만 없다. 역할을 하는 인물은 있지만 직책명이 CFO인 사람은 없다는 의미다. 재무부문장이나 재무실장, 경영지원실장으로 불린다. 아니면 각 사 사업 컨셉트에 맞게 호칭을 자율적으로 붙인다.
삼성과 LG, 현대차그룹이 ‘CFO’라는 공식명칭을 사용해 보직자가 C레벨(C-Level)급 인사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있는 것과는 대조됐다. 이들 그룹 CFO들은 사내이사로도 선임돼 실제 권한도 크다.
SK E&S가 최근 'CFO' 명칭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 이목을 끄는 이유다. 더불어 이 자리에 중량감 있는 인물을 내정했다. CFO의 위상 강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주목된다.
◇'재무부문장'서 호칭 변경, 세대교체 수반
9일 업계에 따르면 SK E&S는 정기임원인사(12월1일) 이후 진행하고 있는 조직개편 과정에서 기존 ‘재무부문장’ 명칭을 ‘CFO’로 바꾸기로 했다. 재무부문장은 CFO 역할을 하는 자리다. 역할과 명칭을 일치시킨 셈이다.
함께 세대교체 성격의 후속 인사도 단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1962년생인 구태고 부사장이 이달 말까지 재무부문장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다. 내년 1월 1일부터 1970년생인 김형근 SK㈜ 전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Portfolio Mgmt) 부문장이 SK E&S ‘CFO' 보직 임기를 시작한다. 김 신임 CFO는 정기인사를 통해 SK E&S로 이동하는 사실은 공개됐지만 역할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었다.
SK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CFO' 명칭을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에 주목되는 변화다. 지주사인 SK㈜와 SK이노베이션은 재무부문장, SK하이닉스는 재무담당, SK바이오팜은 재무본부장,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경영지원실장으로 부른다. SK텔레콤은 코퍼레이트 플래닝(Corporate Planning) 담당, SK스퀘어는 투자지원센터장 명칭을 사용하는 등 자율적인 분위기다.
SK그룹 관계자는 “CFO역할 호칭에 대해 통일된 정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각 사들이 속한 산업이나 사업사정에 맡게 정하고 있는 것”이라며 “SK E&S도 자율적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K그룹 CFO들은 다른 4대그룹과 비교해 권한도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M&A로 성장한 그룹인 만큼 재무전문가들을 중용하고는 있지만 사내이사로 선임해 최종 의사결정에 참여시키진 않는다. SK㈜를 비롯해 주요 상장 계열사 10곳 중에서 CFO가 사내이사인 곳은 없다. 호칭과 함께 C레벨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반면 삼성과 LG, 현대차그룹은 대다수 상장사 CFO들이 사내이사다. 주력 계열사들은 모두 CFO 명칭을 쓴다. 박학규 삼성전자 CFO(사장)와 차동석 LG화학 CFO겸 CRO 부사장, 서강현 현대차 CFO 부사장 등이다.
◇김형근 CFO, SK㈜ 재무1실장 역임한 실세
보직자도 명칭 변화에 어울리게 중량감 있다. 김형근 신임 CFO는 그룹 실세들이 밟는 엘리트코스를 거쳤다. SK㈜ 재무1실 실장 출신이다. SK㈜ 재무1실은 지주사와 그룹 전반의 재무 상황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경영자적 감각을 키울 수 있는 자리이기에 전임자(재무1실장)들은 계열사 CFO 뿐 아니라 CEO로도 영전했다.
조경목 현 SK에너지 대표가 초대 재무1실장으로 2011~2012년 역할을 했다. 현 SK㈜ CFO인 이성형 부사장은 조 대표의 후임자로 2013~2015년까지 재무1실장을 맡았다. 이어 김진원 SK텔레콤 CFO가 2016년 짧게 재무1실장을 지냈고 그 다음이 김형근 신임CFO다.
김 신임 CFO는 2017년부터 3년여 재무1실장을 맡았다. 2020년 중순 SK에어가스(현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 대표로 발탁돼 CEO로도 경험을 쌓았다. 2021년 초 다시 SK㈜로 복귀해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 부문장이 됐다.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 부문은 SK㈜의 투자와 사후관리를 전담하는 곳이다. SK㈜가 투자회사를 표방하기 때문에 김 신임 CFO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SK E&S는 내년 CFO가 역할을 해야할 일이 많다. SK E&S는 국내 대표 민자발전사다. ESG트렌드에 맡게 수소와 저탄소 신사업으로 대규모 사업전환을 꾀하고 있다. 2025년까지 수소 공급 능력을 28만톤(t)까지 끌어올려 '글로벌 1위 수소 사업자'로 도약한다는 내용의 성장 로드맵을 지난해 공개했다. 2025년까지 예상한 투자비용은 약 18조원이다.
필요한 자금을 외부에서 활발히 끌어왔는데 올 하반기들어 조달환경이 악화되면서 고민이 커졌다. 내년 원활한 투자를 이어가기 위해 새 해법을 찾아야 할 수 있다. SK E&S는 3분기말 기준 총차입금이 7조4581억원이며 차입금의존도는 39.4%다. 단기차입금은 1조5495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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