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도 2018년 정공법을 선택했다. 구광모 회장이 구본무 전 회장이 남긴 주식 대부분을 받고 상속세율에 따라 상속세를 납부하기로 했다. 구 회장 몫의 상속세는 7000억원대로 삼성그룹 이전까지는 국내 최대 규모였다.
연간으로도 1200억원의 상속세를 내야 하는 만큼 험로가 예상됐지만 지분율 희석 없이 9부 능선까지 무사히 넘긴 것으로 보인다. 올해와 내년 두 차례만 남은 것으로 알려지는데 납부 여력은 충분하다.
◇일찌감치 지주사 체제로 전환, ㈜LG 지분만 상속
LG그룹이 일찌감치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던 덕분에 지분 상속 역시 대부분
㈜LG 주식으로만 이뤄졌다. 구광모 회장은 2018년 11월 구본무 전 회장의
㈜LG 주식 11.3% 가운데 8.8%를 상속받아
㈜LG 최대주주에 올랐다. 구 회장의
㈜LG 지분율은 15.00%로 높아졌다.
구 전 회장의 나머지 지분은 장녀와 차녀가 각각 2.01%와 0.51%로 나눠받았다. 전체 상속세 9215억원 가운데 구 회장 몫은 7161억원으로 한번에 내야하는 금액은 1200억원 수준이다. 구 회장은 연부연납제도를 활용해 5년 동안 6회에 걸쳐 상속세를 나눠내고 있다.
구 회장은 기존에도
㈜LG 지분을 6.24% 보유했다. 상속받은 지분과 엇비슷한 수준의 지분을 이미 보유했던 셈이다.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지분을 사들이며 지배력을 확대한 결과다. 구 회장의
㈜LG 지분율은 2000년대 초반 0.2%대에 그쳤으나 상속 직전 6%대까지 높아졌다. 보유 지분이 늘면서 배당수익이 늘어나고 다시 지분율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구 회장이 ㈜LG 지분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과거 보유했던 희성전자 지분이 절대적 역할을 했다. 구 회장은 2004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보유하고 있던 희성전자 지분 23%를 모두 매각했다. 지분을 사들인 건 친인척들이다. 개인간 거래였기 때문에 정확한 처분 금액을 알기는 어렵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구 회장은 ㈜LG 지분을 사들였다. 2004년부터 회장 취임 직전까지 지분을 매입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2760억원 수준이다. 사실상 희성전자 지분을 ㈜LG 지분으로 맞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구 회장이 지분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친인척들도 힘을 보탰다. 수년 동안 친인척들이 내놓은
㈜LG 지분 절반 이상을 구 회장이 사들였다. 구 회장이 가족 회의를 통해 새로운 수장으로 정해진 만큼 오너 일가의 지원이 뒷받침됐던 것으로 풀이된다.
구 회장은 2016년 12월 고모부인 최병민 깨끗한나라 회장으로부터 35만주를 무상으로 증여받았다. 이에 앞서 2014년 말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으로부터 190만주를 무상으로 증여받기도 했다.
구 회장은 회장에 오른 뒤인 2020년에도 구자경 전 LG그룹 명예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LG 주식 전량 164만8887주를 상속받았다. 당시 종가 기준 1067억원 규모다. 이때 구 회장의 지분율은 15.65%로 확대됐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당시에도 상속세로 600억원을 납부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전까지의 상속세 7200억원에 더해 모두 7800억원이다.
◇보유 계열사 지분 거의 없어...배당으로 상속세 절반 마련
재계에서 보통 개인에게 대규모 자금이 필요할 때 비주력 계열사 지분을 활용하는 방법이 널리 쓰인다. 낮은 가격에 지분을 인수해 기업 가치를 키운 뒤 차익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다.
다만 구 회장은 희성전자 이후에는 이 방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손에 들고 있는 별다른 지분이 없었던 탓이다. 판토스 지분을 인수했지만 예상보다 빨리 판토스 지분을 파는 바람에 큰 매각 차익을 거두지는 못했다.
LG그룹은 2015년 판토스를 인수했다. 당시 오너 일가 역시 지분 19.9%를 1200억원대에 취득했고 구 회장도 460억원 정도를 보태 지분 7.5%를 확보했다. 그러나 오너 일가의 보유 지분율이 20%에 육박하면서 사익편취 의혹이 불거졌고 결국 3년 만에 지분을 매각했다. 구 회장은 이 때 550억원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차익이 100억원도 안된다.
이 밖에 구 회장의 보유 지분을 살펴보면 2017년까지 LG인터내셔널 지분도 2.11% 보유하고 있었으나 회장에 오르기 전 253억원에 처분했다. 현재 들고 있는 지분은 ㈜LG를 제외하면 LG CNS 지분 1.12%가 전부다. LG CNS는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데 구 회장이 보유한 LG CNS 지분 가치는 32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LX그룹의 독립은 구 회장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됐다. 이 과정에서 구 회장이 LX홀딩스 지분을 15.95% 보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해당 지분과 구본준 LX그룹 회장이 보유한 ㈜LG 지분 7.72%를 맞교환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빗나갔다. 구 회장은 ㈜LG 지분을 높이는 대신 현금을 확보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해당 지분을 구본준 회장에게 매각해 약 1500억원을 손에 쥐었다.
이 때 마련한 자금으로는 올해 연말 5차분 상속세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특수관계인을 더하면 ㈜LG 지분율이 40% 수준으로 충분히 높은 데다 상속세 부담 때문으로 당장 현금 확보가 더 시급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구 회장의 대출이 거의 없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8월 기준 보유 지분의 2,2%(55만429주)를 담보로 260억원 규모의 주식담보대출만 있다.
구 회장에게 가장 큰 수익을 안기는 건 배당이다. 구 회장 취임 이후
㈜LG 배당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17년 1300원이었던 주당 배당금은 지난해 2800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구 회장이 받은 배당금은 2018년 518억원, 2019년 569억원, 2020년 688억원, 2021년 703억원이다. 매년 내야하는 상속세의 절반가량이 배당에서 나오는 셈이다.
㈜LG는 올해 배당 정책에서 배당금 수익 한도 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증권가는 올해 ㈜LG의 주당 배당금으로 3000원을 예상하기도 한다. 이 경우 구 회장이 받는 배당금은 753억원에 이른다.
구 회장의 보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구 회장은 회장 취임 이듬해인 2019년 보수로 54억원을 받았다. 급여와 상여금을 더한 금액이다. 2020년에는 80억원을, 2021년에는 88억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