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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경제학

경영권 방어 고육지책, 선택지 적은 이재용 부회장

②다른 가족 구성원과 달리 지분 활용 제한, 주식 매각도 '최후 수단' 될 듯

조은아 기자  2022-08-19 15:47:50

편집자주

최근 세대교체 바람과 함께 '상속'이 재계의 중대 과제로 떠올랐다. 5대 그룹 가운데 삼성과 LG, 롯데에서 총수들이 상속세를 납부 중이다. 앞으로도 상속세를 놓고 골머리를 앓는 곳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상속세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은 차치해두고 일단 재계는 재원 마련에 분주한 모양새다. 준비가 철저하지 않으면 기업을 물려받는 것마저 험난해지는 탓이다. 더벨이 주요 그룹의 상속세와 재원 마련 방법을 점검해본다.
2021년 4월 말. 삼성그룹은 이건희 전 회장의 재산 상속안을 발표했다. 상속세만 12조원 이상인 '세기의 상속'이었다. 삼성그룹은 주변의 예상을 깨고 고스란히 상속세를 납부하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당시 파격으로 여겨졌지만 사실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20년 5월 대국민사과에서 가장 먼저 경영권 승계로 더는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적 관심이 상속에 쏠린 상황에서 편법을 비롯해 여타의 방안은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상속안 발표가 이뤄진지 1년 3개월이 지났다. 그간의 재원 마련 움직임을 봤을 때 이재용 부회장과 나머지 가족 3명의 방법이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분 활용에 자유로운 3명과 달리 이 부회장은 선택지가 많지 않다. 보유 지분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현금을 마련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지분 매각은 최후의 수단으로 미뤄둘 것으로 보인다.

◇지분 활용 적극적인 홍라희·이부진·이서현

이건희 전 회장의 유족들은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5년 동안 6차례에 걸쳐 상속세를 분할납부하기로 했다. 지난해 4월 2조원 규모의 첫 납부가 이뤄졌고 이후 연이자율 1.2%를 더해 2조원이 조금 넘는 2차 납부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한은 2026년 4월까지 앞으로 4차례 남았다.

이 부회장을 제외한 유족들은 1차 납부 때 주식담보대출을 받았고 2차 납부를 앞두고는 지분을 매각했다. 홍라희씨가 삼성전자 주식을 담보로 1조원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삼성물산 주식을 담보로 각각 3300억원, 3400억원을 빌렸다. 이 이사장은 삼성SDS 주식으로도 471억원을 대출받았다. 상속세 1차 납부액 2조원의 80%가 넘는 1조7201억원이다.

평균 연이자율은 3.24%로 다소 높았다. 이자율이 높아진 이유는 전체 대출의 30%를 차지하는 5000억원을 메리츠증권에서 빌렸기 때문이다. 메리츠증권 이자율이 5%로 다른 금융사와 비교해 높았는데 제2금융권인 데다 금액이 많고 계약기간이 3개월로 짧은 점 등이 반영됐다.

3명은 이후 계열사 지분도 매각했다. 이 이사장이 삼성생명과 삼성SDS 주식을 처분해 4370억원을 확보했고 이부진 사장도 삼성SDS 주식 일부를 처분해 1900억원을 마련했다. 홍라희씨는 삼성전자 지분 0.33%를 매각해 1조3700억원을 확보했다. 모두 더해 2조원으로 2차 납부 금액과 얼추 비슷하다. 1차는 주식담보대출로 막고 2차는 주식을 팔아 해결한 셈이다.



◇지분은 최후의 보루, 선택지 적은 이재용 부회장

반면 이 부회장은 지난해 1차 상속세 납부 전 4000억~5000억원 규모의 개인신용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신용대출로는 역사상 최고 규모로 앞으로도 기록은 깨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주식담보대출이 아닌 개인신용대출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당시 은행권은 이 부회장의 자산 대부분이 주식인 상황에서 주식담보대출을 선택할 경우 추후 경영권에 부담이 갈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 부회장은 지분 매각 행렬에도 동참하지 않았다. 아직 관련 움직임도 전혀 포착되지 않고 있다. 지분 매각 없이도 상속세 납부가 가능했던 이유로는 배당이 꼽힌다. 배당 수익은 이 부회장의 상속세 재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서 보수도 받지 않아 현금이 꾸준히 나올 곳은 배당이 유일하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에만 삼성전자에서만 4204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여기에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S에서 나온 배당금을 모두 더하면 5670억원 수준의 배당금을 거뒀다. 세금 등을 제외하면 실수령액은 3300억원 정도다.

앞으로도 비슷한 규모의 배당금으로 상속세의 상당부분을 채울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그룹과 마찬가지로 삼성그룹 역시 상속세 납부 시작을 전후로 각 계열사 배당이 크게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2020년 12월 새 주주환원 방침을 발표했다. 특별배당(주당 1578원)과 함께 2023년까지 3년간 잉여현금흐름의 50%를 배당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정규 배당을 연간 9조8000억원 규모로 실시하겠다고도 했다.



◇추가 지분 매각 가능성은 글쎄...주가 영향은?

이후 부족한 부분은 추가 대출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주식담보대출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대출 여력은 충분하다.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도 열려있다. 부동산은 경영권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지만 이 부회장은 대규모 현금을 마련할 수 있을 만한 부동산은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지분 매각에서도 다른 가족과 달리 선택지가 부족하다. 특히 이 부회장의 지분 매각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론상으로는 경영권과 무관한 일부 계열사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이 경우 주력 사업이 아니라는 시그널을 시장에 줄 수 있어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손에 쥔 카드는 삼성SDS 정도밖에 없다.

삼성SDS는 그간 오너 일가의 지분 매각 그리고 추가 매각 가능성 때문에 가장 손해를 본 곳이다. 앞서 3월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이 삼성SDS 주식 301만8860주(3.9%)를 블록딜로 매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가가 7%대 하락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지배구조와 동떨어져 있어 추가 매각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 역시 주가를 끌어내렸다. 다만 현시점에서 블록딜을 위한 신탁 계약이 모두 마무리된 만큼 당분간 추가 매각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상속세 마련 과정에서 삼성전자(0.33%)와 삼생생명(1.73%) 지분 역시 블록딜이 이뤄졌지만 주가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경우 하락폭이 0.99%였으며 삼성생명 주가는 오히려 상승했다. 두 회사는 앞으로 추가 지분 매각이 거의 없을 곳으로 여겨지는 곳으로 상대적으로 상속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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