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와 주주 사이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진 요즘이다. 기업 총수를 회장님이라고 존칭하기보다 '형'으로 부른다. 오너의 경영 방식부터 라이프 스타일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만큼 오너의 언행이 기업의 주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오너의 말 한마디에 따라 주가가 급등하기도, 리스크로 돌아오기도 한다. 더벨이 오너 경영과 주가와의 상관관계를 들여다봤다.
두산그룹 지주사 ㈜두산의 주가는 최근 1년 사이 큰 등락폭을 보였다. 52주 최저가가 최고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룹 오너일가의 움직임이 ㈜두산 주가의 변곡점으로 작용했다.
두산그룹 오너들은 그룹 경영위기 극복 과정에서 보여준 사업재편의 결단과 책임경영으로 ㈜두산 주가 상승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이후 오너들이 ㈜두산 지분을 대량으로 매각하면서 주가 하락세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 두산그룹 오너십, 채권단 관리체제 조기졸업 원동력
두산그룹은 2020년 3월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의 재무위기로 말미암아 채권단 관리체제에 들어섰다. 이후 채권단 관리체제 졸업 전까지 ㈜두산 주가의 관전 포인트는 자회사 두산에너빌리티의 재무건전성 회복이었다. 그룹 지주사이자 모회사인 ㈜두산이 두산에너빌리티의 위기 극복을 지원해야 한다는 관점에서였다.
두산그룹은 2022년 2월 채권단 관리체제를 졸업했다. 채권단 체제를 겪은 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빠른 졸업자다. 시장의 반응도 뜨거웠다. ㈜두산 주가는 채권단 관리체제가 시작됐던 2020년 3월 말 2만5700원까지 떨어져 있었으나 졸업을 앞둔 2021년 11월15일에는 14만8000원까지 치솟았다. 52주 최고가다.
채권단 체제에서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두산에너빌리티 지원을 위해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었던 전지박사업(두산솔루스, 현 솔루스첨단소재)을 2020년 10월, 그룹의 캐시카우 중 하나였던 두산인프라코어를 2021년 2월 각각 매각했다.
눈에 띄는 점은 ㈜두산 역시 직접적 출혈을 감수했다는 것이다. 모트롤BG(유압기기사업)를 매각해 두산에너빌리티 지원 자금을 추가 조달했고 산업차량BG를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 두산밥캣에 양도해 두산에너빌리티를 향한 두산밥캣의 배당여력을 확대했다. ㈜두산의 자체사업은 사실상 전자BG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가가 상승일로를 걸었다.
재계에서는 두산그룹 오너일가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면서 시장의 호의적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시선이 나온다. 박 회장과 동생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 회장은 채권단 체제를 지나는 동안 보수를 받지 않았다. 두산그룹 오너들이 두산에너빌리티의 유상증자에 사재를 털어 참여하기도 했다.
박 회장 등 두산그룹 오너일가 13명이 2020년 11월 두산퓨얼셀 보통주 1276만3557주를 두산에너빌리티에 무상으로 양도하는 이벤트도 있었다. 이를 통해 두산에너빌리티는 6000억원에 이르는 자본을 확충해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었다.
두산그룹의 경영위기 극복 과정에서 오너일가는 잇따른 경영상의 중대 결단을 신속하게 내렸을 뿐만 아니라 책임경영을 통해 그룹 재건의 의지를 내보였다. 오너의 행보가 ㈜두산 주가를 밀어올리는 원동력이 됐다고 볼 수 있다. ◇ 4세 ‘사촌경영’에 물음표, 추가 매물 출회 가능성은
㈜두산 주가는 2022년 3월까지 11만~12만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3월24일 5.13%, 3월25일 3.15%씩 떨어진 것을 시작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2022년 6월23일에는 6만300원까지 낮아졌다. 52주 최저가다.
㈜두산은 3월24일 공시를 통해 박용만 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과 두 아들인 박서원 전 오리콤 부사장, 박재원 전 두산중공업 상무가 ㈜두산 보유지분 전량(7.84%)을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고 밝혔다.
대량의 매물 출회는 일시적 주가 하락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3개월가량 이어진 하락세를 설명하는 요인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박용만 전 회장 삼부자의 ㈜두산 지분 매각으로 두산그룹 오너 경영체제의 불확실성이 나타나면서 주가가 지속적 하방 압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두산그룹의 오너 4세 경영체제는 그동안 ‘사촌경영’이 공식처럼 받아들여졌다. 3세 시대의 ‘형제경영’이 대를 지나서 사촌경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두산그룹 오너 3세는 형제경영체제에 반기를 든 고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을 가문에서 제명할 정도로 경영체제의 원칙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4세의 사촌경영도 체제가 흔들림 없이 유지될 것이라는 시선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박용만 전 회장 부자가 ㈜두산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이는 박서원 전 전무나 박재원 전 상무가 차기 회장 후보군에서 이탈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사촌경영의 원칙에 한 차례 물음표가 찍힌 것이기도 하다.
㈜두산의 특별관계자 보유지분율은 보통주 기준 38.65%다. 그러나 박정원 회장과 동생인 박혜원 오리콤 부회장,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의 지분율은 합계 14.81%에 지나지 않는다. 박용만 전 회장 부자의 지분 매각은 박정원 회장 남매의 보유지분을 제외한 나머지 지분 중 일부의 추가 매물 출회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것이 재계의 해석이다.
㈜두산의 특별관계자 지분 분포(보통주 기준)를 살펴보면 오너 3세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과 두 아들인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부회장, 박석원 ㈜두산 사장 부자가 합계 10.10%를 보유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3세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과 세 아들인 박태원 한컴 부회장, 박형원 두산밥캣코리아 대표이사, 박인원 두산에너빌리티 부사장도 합계 10.12%를 들고 있다.
다만 재계에서는 이들이 만약 독립에 나서더라도 ㈜두산 지분을 시장에 대규모로 내놓으려 할 가능성은 낮다는 시선이 우세하다. 오너일가가 지주사 지배력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지분 3분의 1 이상(33.34%)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두산그룹 오너 4세의 경영체제가 어떤 식으로 확립될 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도 “사촌경영의 공식이 깨지더라도 오너일가가 내부 회의를 거쳐 일정 수준 이상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방안을 마련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