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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중단기물만 편성한 공모채…'비용' 사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김진원 CFO 취임 후 시황 변화 대응

이경주 기자  2022-08-01 17:13:15
SK텔레콤은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 최고 신용등급(AAA)을 자랑한다. 10년에서 최대 30년에 이르는 초장기물을 큰 부담 없는 비용으로 가뿐히 찍어왔다. 하지만 이번 딜에선 5년물 이하 단·중기물만 편성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처음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미국발 자이언트스텝 기조로 AAA급임에도 이자비용 부담이 크게 불어난 것이 배경으로 거론된다. 모든 트렌치(만기구조)가 4% 내외로 올랐다. 업계는 SK텔레콤 장기물 평가금리가 단기물과 비슷해진 상황에 주목한다. 향후 득실을 따져볼 포인트다.

◇3·5년물로만 최대 4000억…2008년 2·5년물 이후 처음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오는 8월 3일 2000억원 공모채 모집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할 계획이다. 트렌치는 3년물과 5년물로만 편성했다. 공모가 흥행할 경우 최대 4000억원으로 증액하기로 했다. 발행예정일은 같은 달 10일이다.

김 부사장(사진)이 지난해 말 CFO가 된 이후 두 번째로 나서는 딜이다. 김 부사장은 1966년 생(만 56세)으로 서울대 경영학과(학·석사)를 졸업했다. SK그룹 재무라인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SK㈜ 재무1실장직을 2016년 수행했다. 이후 SK USA 대표로 이동했다가 2018년 SK텔레콤으로 돌아와 MNO사업을 지원하는 코퍼레이트1센터 재무그룹장을 역임했다. 2021년 11월 CFO직인 코퍼레이트 플래닝(Corporate planning) 담당이 됐다.

SK텔레콤이 단·중기물로만 공모에 나선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13년만에 처음이다. SK텔레콤은 2008년 10월에 2년물(500억원, 6.77%)과 5년물(2500억원, 6.92%)을 찍었고 이듬해까지 같은 기조를 유지했다. 2009년 1월 3년물(457억원, 3.2%)과 7년물(400억원, 5.54%)을 발행했고, 같은 해 3월에도 3년물(802억원, 3.21%)과 7년물(2300억원, 5.92%)을 찍었다.



이후 수년 동안 공모채 시장에 발길을 끊었다가 2011년 12월 장기물과 함께 컴백했다. 5년물(1100억원, 3.95%)과 10년물(1900억원, 4.22%)을 찍었다. 이후론 올 상반기까지 모든 공모에 10년 이상의 장기물을 포함시켰었다.

저금리 시기엔 초장기물을 찍어도 금리 부담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 유동성이 풍부하던 2021년 1월에만해도 20년물을 1.89%금리로 찍었다. 당시 3년물 1.17%보다 0.72%포인트 높은 수준이었다.

장기물 배정액도 상당히 컸다. 10년물(500억원)과 20년물(1000억원) 배정액이 1500억원으로 단·중기물 1600억원과 비슷했다. 저렴한 비용으로 만기를 분산해 차환 부담이 특정 시기에 몰리는 리스크를 없앴다. AAA급만이 구사 가능한 전략이었다.

김 부사장은 취임 후 첫 딜인 올 4월 공모채까진 장기물을 유지했다. 3년물(3.8%), 5년물(3.84%)과 함께 20년물(3,78%)을 찍었다. 다만 배정액은 20년물이 400억원으로 과거보다 크게 줄였다. 대신 3년물을 2400억원으로 크게 늘렸다.



◇3년물도 민평금리 4%, 비용 절감 택해

SK텔레콤 초장기물은 공급만 된다면 시장은 크게 호응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도 위험이 거의 없는 채권인데 10~20년간 4% 내외의 높은 연간 이자수익률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이 올 4월에 발행한 20년물 금리(3.78%)가 5년물(3.84%)보다 오히려 낮게 형성된 것도 이 같은 시장수요가 반영된 것이다. 통상적으론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아진다.

반대로 SK텔레콤 입장에선 과거대비 비용부담이 크게 불어난다. 이번 딜 환경은 올 4월보다 소폭 악화했다. 키스자산평가에 따르면 이달 27일 기준 SK텔레콤 3년물 평가금리는 3.953%로 4월 발행금리(3.8%)보다 0.15%포인트 높다. 5년물 평가금리는 3.954%로 4월(3.84%)보다 0.12%포인트, 20년물 평가금리는 4.006%로 4월(3.78%)보다 0.23%포인트 웃돈다.



이에 만기 분산과 함께 장기물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4%’ 금리가 장기물을 발행하지 않는 일종의 마지노선이 된 셈이다. SK텔레콤은 차입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에 금리상승기 비용부담이 다른 기업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커진다. 총차입금은 올 1분기말 기준 10조4920억원, 차입금의존도는 34.3%다.

이에 지난해까지는 금융비용이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올 들어 상승세로 돌아섰다. 금융비용은 2019년 4380억원에서 2020년 3229억원, 2021년 3156억원이 됐다. 반면 올 1분기는 931억원으로 전년 동기(793억원)대비 140억원 가량 늘었다.



◇수년 뒤 금리 하락에 베팅, 미국 연이은 빅스텝은 '변수'

고금리 추세가 오래가지 않는다면 이번 전략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업계에선 현재 크레딧물 금리가 현재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에 주목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7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린 2.25∼2.50%로 결정했다.

미국 기준금리가 상단(2.5%) 기준으로 한국 기준금리(2.25%)를 추월한 것으로 시장에선 외자유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미국은 올 하반기 추가 인상에 나서 연말 기준금리는 3.5~4.0%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이에 우리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2.75∼3.00% 수준으로 올릴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높아진 금리가 수년 동안 지속되거나 하락하더라도 폭이 작을 경우가 문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엔 한동안 고금리가 지속됐다. 국고채는 2008년 중순 3년물 기준 5~6%대까지 치솟았는데 이후 수년 동안 3~4%대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이에 SK텔레콤도 해가 지날수록 더 큰 비용부담을 치르고 장기물을 찍어야 했다. 2013년 4월엔 20년물을 3.03%로 발행했는데, 1년 뒤인 2014년 5월엔 만기가 상대적으로 짧은 15년물을 훨씬 비싼 4.72%로 발행했었다.

내년 이후에도 고금리가 지속될 경우 지금 장기물을 찍는 게 유리할 수 있다. 현재 SK텔레콤 10년물 평가금리(3.968%)와 3년물(3.953%) 격차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중기적으로 금리가 하락하는 상황에 베팅을 했다는 평가다. 크레딧 업계 관계자는 “미국 빅스텝 여파로 여전히 국내 크레딧물 금리 상승에 대한 경계감이 있긴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조만간 피크아웃할 것이란 시각도 공존하고 있다”며 “SK텔레콤도 수년 내 금리가 하락할 것이란 관측에 베팅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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