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에는 상장 후보들이 많다. 상장 건설사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데다 조 단위 시총 이상 대어급이 즐비하다. 최근 수년간 최적의 상장 타이밍을 노려온 건설사들이 올해 들어 기업공개(IPO)를 본격화할 분위기다. 주요 상장 후보 건설사들의 기업가치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이를 조명해보는 동시에 각사의 IPO 전략도 살펴본다.
호반건설은 그동안 기업공개(IPO) 추진에 대해 대체로 느긋한 스탠스를 유지해왔다. 상장 계획을 처음 공식화시킨 2018년 이후 몇 번의 상장 적기가 있었지만 강행하지 않았다. 기업가치 극대화 측면에서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있다면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패턴을 보였다.
여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상장의 목적이 자금 조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반에 이미 5000억원대 현금성 자산을 비축했고 ㈜호반과 합병 이후엔 1조원대 규모 현금을 손에 쥐었다. 리스크가 큰 사업을 기피하고 보수적인 차입기조를 유지해 온 덕분에 재무구조도 탄탄하다.
◇상장 목적 '대외 이미지 제고'…자금 충분, 느긋한 스탠스
호반건설이 상장을 추진한 진짜 목적은 대외 공신력 제고에 있다. 10년간 급성장한 덕분에 규모 면에선 전국구 대형건설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지만 실제 업계에서의 영향력이나 대외 신뢰도, 브랜드 이미지 측면에선 아직 지방 건설사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급성장과 맞물려 김상열 회장을 비롯한 총수일가 구성원들이 그룹 지배구조 측면에서 공정위 등 당국의 제재를 받기 시작하면서 이미지 실추도 이뤄지던 시기였다. 상장사가 없다는 건 ESG 등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지배구조 투명성 등을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받아들이는 업계 분위기에도 역행하는 요소였다.
대기업집단에 속하지도 않은 탓에 공시의무 없이 1년에 한번 연결감사보고서만 제출하는 호반그룹의 폐쇄성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내부적으로 준법경영을 하고 있음에도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덩치는 커졌으나 그에 맞는 지위를 누리지 못한다는 불만족감이 상장에 대한 필요성을 키웠다.
상장을 처음 공식화한 2018년엔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실적과 재무건전성, 그룹 및 총수일가의 의지 등 모든 면에서 빠지는 요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수조원대 밸류의 대어급 상장사의 탄생이 기대됐다. 하지만 절차가 지지부진 미뤄지기만 하다가 여전히 상장이 이뤄지지 않았다.
첫번째 상장 연기는 전략적으로 이뤄졌다. 사업분야가 유사한 ㈜호반과 호반건설을 합병해 상장하는 쪽이 지배구조 단순화와 기업가치 극대화 측면에서 유리할 것이란 아이디어를 그룹 측이 받아들였다.
㈜호반을 합병한 호반건설은 단숨에 시평순위 10위권으로 들어갔다. 매출액은 1조원 중반대에서 2조원 중반대로 훌쩍 뛰었고 영업이익 및 상각전 영업이익(EBITDA)은 3000억~4000억원 규모로 커졌다. 순자산 규모 역시 3조원대로 급등하면서 주가순자산비율(PBR)을 기준으로 한 시가총액은 최대 4조원까지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듬해엔 실적까지 받쳐주면서 더할 나위 없는 적기가 찾아온 듯했다. 합병 직후인 2019년에 호반건설이 거둔 2조4800억원대 매출과 4200억원대 영업이익, 3400억원대 순이익은 역대 최고 실적이었다. 순이익 대부분이 이익잉여금으로 전환되면서 순자산(자본총계)은 3조5000억원선까지 올랐다.
PBR을 비롯해 EV/EBITDA, 주가수익비울(PER) 등 밸류에이션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든 최소 2조원대 중후반에서 3조원대 수준의 기업가치가 도출됐다. 회사 측 역시 상장 최적기임을 직감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상장을 강행할 것이란 얘기가 그룹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다시 찾아온 적기, 코로나 사태로 흔들린 IPO 기대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를 휩쓴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해외 현장 대부분이 셧다운 되고 국내 부동산 시장도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무엇보다 코스피(KOSPI) 지수가 1300선까지 떨어졌기에 상장을 강행한다면 큰 폭의 밸류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밸류에이션 책정 과정에서 전년도 실적의 가중치가 가장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대급 실적을 거둔 직후인 2020년은 상장의 골든타임이었다. 다만 자금이 급하지 않은 호반건설로선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회사 내에 상주해있던 주관사단은 철수했고 그렇게 또 한번 일정이 미뤄졌다.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1조원 아래로 떨어지는 등 한 차례 실적 부진을 겪은 호반건설은 이듬해(2021년)에 곧바로 종전 수준 실적을 회복했다. 지난해 매출은 2조3300억원,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3900억원대다.
실적지표 상으론 3조~4조원대 이상의 밸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반을 다시 마련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내 부동산 경기 호전 기대감도 일고 있다.
남은 건 그룹 측의 결단이다. 올해 역시 지난해 수준의 실적을 낼 경우 기업가치 측면에서 다시 한번 골든타임이 찾아오는 셈이다. 현재 SK에코플랜트의 상장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총수 일가는 그 결과를 지켜본 뒤 재추진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