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에는 상장 후보들이 많다. 상장 건설사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데다 조 단위 시총 이상 대어급이 즐비하다. 최근 수년간 최적의 상장 타이밍을 노려온 건설사들이 올해 들어 기업공개(IPO)를 본격화할 분위기다. 주요 상장 후보 건설사들의 기업가치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이를 조명해보는 동시에 각사의 IPO 전략도 살펴본다.
한화건설은 건설업계 IPO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항상 함께 거론된 후보군중 하나였다. 수년간 3조원대 매출과 2000억원대 영업이익을 꾸준히 내온 덕에 상장할 경우 조단위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회사 ㈜한화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특성상 상장시 구주매출을 통한 자금유입도 기대해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화건설은 최근 수년간 대어급 후보들 중 'IPO설'에 가장 적게 엮인 곳이기도 하다. 건설업계에 호황 사이클이 찾아올 때마다 주요 후보들의 IPO 추진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한화건설은 한발짝 떨어져있었다.
◇2000년대 상장설 수차례, 실제 추진 '제로'
한화건설의 IPO 추진 가능성이 낮게 예측된 건 그룹 차원의 IPO 니즈가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화 입장에선 최근 수년간 한화건설을 급하게 상장시켜야할 정도의 자금 수요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 실적 부진이나 재무건전성 악화로 한화건설 자체에 자금 수요가 생길 때면 상장 논의에 앞서 모회사 차원의 별도 지원이 이뤄지면서 위기를 넘겼다.
여러 계열사들의 지분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구조가 아니라 지배구조 개편 논의가 나올 때도 한화건설은 언급되지 않았다. 100% 자회사인 덕에 김승연 회장 슬하 3남을 중심으로 한 승계구도 시나리오에도 한화건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화건설 역시 IPO설에 강하게 연루된 적이 수 차례 있다. 대부분 모회사의 자금 수요 이벤트가 발생하거나 한화생명 지분 보유 변동이 생길 때마다 시장에선 상장설이 강하게 제기됐다.
2000년대 들어 처음 나온 IPO설은 모회사가 한화건설의 대규모 유증에 참여한 것과 맞물렸다. 2007년 11월 한화건설이 단행한 800만주 규모 유상증자에 ㈜한화가 3000억원 규모로 참여했다. 당시 한화그룹의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인수전에 한화건설이 대신 뛰어든 대가로 수천억원 규모 차입금을 떠안고 재무건전성이 악화되자 모회사가 지원에 나선 것이었다. 당시 업계는 ㈜한화의 유증을 두고 한화건설 IPO에 앞서 기업가치 개선 차원에서 이뤄진 재무적 지원으로 해석했다.
2008년엔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상장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회사측은 수조원대로 추산되는 인수자금 중 일부를 한화건설 IPO를 통해 조달할 계획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인수가 무산되면서 상장 논의도 같이 멈췄다.
한화건설 IPO 논의는 그 후에도 물밑에서 계속 이뤄졌지만 2009년 큰 이벤트가 생기면서 또 다시 멈췄다. 2010년 보험업계 최대어였던 삼성생명이 상장에 나서자 한화그룹 역시 한화생명 상장을 최우선순위 과제로 올리면서다. 당시 한화생명과 한화건설을 비롯해 그룹 내 주요 비상장사들을 같은 선상에 올려두고 상장을 검토해 오던 그룹측은 이 일을 계기로 다른 IPO 계획을 올스톱하고 한화생명 상장에 집중했다. 한화건설 상장은 다시 기약이 없어졌다.
2016년에도 상장 추진 무드가 조성된 바 있다. ㈜한화가 한화건설에 2000억원 규모 한화생명 지분을 출자하면서 재무 지원 이후 상장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당시 ㈜한화는 보유 중인 한화생명 지분을 한화건설에 매각했다. 이와 동시에 한화건설이 단행한 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한화가 참여했다. 결과적으로 한화건설은 ㈜한화에서 유입된 자금으로 한화생명 지분을 추가 인수한 셈이다. ㈜한화가 한화생명 지분을 한화건설에 현물출자한 것과 같은 결과다.
당시는 ㈜한화가 방산분야 투자 등 신사업 확대를 위해 유동성 확보에 나서던 시기라 대규모 자금 확보를 위해 한화건설을 상장시킬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지분 출자는 상장 추진에 앞서 한화건설 재무건전성을 개선시키면서 기업가치를 극대화시키려는 사전 작업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당시에도 상장은 추진되지 않았다.
◇지배구조·승계 이슈 무관한 지분구조…그룹 차원 판단 필요
2020년대 들어 현대엔지니어링, SK에코플랜트 등 다른 대어급 비상장사들이 잇따라 IPO 대열에 나서고 있지만 한화건설은 조용하다. 한화그룹측은 한화건설 상장 필요성이 아직은 크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모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한 단순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어 지배구조 개편 논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 회장과 3남의 승계 구도 논의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한화그룹 승계 시나리오에서 핵심적으로 언급되는 계열사는 3남이 지분을 나눠갖고 있는 한화에너지와 지주사인 ㈜한화다.
그 밖에 지주사 차원에서 대규모 자금 수요가 있는 것도 아니라 한화건설 IPO 프로세스는 당분간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건설업계 업황만 보더라도 아직 불확실성이 커 투심과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유리한 상황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한화그룹은 한화건설 상장 적기를 포착하기까지 충분히 더 기다리겠다는 스탠스를 보였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