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서 은행권은 드디어 올 게 왔다는 분위기다. 팬데믹으로 바닥을 쳤던 금리가 꾸준히 상승하고 고금리 장기화 기조가 이어지면서 은행권은 대표적인 수혜 업종으로 꼽혔다. 이 기간 '이자 장사'를 한다는 오명을 쓰기도 했으나 가계, 기업을 불문하고 대출 수요가 끊기지 않으면서 순이자마진(NIM)을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향후 금리 인하 폭이 제한적이고 속도도 느릴 것을 암시했지만 은행권에서는 NIM 하락 사이클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매년 역대급 실적을 갱신하면서도 언제까지 이자이익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는 진단에 힘이 실리고 있다. 행별로 자산관리 비즈니스를 정비하는 등 비이자이익 확대 준비에 한창이다.
◇4대 시중은행, 팬데믹 대비 약 200bp 상승…정점 찍었나 은행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KB국민은행은 NIM 1.84%를 기록했다. 이어 신한은행 1.6%, 우리은행 1.48%, 하나은행 1.46% 순이다.
행별 NIM은 팬대믹 초반이었던 2020년과 비교하면 두드러지게 상승했다. 2020년 말 기준 KB국민은행 1.51%, 신한은행 1.37%, 우리은행 1.33%, 하나은행 1.28%다. 4대 시중은행은 평균적으로 지난 3년 6개월 동안 NIM을 200bp 넘게 높였다.
은행권 NIM 상승 배경에는 고금리 장기화 기조가 자리한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020년 5월 0.5%까지 낮춘 이후 순차적으로 높여 2023년 1월 3.5%까지 상승시켰다. 이후 1년 9개월여 동안 3.5% 수준의 기준금리가 유지됐다. 이 기간 은행권 금리가 인하될 조짐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꾸준히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시중은행은 영업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금리 인상기에는 대출 이자와 함께 조달 비용도 같이 오르지만 전반적으로 은행이 마진을 남기기에 유리한 구도가 만들어진다.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더라도 대출 자산 포트폴리오를 운용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높은 금리에도 불구 대출 수요가 꺾이지 않으면서 은행권은 지난해 일제히 역대 최대 연간 순이익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에는 반기 기준으로 전년도 순이익을 넘어서며 실적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고 있다. 부동산 매매 수요를 바탕으로 하는 가계대출이 꾸준히 상승했고 은행의 적극적인 영업을 바탕으로 법인대출도 대폭 늘었다.
이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 만큼 높은 NIM을 바탕으로 하는 실적 개선은 만만치 않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순이익이 대폭 늘어나는 과정에서 4대 금융지주는 개선된 자본비율 관리 및 주주환원 계획을 내놓았다. 금융지주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높은 만큼 성장을 지속해야 주주환원 약속을 지킬 수 있다.
◇수수료 비즈니스 준비 한창…국민 투자자문업 진출·신한 브랜드 재정비 금리 인하 사이클이 도래할 때마다 은행권은 자산관리 비즈니스를 정비에 분주하다. 금리가 낮아지면 자산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해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이클에도 금융상품 판매 수수료와 자산관리 자문 수수료를 바탕으로 이자이익 감소를 만회하는 게 은행권의 기본적인 전략이다.
KB국민은행은 국내 은행 중 최초로 투자자문업에 진출하면서 비이자이익 확대에 나섰다. 투자자문업은 고객에게 포트폴리오 상담을 제공하고 관리 수수료를 수취하는 형태의 비즈니스다. 단순히 금융상품 판매를 늘려 판매보수를 쌓는 것과 차이가 있다. 국내 홍콩H ELS(주가연계증권) 최대 판매사인 KB국민은행은 올해 대규모 손실 및 불완전판매 사태로 파장을 낳았지만 투자자문업을 바탕으로 신뢰를 회복한다는 목표다.
신한은행은 자산관리 브랜드 '신한 프리미어'를 론칭하고 대고객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투자상품, 투자 전략, 세무, 상속, 증여, 부동산, IB 등 각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조직을 출범시키는 등 내부 조직도 재정비했다. 과거 라임펀드 사태 여파로 축소된 자산관리 비즈니스를 다시 확대하는 수순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반적인 은행권 경영진이 이자이익 하락에 대비해 자산관리 비즈니스 재정비를 당부하는 분위기"라며 "내년도 연간 경영계획을 수립하는 연말이 되면 비이자이익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