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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철 호전실업 회장의 고집과 꿈

김소라 기자  2024-09-11 10:26:34
"50년 전 매일 술 먹고 접대만 받았다면 지금쯤 파고다공원에서 놀고 있었을 겁니다. 상대적으로 늦게 이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없었죠. 올해 82살이고 이젠 쉬어도 됩니다만 아직 일을 놓을 수 없는 건 오랫동안 꿈꿔온 비전을 제 손으로 마무리 짓기 위함입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호전실업'의 박용철 회장은 짧지 않았던 '의류인'으로의 삶을 이렇게 반추했다. 의류가 아닌 식품 공학을 대학에서 전공했지만 생에 가장 많은 시간을 옷에 할애했다. 남들보다 한 발짝 늦은 시작이었지만 지금은 몇 발짝 더 앞서 나가는 회사를 일궜다.

비결은 쉽지 않은 선택에 있었다. 매번 갈림길에 설 때 어려운 길을 택했다. 주위에서 볼 때 '굳이' 혹은 '고지식하다' 여길 수 있는 선택을 내렸다. 처음 그가 의류 사업에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호전실업을 창업해 후세대를 위한 성장 토양을 다지기까지 기꺼이 고된 길을 택했다.

박 회장은 언제나 분위기가 손바닥 뒤집듯 뒤집힐 수 있음을 알았다. 글로벌 스포츠웨어 브랜드 '리복'의 사례를 명심했다. 19세기 설립, 100여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브랜드임에도 현재 시장 인지도와 장악력 면에서 '나이키'에 뒤진다. 잘못된 경영 판단이 지금의 결과로 이어졌다. 세계를 재패하던 브랜드의 몰락을 목도하며 더욱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호전실업이 우븐 의류만 고집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대중적인 니트 소재 의류는 진입 장벽이 낮고 수요도 많아 신속히 수익을 낼 수 있다. 반면 고기능성 의류에 주로 사용되는 우븐 소재는 기술력 확보 등 초기 연구개발 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당장 매출 확보가 불확실하다 보니 과거 의류 기업들은 대부분 좀 더 쉽고 안정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 니트류를 택했다.

박 회장은 "해외 의류 바이어 구매를 대리하는 에이전트 재직 당시 니트 분야 경쟁이 치열한 것을 보고 훗날 독립하면 특수 의류 우븐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며 "당시 국내 생산 업체 제품을 검수하는 소위 갑의 위치에 있었지만 이때 회사에 살다시피 하며 의류 설계도 작성법을 치열히 공부했던 것이 큰 자산이 됐다"고 회상했다.

박 회장은 이제 가장 값진 수확을 앞두고 있다. 2017년 코스피 상장 당해부터 철저히 준비해 온 의류 강국 한국을 만들겠다는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아이디어 넘치는 신진 디자이너를 지원하고 쇠락한 창신동 봉제 공장에 새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꿈이다. 박 회장의 오랜 도전이 또 한 번의 결실을 맺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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