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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 실업률 상승 등 경기 침체 신호 가시화 및 글로벌 머니 무브 가속에 따른 영향이다. 'R(경기침체)의 공포' 속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급락한 가운데 한국 주식 시장도 그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하고 있다. 이미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며 운신의 폭이 좁아진 국내 상장사들은 글로벌 증시 변동에 따른 기업 가치 관리 이슈에도 직면했다. 특히 앞서 저리로 메자닌을 발행한 기업의 경우 투자자 조기상환 압박이 거세지는 추세다. THE CFO는 변동성 장세 속 국내 상장사의 메자닌 상환 이슈와 재무 영향들을 짚어본다.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사업을 영위하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호전실업'이 전환사채(CB) 누적분을 잇따라 털어내고 있다. 기존 투자자의 자금 조기 상환 요구가 집중되고 있는 탓이다. 올해에만 80여억원의 자금을 빚 대응 용도로 지출했다.
기업가치 부진은 오랜 고민이다. 2017년 상장 후 매년 꾸준히 영업익을 내는 등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밸류 측면의 뚜렷한 변화는 감지되지 않는다. 내부적으론 비교적 주목도가 떨어지는 의류·섬유 업종인 점과 기발행 CB의 매각대기물량(오버행) 가능성 등을 저평가 이유로 꼽고 있다. 현재 어느 정도 재무체력을 갖춘 만큼 환원 여력을 확대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호전실업은 이달 기준 약 66억7000만원 규모의 미상환 CB를 보유 중이다. 올해 기발행 CB 물량을 상당분 털어내며 부채를 축소했다. CB 투자자 조기상환(풋옵션) 청구 행사가 잇따르며 채권을 대거 회수했다. 올초부터 지난달까지 상환 완료된 CB는 총 78억원이다. 해당 물량은 전액 소각한다는 방침이다.
◇부메랑 된 '제로금리'…PBR 만년 1배 미만 호전실업이 사채 만기 전 물량을 사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주가가 장기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보유하고 있는 11~13회차 CB 전환가액이 7000원~1만원대에 형성된 반면 근래 주가는 7000원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차익을 실현하지 못하고 장기간 발이 묶인 투자자들이 하나둘 풋옵션을 요구하며 투자금 회수에 나섰다. 풋옵션 청구 가능 기간은 대부분 지난해 하반기 이미 도래했다.
저금리 조건도 결과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다. 발행한 CB 모두 표면 이자율이 0%로 설정된 탓에 투자자는 해당 CB를 갖고 있어도 별다른 효익을 누릴 수 없었다. 당초 CB 투자 목적이 주식 전환을 통한 차익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셈이다. 호전실업 입장에서 다소 유리하다고 평가됐던 사채 발행 조건이 현재로선 풋옵션 청구 요인 중 하나가 됐다.
호전실업은 밸류 관점에서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며 장기간 저평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2017년 코스피 상장 후 주가순자산비율(PBR)은 매년 1배 미만에 머물렀다. 이는 기업의 기초 체력인 자기자본(장부가액)을 준거로 밸류를 평가한 것인데 현재 호전실업 기업가치가 자본총액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의미다. 올 1분기 말 호전실업 PBR은 0.4배로 나타난다.
호전실업은 내부적으로 분위기 반전 계기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수익성 개선을 위한 방안 마련을 타진 중이다. 당해 프리미엄 아웃도어 브랜드 '아크테릭스'를 신규 고객으로 확보, 제품 공급을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물량 대응을 위한 신규 생산 라인 투자도 앞두고 있다. 현금성자산 재배치를 통한 효율성 제고 면에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익잉여금 1100억대 쌓아, 필수 영업 유보금 변수 주주환원 강화는 미지수다. 호전실업은 상장 후 매년 현금 배당을 꾸준히 실시했다. 최근 3년간의 활동을 보면 당기순이익의 약 15%를 배당 재원으로 배정했다. 다만 2022년은 배당성향이 10%대에 그치며 상대적으로 낮았다. 당시 순익이 전년 대비 2배 넘게 증가한 반면 총 배당 지급액 변화는 이에 못 미친 탓이다. 구체적으로 전년 대비 24% 늘어난 것에 그쳤다.
자사주 매입 여력은 있다. 올 1분기 호전실업 이익잉여금은 1120억원 수준이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배당가능이익의 일부를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영업활동 대응 면에서 유보 자금을 확충해 둬야 하는 부분이 있어 당장 결정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호전실업 관계자는 "영업구조 상 매년 하반기 매출이 집중되고 내년도 상반기 곧바로 자재 매입 비용에 대응하는 등 계절적 요인을 타다 보니 유동성이 충분하진 않은 편"이라며 "밸류 관련 다각도에서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지만 당장 확정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