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B그룹이 지난해 인수한 HLB이노베이션의 바이오 색채를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 중심 회사에서 신약개발기업 베리스모 테라퓨틱스(Verismo Therapeutics) 인수로 바이오 연구업체로 거듭날 전망이다.
인수합병(M&A) 방식은 과거 HLB가 엘레바 테라퓨틱스를 인수한 것과 같은 삼각주식교환을 택했다. 별도의 자금조달 없이 베리스모를 100% 자회사로 편입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 베리스모의 기존 주주였던 HLB, HLB제약의 HLB이노베이션 지배력도 유지할 수 있는 선택이다.
◇자금조달 없이 100% 인수…HLB그룹의 HLB이노 지배력 유지 HLB그룹에 따르면 HLB이노베이션은 이달 28일 HLB이노베이션 미국법인 HLBI USA의 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HLBI USA를 100% 자회사로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총 1563억원을 투입해 2701만7867주를 확보한다.
동시에 HLB이노베이션은 HLBI USA를 대상으로 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HLBI USA 역시 1563억원을 투입해 HLB이노베이션 신주 5004만4590주를 받는다.
HLBI USA는 확보한 HLB이노베이션 주식을 미국 신약연구개발 기업 베리스모 인수에 활용한다. HLB이노베이션 보통주를 베리스모 구주주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베리스모를 인수한 뒤 합병 절차를 진행한다.
즉 HLB이노베이션은 별도의 자금조달 없이 신주를 발행해 베리스모를 100% 자회사로 편입시킬 수 있게 된다. 이같은 삼각주식교환을 통한 M&A는 딜 구조가 복잡하지만 자사주를 활용할 수 있어 HLB그룹이 주로 채택하던 거래 방식이다.
베리스모 주주구성을 살펴보면 HLB이노베이션이 18.4%로 가장 많은 지분을 들고 있다 이어 HLB가 13%, HLB제약이 19.3%를 각각 쥐고 있는 형태다. HLB그룹이 보유한 지분이 절반 정도다. 그 외에도 벤처캐피털 등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HLBI USA가 베리스모 인수 대가로 지급하는 HLB이노베이션 주식 절반이 HLB그룹으로 배분된다는 의미다. 사전에 각 계열사에서 베리스모 지분을 확보해둔 덕분에 HLB이노베이션이 대규모 주식을 신규 발행하면서도 HLB그룹의 HLB이노베이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베리스모 인수를 위해 HLB이노베이션이 발행하는 신주 5004만4590주는 총발행주식수의 70%에 달하는 대규모 물량이다. HLB그룹이 보유한 HLB이노베이션 주식 2804만3917주(38.8%)를 훌쩍 뛰어넘는다.
HLB그룹의 베리스모 지분이 적었다면 자칫 HLB이노베이션의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어 삼각주식교환 방식을 채택하기 어렵다. 2500만주 가량이 다시 HLB, HLB제약 등으로 배정됨으로써 HLB그룹의 HLB이노베이션 지분율이 소폭 늘어날 전망이다.
◇그룹 내 커지는 CAR-T 무게감…오너2세도 참여 베리스모는 HLB그룹이 2021년 초부터 베리스모에 투자를 진행해왔다. HLB와 HLB제약이 각각 10%, 20% 지분을 각각 확보하면서 최대주주에 올랐다.
당초 HLB제약을 앞세워 베리스모를 인수하고 지원하는 비히클로 삼았지만 그 계획을 새로운 기업으로 변경했다. 지난해 반도체 제조 기업 피에스엠씨(현 HLB이노베이션)를 인수한 배경이다.
베리스모는 노바티스의 CAR-T 치료제 '킴리아'를 개발한 연구팀을 주축으로 설립한 바이오벤처다. CAR-T의 아버지라 불리는 ‘칼 준’ 교수가 창업 어드바이저(Founding Advisor)로서 기술 및 임상개발의 자문을 맡고 있다.
CAR-T 치료제는 단 한 번의 투약으로 암을 근본적으로 치료한다고 해 '꿈의 항암제'로도 불린다. HLB그룹은 CAR-T 치료제를 자사 항암 신약 '리보세라닙'을 이을 후속 파이프라인으로 낙점한 상태다.
HLB이노베이션 인수는 처음부터 베리스모와 협업하기 위한 목적이 뚜렷했다. 바이오와는 거리가 먼 반도체 부품을 제조하지만 HLB그룹이 인수 후 사명을 바꾸고 사업목적에 바이오의약품 및 생물학적제제, 유전자 치료제 등의 연구개발 및 기술이전 사업, 기술료 수익사업을 추가했다.
이사회에 베리스모 핵심 경영진도 참여시켰다.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김병진(브라이언 킴) 최고경영자(CEO), 김중성 최고재무책임자(CFO)가 HLB이노베이션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김 CEO는 HLB그룹이 HLB이노베이션 인수 당시 진행된 1, 2회차 전환사채(CB)의 콜옵션(매도청구권) 30% 행사 권한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진양곤 HLB그룹 회장 차녀 진인혜 씨가 발을 들인 사업이라는 점에서도 HLB그룹에서 베리스모가 지니는 중요도를 가늠할 수 있다. 진 씨는 베리스모에서 리서치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HLB이노베이션 이사회에 올랐다. 그는 HLB인베스트먼트 투자본부에도 몸담고 있다.
HLB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삼각주식교환 및 합병으로 HLB이노베이션이 베리스모 임상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며 "동시에 HLB이노베이션 기업가치를 극대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