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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 10년 악성 재고 털고 '본업'에 집중

미완성선박 재고 10년 만에 1조 밑으로…'돌발변수' 즈베즈다 중재 여파도 제한적

최은수 기자  2024-08-30 15:21:45

편집자주

제조기업에 재고자산은 '딜레마'다. 다량의 재고는 현금을 묶기 때문에 고민스럽고, 소량의 재고는 미래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또 걱정스럽다. 이 딜레마는 최근 더 심해지고 있다. 공급망 불안정에 따른 원재료 확보의 필요성과 경기침체에 따른 제품 수요의 불확실성이 샌드위치 형태로 기업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벨은 기업들의 재고자산이 재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살펴본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들어 재고자산을 대거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10년 가까이 악성재고로 남아 재무를 압박하던 드릴십 4척 모두 연내 인도를 앞둔 결과다. 이제는 본업인 선박 수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됐다.

러시아 선사 즈베즈다(Zvezda)와 미인도 선박에 대한 중재가 시작된 건 돌발 변수다. 그러나 뜻밖의 재고를 떠안아야 했던 과거가 반복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10년 만에 재고 자산 1조 아래로 '출하 막혔던 드릴십 활로'

2024년 상반기 기준 삼성중공업의 전체 재고자산은 9042억원이다. 직전 분기 1조1629억원보다 약 2590억원 줄었고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10년 간 삼성중공업의 발목을 잡던 드릴십 재고 리스크가 이제야 마무리 단계에 도달한 영향이다.


조선 사업은 통상 발주가 선행된 이후 제작을 진행하는 '도급'계약과 닮았다. 이에 따라 일반적인 상황에선 재고자산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재고가 존재한다면 발주 취소나 발주사 사정으로 수주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주인이 없어진 선박인 경우다.

삼성중공업의 재고자산은 당초 드릴십을 발주한 선주사들이 2014년 글로벌 유가 폭락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면서 치솟았다. 국제유가 폭락기를 맞으면서 드릴십을 통한 수지가 나오지 않기 시작한 점이 사태에 영향을 미쳤다. 결과적으로 선박이 인도되지 않고 재고로 남으면서 매출이 정체하고 유지 보수 비용이 발생하는 악순환을 낳았다.

삼성중공업이 2014년 이후 1조원을 웃돌던 재고 리스크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건 재고 사태가 심화한 2020년대 이후다. 2021년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큐리어스파트너스에 미인도 드릴십 4척(크레테, 도라도, 존다, 드라코)을 1조400억원에 매각을 체결한 게 시발점이다.

현재 추세대로면 올해 앞서 드릴십 재고 리스크는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전망이다. 더불어 최종 매각 작업까지 마무리되면 본격적으로 현금이 유입되면서 수익성 또한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은 이같은 기대가 현실로 이뤄지진 않았다. 10년 가까이 묵었던 재고자산을 반으로 감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작업이 '현금화'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다. 삼성중공업의 올해 반기말(연결) 기준 현금성자산은 4124억원이다.

20년 동안 삼성중공업의 현금성자산이 5000억원을 밑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018년 CFO를 맡은 배진한 부사장(사진)이 수 년째 적자에 직면하자 "이대로는 내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위기의식을 촉구하던 2021년보다도 낮은 수치다. 드릴십 재고 리스크에 봉착하긴 2014년 이전에도 유동성은 줄곧 8000억원에서 1조원 이상을 유지했었다.


◇즈베즈다 이슈, 공정 막히지 않아 재고 리스크 재점화 가능성 낮아

삼성중공업의 대 수확의 기다림에 대한 기대를 가리는 불안요인은 러시아 조선소 즈베즈다(Zvezda)와의 중재 이슈 정도다. 당초 삼성중공업은 삼성중공업은 지난 2019년에 러시아가 추진하는 대규모 LNG 개발 사업인 '아틱(ARCTIC·북극) LNG-2'에 투입될 LNG 운반선 15척과 셔틀탱커 7척 등 총 22척에 대한 선박 건조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즈베즈다를 특별지정제재대상(Specially Designated National, SDN)으로 지목하며 상황이 급변했다. 제재 리스트에 오르면 기업의 자산이 동결되고 외국과의 거래도 금지된다. 양측은 당초 협상을 진행하다 즈베즈다가 계약취소와 선수금 및 이자 지금 요청을 하며 중재를 이어가게 됐다.

삼성중공업은 대금 수취에 차질을 빚게 되자 지난해 아직 인도가 되지 않은 17척에 대한 선박 블록 및 기자재 제작 중단을 지난해 결정했다. 당초 삼성중공업은 국내에서 선박 블록·기자재 등을 제작해 즈베즈다 조선소로 보내면 이를 현지에서 최종 조립해 17척을 건조할 계획이었다.

즈베즈다와의 중재 결과가 어떻든 삼성중공업의 재고자산이 다시 치솟아 재무 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낮은 점은 긍정 요인이다. 삼성중공업은 대금 수취 불확실성을 이유로 2년 전부터 즈베즈다 조선 계약 관련 건조를 진행해오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즈베즈다 이슈에 대한 리스크 대응이 늦어져 이미 공정에 들어갔다면 다시금 대규모 재고자산을 인식해야 할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해당 이슈로 도크가 묶인 건 아니다. 더불어 다른 수주물량 건조 스케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 역시 낮단 뜻이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양사 계약에 따라 자동으로 중재를 진행하게 됐으며 현 시점에는 중재 결과를 예측할 수 없으나 중재 진행 중 원만한 합의가능성도 열려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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