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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찾기 시작한 삼성중공업의 복잡한 속내

올들어 주가 22% 상승…"제재 대상이라 선수금 송금할 방법도 없어"

이호준 기자  2024-07-05 10:32:38

편집자주

"10월은 주식에 투자하기 유난히 위험한 달이죠. 그밖에도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겠군요." 마크 트웨인의 저서 '푸든헤드 윌슨(Puddnhead Wilson)'에 이런 농담이 나온다. 여기에는 예측하기 어렵고 변덕스러우며 때론 의심쩍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주가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상승 또는 하락.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면 주식시장은 50%의 비교적 단순한 확률게임이다. 하지만 주가는 기업의 호재와 악재, 재무적 사정, 지배구조, 거시경제, 시장의 수급이 모두 반영된 데이터의 총합체다. 주식의 흐름에 담긴 배경, 그 암호를 더벨이 풀어본다.
◇How It Is Now

올들어 지금까지 삼성중공업의 주가 상승률은 22%입니다. 경쟁사들의 주가를 볼까요? HD현대중공업의 주가는 20% 상승했고 한화오션의 주가는 18% 올랐습니다. 국내 조선 3사 주주들 가운데 올해 가장 활짝 웃고 있는 쪽은 삼성중공업 주주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로 8조원, 영업이익은 2334억원을 올렸습니다. 삼성중공업이 마지막으로 연간 흑자를 낸 해가 9년 전이었으니 2021년 하반기부터 재개된 조선업의 선박 발주 사이클은 삼성중공업에 소중한 재기의 기회가 된 듯합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수주잔고입니다. 작년 말 상선 수주잔고는 280억달러로 향후 약 3년치 일감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질적으로도 우수한데요. 수주잔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수익성이 높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입니다.

올해도 상황이 매우 좋습니다. 삼성중공업은 2012년부터 실적 가이던스를 발표하고 있는데 올해는 매출 9조4000억원, 영업이익 4000억원, 수주 97억달러를 목표치로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상반기에만 49억달러를 수주해 과제의 절반 이상을 벌써 해결했습니다.

시장에서도 삼성중공업이 하반기에도 일감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이 전망대로라면 주주들은 더할 나위 없을 텐데요. 그러나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이곳에도 한 가지 우려되는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러시아에서 최근 들려온 계약 해지 통보입니다.

(단위:백만원, 출처:삼성중공업)

◇Industry & Event

계약 해지 통보의 근원지는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입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019년에 러시아가 추진하는 대규모 LNG 개발 사업인 '아틱(ARCTIC·북극) LNG-2'에 투입될 LNG 운반선 15척과 셔틀탱커 7척 등 총 22척에 대한 선박 건조 계약을 맺었는데요.

총 계약 금액은 57억달러(약 7조8400억원)로 이 당시 조선업계에서는 역대 최대 계약으로 기록됐던 '잭팟'입니다. 삼성중공업은 LNG 운반선 15척 가운데 5척을 건조해 인도를 마쳤고 인도한 5척에 대해서는 대금 90% 이상을 받은 상황으로 파악됩니다.

문제는 남은 17척입니다. 삼성중공업은 국내에서 선박 블록·기자재 등을 제작해 즈베즈다 조선소로 보내면 이를 현지에서 최종 조립해 17척을 건조하는 방식을 계획했습니다. 다만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현재 이 계획은 무산된 상태입니다.

즈베즈다 조선소가 미국 제재대상 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제재 리스트에 오르면 기업의 자산이 동결되고 외국과의 거래도 금지됩니다. 대금 수취에 차질을 빚게 된 삼성중공업은 결국 이 17척에 대한 선박 블록 및 기자재 제작 중단을 지난해 결정했습니다.

모든 갈등은 돈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즈베즈다 조선소는 삼성중공업이 내린 이 결정을 구실 삼아 삼성중공업 측에 계약 해지 통보를 했습니다. 그리고 선박 17척 건조를 위해 지불한 선수금 8억달러(약 1조1000억원)에 이자를 붙여 반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결국 선수금 약 1조1000억원과 지연이자의 지급을 둘러싼 분쟁이 최대 이슈로 떠오른 상황입니다. 삼성중공업은 최근 공시에서 "계약 불이행이 아닌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라며 "싱가포르 중재법원에 제소해 위법성과 반환 정도를 가리겠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 전경. 출처: 즈베즈다 조선소)

◇Market View

계약 해지가 주는 영향이 큰 만큼 시장 반응 역시 분쟁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주가는 곧장 반응했는데요. 삼성중공업이 관련 내용을 공시한 이달 12일 이후 주가는 3일 연속 하락 마감하며 시장이 이 소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삼성중공업이 패소하면 계약이 무산된 건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조단위 선수금과 지연이자가 회사 곳간에서 고스란히 다시 빠져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대부분의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가장 먼저 의견을 내놓은 곳은 신한투자증권입니다. 신한투자증권은 삼성중공업이 러시아 프로젝트 관련 충당금을 쌓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봤습니다.

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중공업의 거제 야드를 사용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공정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며 "소송은 몇 년이 걸릴 것으로 보이며 당장의 실질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신영증권도 비슷한 의견이었는데요. 대금 수취 불확실성을 이유로 2년 전부터 즈베즈다 조선 계약 관련 건조를 진행해오지 않았던 만큼 다른 수주물량 건조 스케줄에 문제되는 게 없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엄경아 신한증권 애널리스트는 "중재는 일반적으로 장기간이 소요되므로 단기적으로 회계상 변동은 없을 듯"이라고 했습니다.

(삼성중공업 1년 주가 추이. 출처: KRX)

◇Keyman & Comments

반응과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공은 싱가포르 중재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현재 삼성중공업은 곧 있을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국제중재 전문 로펌을 찾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판결에 따라 곳간에서 뭉칫돈이 빠져나갈 수 있는 만큼 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삼성중공업의 CFO는 배진한 경영지원실장(부사장)입니다. 더벨은 배 부사장의 생각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IR 담당자를 통해 회사의 관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내부의 진단 역시 시장 전문가들의 시선과 비슷했는데요.

삼성중공업 IR 관계자는 "즈베즈다 조선소가 제재 리스트에 오른 건 우리 측 귀책 사유가 아니다"라며 "그만큼 우리가 러시아 측에 8억달러 전액을 돌려주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만일 즈베즈다 조선소 측이 승소하더라도 제재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이상 선수금을 송금할 방법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러시아발 갈등을 뺀 상황에 대한 자신감은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이 관계자는 "올해 연간 목표의 거의 절반 이상 정도를 달성해 놓은 상태"라며 "해양 프로젝트 수주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 하반기에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출처: THE C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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