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은행권 리더십이 변화 기로에 섰다. 연말 5대 은행장 임기가 일제히 만료되면서 CEO 연임 또는 교체 결정을 앞두고 있다. 금융감독원 지배구조 모범관행이 적용되는 첫 CEO 승계 시즌으로 임기 만료 3개월 전부터 프로세스를 가동해야 한다. 지주 회장과의 역학관계, 임기 중 경영 성과, 금융 당국의 기준이 변수로 작용한다. 은행장들의 재직 기간 성과를 돌아보고 리더십 교체 가능성을 점검해본다.
조병규 우리은행장(
사진)은 우리금융에 새로 도입된 은행장 승계 프로그램을 거쳐 취임한 첫 번째 CEO다. 공정한 승계 프로그램을 통해 오랜 계파 갈등을 종식하려는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 이 과정에서 임 회장이 추진하는 조직 문화 개선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조 행장이 낙점됐다.
조 행장의 연임에는 첫 임기 중 성과가 전반적으로 고려된다. 민영 금융회사에 부합하는 성과주의 문화를 정착하고 영업력을 강화해 달라는 게 임 회장의 주문이었다. 조 행장의 임기가 1년 6개월로 다른 CEO에 비해 짧았다는 점도 연임 여부를 정하는 데 감안될 가능성이 높다.
◇성과주의 인사 기조 도입…영업 조직 역동성 회복 조 행장은 지난해 3~5월 진행된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오르면서 우리은행장으로 낙점됐다. 3개월에 걸친 은행장 승계 절차는 우리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시행됐다. 공정성이 담보되는 엄격한 프로세스를 거쳐 조 행장이 선임된 것이다.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이 도입된 건 우리은행의 고질적 문제로 이어져 온 계파 갈등을 CEO 승계 과정에서 차단하는 차원이었다. 우리은행에서는 전신인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 간 갈등이 CEO 승계 때마다 비화되곤 했다. 임 회장은 공정성을 담보한 평가 프로그램을 시행하면 내부 갈등을 봉합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조 행장은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며 CEO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임 회장이 제시한 기준에 가장 적합한 인물도 조 행장이었다. 임 회장은 우리은행이 성과주의를 기반으로 강한 영업력을 갖춘 조직으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 행장은 지점장 시절 맡은 지점을 전국 1등으로 만든 이력을 통해 영업력을 인정받았다.
조 행장은 취임 후 성과주의에 기반한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달 있었던 인사에서 기준에 미치지 못한 영업본부장과 지점장을 대거 후선 배치하고 중간관리자를 리더로 새로 발탁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4월에는 1분기 글로벌그룹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해 이례적으로 연중에 그룹장을 교체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조 행장이 취임한 지 1년이 되면서 우리은행 영업 조직이 역동성을 갖춰 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 상반기 역대 최대 순이익을 기록하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것도 영업점 분위기를 일신했기에 가능했다. 성과에 대해 보상하고 부진에는 책임을 지게 하는 조 행장의 경영 철학에 구성원들이 적응해나가고 있다.
◇잦은 CEO 교체로 동력 상실 전례 조 행장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지난해 7월 취임해 1년 6개월의 임기를 부여받았다. 통상 은행장의 첫 임기로 2년이 주어지는 것에 비해 반년이 짧다. 전임자인 이원덕 전 우리은행장의 용퇴로 지난해 상반기 승계 프로세스를 밟으면서 조 행장의 취임이 늦어진 영향이다.
조 행장의 경영 철학을 온전히 구현하기에 1년 6개월은 부족하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올해 2분기가 돼서야 조 행장이 주도하는 기업금융 영업 강화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는 만큼 추가 임기로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 행장은 최근 시중은행 순이익 1위 목표를 재차 밝히는 등 향후 실적을 추가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하고 있다.
임 회장은 과거 우리은행이 잦은 CEO 교체로 영업 추진 동력을 상실한 전례를 조 행장 연임 여부를 결정할 때 고려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원덕 전 행장은 1년 반 가량을 근무했다. 이원덕 전 행장의 전임자인 권광석 전 행장의 임기는 총 2년이었다. 2020년대 들어 2년 이상 재직한 행장이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