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 펀딩 생태계 점검
'큰 손' 새마을금고의 빈 자리, 붕괴된 프로젝트펀드 시장
⑤신생 PE 배출 '요람' 명성 빛 바래, 앵커 LP '대안' 없어
이영호 기자 2024-03-20 10:44:56
편집자주
수년간 이어진 유동성 파티가 끝났다. 전 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인수·합병(M&A) 시장에 드리운 그늘도 짙어졌다. 돈줄을 쥐고 있는 유한책임출자자(LP)는 잔뜩 움추러들었다. 펀딩 난이도가 한껏 높아진 상황에서 무한책임사원(GP)도 생존 전략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더벨은 찬바람이 거세진 펀드레이징 시장의 생태계를 점검해본다
새마을금고중앙회는 기존 출자시장 서열 구도를 뒤흔들 만큼 ‘큰 손’ 기관투자자(LP)로 꼽혔다. 특히 신생 프라이빗에퀴티(PE)의 앵커 LP로 자주 등장하면서 출자시장 내에서 다른 LP들과는 다른 독특한 포지션을 확보한 곳이기도 했다. 새마을금고 출자로 성장한 PE들도 상당수다.
그러나 새마을금고는 지난해 홍역을 치렀다. 출자과정에서의 비위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다. 이 여파로 PE 출자를 전담하던 기업금융부 인력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새마을금고 내 고위 관계자들과 출자를 리드하던 키맨도 실형을 선고 받았다. 새마을금고로부터 출자를 받았던 상당수 PE들과 연관된 인물들도 수사선상에 오를 만큼 시장에 후폭풍이 컸다.
새마을금고 부재 이후 1년 남짓 시간이 흘렀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개점휴업 상태에 빠진 뒤 중소 PE의 프로젝트펀드 펀드레이징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현재까지도 상당수 신생 PE들은 앵커 LP를 구하지 못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블라인드펀드가 없는 하우스들의 존재감은 계속 작아지고 있다.
◇프로젝트펀드 출자 시장 버팀목 역할했던 새마을금고
새마을금고가 유독 프로젝트펀드 출자에 강했던 이유가 있었다. 2012년 블라인드펀드 출자로 손실을 내자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관련 투자를 막았다. 궁지에 몰렸던 새마을금고는 프로젝트펀드 출자로 돌파구를 찾았다.
블라인드펀드가 하나의 펀드에 다수의 투자처를 담는 방식인 반면, 프로젝트펀드는 펀드 당 하나의 투자처를 담는다. 프로젝트펀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투자건당 검토가 필요했다. 손이 많이 가는 동시에 수준 높은 투자 이해도 없인 성공률이 높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투자처를 잘못 택했다간 펀드 실적이 그대로 손실에 노출돼서다. LP로서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새마을금고는 10년 넘게 프로젝트펀드에 집중하면서 경험 많은 인재들을 확보했다. 실제 투자 성공률도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근래 새마을금고 출자가 이뤄진 건 가운데 실패한 케이스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새마을금고 기업금융부의 지난해 운용 실적이 상당 높다는 게 IB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새마을금고는 중소 PE들이 프로젝트펀드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가장 먼저 찾아가야 할 곳이 됐다. 새마을금고 낙점을 받아 앵커 LP로 참여하면, 이를 본 다른 LP들도 후속 출자로 매칭하는 방식이었다.
단순 앵커를 서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다. ‘딜 메이커’로도 영향력을 크게 발휘했다. PE가 가져온 투자구조를 변경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면 전략적투자자(SI)를 섭외해 후순위 출자자를 확보하도록 하는 등 안전장치를 강화하기도 했다. 출자시장에서의 입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새마을금고가 신생 PE 등용문으로 자리잡으면서 신생 하우스가 중견 하우스로 성장하는 선순환 스토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출자과정에서의 의혹이 불거지면서 LP로서의 새마을금고 역할과 성과도 빛이 바랬다.
◇프로젝트펀드 출자시장 둔화, 지속될까
새마을금고는 신임 윤지선 자금운용부문장 체제로 새 출발했다. 이 과정에서 인적 쇄신과 조직 개편이 병행됐다. 윤 본부장은 고위험 자산 리스크 관리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점쳐진다. 기업금융을 담당하던 기존 인력들도 대부분 교체됐다.
10년 넘게 이어졌던 프로젝트펀드 출자 레거시도 사실상 명맥을 잇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큰 구설을 겪은 만큼 새마을금고가 과거처럼 프로젝트펀드 출자에 활발하게 나설 가능성이 낮다. 이에 다른 LP처럼 블라인드펀드 출자 위주로 돌아설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에 프로젝트펀드 시장 위축 역시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투자 건 중 PE가 프로젝트펀드를 통해 규모 있는 딜을 종결한 케이스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지난해 아르게스PE가 CJ푸드빌에 1000억원을 투자한 케이스가 거론된다.
물론 새마을금고 이슈만이 시장 위축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고금리에 따른 환경 변화 역시 주요 변수다. 고금리 국면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빠른 시일 내에 출자시장이 예전과 같은 활기를 되찾을지 불확실하다는 평가다. LP 입장에서는 기업투자 외에도 안정적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
프로젝트펀드 시장이 활로를 찾지 못할수록 과거 새마을금고 역할을 할 새로운 LP가 절실해질 수 밖에 없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근 일부 대형 공제회들이 프로젝트펀드 출자를 다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업계 관계자는 "100억~200억원 수준의 작은 펀드는 캐피탈사를 통해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넘어가면 공제회와 같은 굵직한 LP가 필요하다"며 "앵커를 서줄 투자자마저 부재한 상황에서 신생 PE는 스몰딜 외 선택의 여지가 크게 좁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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