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을 확대하려면 수익(매출)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여야 한다. 이 중 경기침체 국면에선 많은 기업이 비용을 줄이는 쪽을 택한다. 시장 수요가 줄어 수익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돈을 관리함으로써 돈을 버는'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THE CFO가 기업의 비용 규모와 변화, 특이점 등을 짚어본다.
지난해 산업계에서는 산업용 전기요금 상승이 주요 이슈였다. 한국전력이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연달아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면서 기업들의 부담이 커졌다. 특히 고려아연, 영풍을 비롯한 제련업계의 우려가 컸다. 제련 과정에서 전기를 많이 쓰는 만큼 전기요금이 올라가면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기 때문이다.
영풍의 경우 실제로 지난해 전력비용이 증가해 실적에 타격을 받았다. 그런데 고려아연은 오히려 전력비가 전년 대비 감소한 모습을 보였다. 업종이 같고 전기요금 상승이라는 변수도 같았는데 왜 비용 계산서는 다르게 쓰인 걸까.
◇고려아연 전력비 영풍 하회…비결은 발전소
지난해 고려아연과 영풍 별도기준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한 해 동안 영풍이 고려아연보다 더 많은 전력비를 쓴 것으로 파악된다. 영풍 전력비는 1746억원에서 2340억원으로 늘어난 반면 고려아연 전력비는 2033억원에서 1870억원으로 줄었다.
고려아연이 영풍보다 생산 규모가 훨씬 크다는 점을 놓고 보면 이례적이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는 지난해 말 기준 아연 64만20톤, 황산 139만7519톤, 동 3만1050톤 등을 생산했다. 영풍 석포제련소의 경우 아연 32만178톤, 황산 59만5664톤, 황산동과 전기동 각각 1017톤·2586톤을 만들었다.
두 기업 모두 전년 대비 생산량 차이가 크지 않았다. 가동률도 마찬가지다. 고려아연에 따르면 온산제련소는 가동 중단 없이 24시간 연속조업을 하고 있어 가동률 100%를 유지하는 중이다. 영풍 석포제련소 가동률은 2022년 81.2%에서 지난해 80.04%로 미미하게 낮아졌다. 생산량이나 가동률의 변동이 전력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얘기다.
전기요금 자체는 똑같이 올랐으니 전력비가 줄어든 고려아연 쪽에 특별한 요인이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고려아연의 비용 절감 비결은 자체 발전소다. 회사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온산제련소 인근에 약 2150억원을 투입해 자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지었다. 이 발전소는 고려아연 연간 전력비 10%를 줄이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됐다.
고려아연은 LNG 발전소를 지은 뒤 한국전력의 전기요금과 LNG 가격을 비교하며 더 저렴한 쪽의 비중을 키우는 방식으로 전력비를 통제해 왔다. 산업용 전기요금 가격이 상승한 최근에는 특히 LNG 발전소의 역할이 커졌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한국전력 쪽 전기 단가가 계속 오르다 보니 LNG 발전소 가동 비중을 많이 높였다”고 설명했다.
자체적으로 전력 수급이 가능한 고려아연과 달리 영풍은 전기요금 상승분을 상쇄하기 어려웠다. 석포제련소 등 영풍 제련부문은 영업손실 규모가 2022년 1079억원에서 지난해 1444억원으로 확대됐다.
◇영풍 자체 발전소 안 짓나, 못 짓나
영풍도 한때 고려아연처럼 자체 발전소를 지어 전력비를 절감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투자 규모가 부담이 될뿐더러 환경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별도기준 영풍이 보유한 현금은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해 2114억원이다. 고려아연이 건설한 것보다 작은 규모의 발전소를 계획한다고 해도 보유 현금의 상당량을 헐어야 할 공산이 크다. 차입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제련부문의 손실이 지속되는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
환경 정화와 관련해 투입해야 하는 비용도 만만찮다. 환경부는 앞서 2022년 말 영풍 석포제련소를 대상으로 환경오염시설 허가를 결정하며 오염물질 배출기준 강화, 폐수 하천방류 원천차단, 지자체의 오염토양 정화명령 적기 이행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영풍은 이와 관련한 충당부채 2541억원을 인식하고 있다.
석포제련소는 현재 폐수 재사용 시설을 완비해 폐수를 배출하지 않고 있다. 또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오염 지하수의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공장과 인근 하천 사이를 지하수 차집시설로 차단해놓은 상태다. 환경 오염의 위험을 예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줄였다. 하지만 발전소 등 신규 시설 건설에 관해 지역사회의 동의를 얻는 건 또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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