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급변하는 사업 환경과 시장선도를 위해 상당한 비용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한다. 이 가운데 미래수익 창출 가능성이 인정된 부분은 자산으로, 그렇지 못한 부분은 비용, 수익창출 효과가 기대이하인 부분은 손상 처리된다. 더벨은 R&D 지출 규모와 회계처리를 통해 기업의 연구개발 전략 및 성과를 들여다봤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2021년 신년사에는 눈에 띄는 대목이 하나 있다. 바로 "개발연구팀을 키우고, 연구원 수는 앞으로 10년 안에 열 배 이상 늘릴 것"이란 다짐이다. 이러다 할 연구개발(R&D) 투자 없이도 잘 성장해 온 회사라 업계는 이례적인 일로 여겼다.
3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고려아연의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개발연구팀은 1·2팀으로 늘어났고 융합혁신팀도 꾸려졌다. 연구원 수는 120명까지 증원됐다. 특히 연구소 운영의 핵심인 R&D비용이 두 배 이상 확대되며 '스케일'도 확 커졌다.
◇R&D 비용 3년새 123%↑…특허 등록 및 출원도 활발
고려아연 R&D를 총괄하는 곳은 기술연구소다. 기술연구소는 개발연구 1·2팀, 분석관리팀에 더해 약 2년 전 신설된 융합혁신팀 등 4개 조직으로 나뉜다.
총 연구원 수는 120명에 이른다. 3년 새 약 30명 가까이 증원됐다. 구체적으로는 제품·공정의 품질 관리를 맡는 분석관리팀에 가장 많은 인력(63명)이 배정됐다. 이어 신제품 개발 업무를 진행하는 개발연구 1팀(25명)·2팀(24명), 융합혁신팀(8명) 순서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역시 '비용'이다. 최윤범 회장이 R&D 개편·확대를 선언한 2021년부터 R&D에 쓰인 비용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실제 2021년 47억원에서 2022년 75억원, 2023년에는 105억원으로 늘었다. 3년새 123% 가까이 확대된 상황이다.
자연히 매출에서 연구개발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다. 2021년 0.07%, 2022년 0.09%, 2023년 0.15%로 나타났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이 비중은 0.02~0.03%에 불과했다.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긴 해도 회사 입장에선 충분히 유의미한 변화다.
투자가 대폭 늘어나니 R&D 실적도 좋아졌다. 고려아연은 작년에만 이차전지 소재와 니켈제련 원료와 관련한 17건의 특허 등록 및 출원의 성과를 거뒀다. 2021년에는 2건, 2022년에는 8건에 불과했다. 다만 자산화율은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배경엔 트로이카드라이브(TD) 전략…인물·조직 위상도↑
고려아연이 R&D 투자를 가속화하는 배경은 바로 '사업 확장' 때문이다. 최윤범 회장(사진)은 신사업 전략으로 트로이카드라이브(TD) 육성책을 내걸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수소, 이차전지 소재, 자원 순환 등을 뼈대로 회사의 미래를 재건설하겠다는 것이다.
R&D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R&D가 회사의 비약적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실상의 구심체이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는 당장 성과가 빨리 나지 않아도 최윤범 회장의 지원 아래 긴 호흡의 R&D 투자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회사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만큼 R&D를 이끄는 인물과 조직의 위상도 이전에 비해 높아졌다. 실제 고려아연은 작년 3대 신사업의 기획 업무를 총괄하는 TD사업부문 산하에 TD기술본부를 신설하고 온산제련소장 출신인 박기원 부사장을 앉힌 바 있다.
그리고 작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박기원 부사장을 사내이사에 선임했다. 박기원 부사장은 최윤범 회장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인물로 평가된다. R&D 관련 내부 기반이 약했을 수밖에 없던 회사 입장에선 조직의 입지와 추진력이 개선됐을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작년 온산제련소 산하의 기술팀은 제련기술본부로 격상됐다. 현재 김정우 담당이 본부장을 맡고 있다. 고부가가치 소재 개발을 보다 확실히 지원하기 위해 비철금속 제련의 기술과 품질 및 규격관리 역시 고도화시킬 것이라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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