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사업부는 기업을, 기업은 기업집단을 이룬다. 기업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영위하는 사업의 영역도 넓어진다. 기업집단 내 계열사들의 관계와 재무적 연관성도 보다 복잡해진다. THE CFO는 기업집단의 지주사를 비롯해 주요 계열사들을 재무적으로 분석하고, 각 기업집단의 재무 키맨들을 조명한다.
반도체용 인쇄회로기판(PCB) 업체 심텍이 근래 유동성 보충 작업에 각별히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현금 흐름이 둔화되며 자금 순환에 어려움을 겪은 영향이다. 영업에서 자금이 충분히 유입되지 않은 것이 주효했다.
심텍은 앞서 유동성을 확충해 뒀던 것이 어느 정도 안전판이 됐다고 설명했다. 2022년 영업 호조를 바탕으로 가용 가능 현금을 대거 확충해뒀다는 것이다. 실제 심텍은 금융상품 등을 활용해 뭉칫돈을 굴렸지만 아자수익 등의 과실을 오래 누리진 못했다. 설비 투자 재원으로도 대거 활용된 탓에 운영 자금으로의 기여도 또한 높지 않았을 것으로 풀이된다.
심텍은 지난해 자금 조달을 위해 은행 차입을 활발히 활용했다. 금융기관 대출 상품을 직전년도 대비 10건 더 계약했다. 단기, 장기 상품 모두 두루 사용했다. 신규 차입분만 1300억원을 넘겼다. 원화를 비롯해 달러 등을 고루 수혈하며 유동성을 보완했다.
다만 시중 이자율 상승에 따른 높은 이자는 감내해야 했다. 심텍이 지난해 계약한 금융상품 가운데 가장 높은 이자율은 6%대에 이른다. 하나은행으로부터 차입한 자금으로 2026년까지 만기 연장 가능한 상품이다. 이를 최장 만기까지 계속 보유하고 있는다고 단순 가정하면 이자 비용으로만 약 19억원을 지출해야 하는 조건이다. 이밖에 나머지 대출 상품도 모두 연 이율 4~5%대에 형성됐다.
상환 압박은 올해 가시화될 전망이다. 당해 만기인 대출 상품이 대거 몰린 영향이다. 상환 기한이 1년 이내인 단기 차입금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950억원 규모로 잡혔다. 짧게는 올해 4월, 길게는 올해 9월까지 만기인 상품들이다. 이 가운데 당초 장기 차입금이었다가 상환 기한이 1년 이내로 들어오며 유동성 대체된 상품 500억원도 포함됐다.
은행 차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심텍은 증자를 통한 자금 수혈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실제 심텍은 평소 증권 발행을 통한 조달에 대해선 다소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2015년 지주사 '심텍홀딩스(구 심텍)'로부터 인적 분할돼 설립된 후 단 한 차례도 메자닌 증권을 발행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당해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수혈한 게 가장 최근 증자 기록이다. 회사채 역시 별도 발행한 내역이 없다.
심텍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은행 쪽에서 가용할 수 있는 크레딧 라인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따로 증자를 하거나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며 "재작년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하며 3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수혈한 것도 우호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장 현금 여력은 높지 않은 상황이다. 심텍은 최근 비메모리부문 설비투자에 10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오롯이 내부 유보 자금을 활용하며 유동성을 고스란히 반납했다. 단기 현금화 가능한 유동 금융자산도 지난해에만 20배 넘게 급감했다. 결과적으로 심텍 연결 유동비율은 100% 안팎에 그친다.
향후 현금 흐름 개선이 주요한 과제로 거론된다. 심텍은 지난해 3분기 말까지 1110억원의 현금을 순유출했다. 영업에서 현금이 유입되지 않은 영향이 컸다. 이 기간 영업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총 1130억원의 현금이 외부로 빠져나갔다. 즉 사업을 하면 할수록 돈이 밖으로 나간 그림이다.
원인으론 미흡한 운전자본 관리가 꼽힌다. 매출채권과 재고자산이 증가, 회전율이 떨어지며 현금 회수가 둔화됐다. 반면 매입채무는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며 유동성 확보 측면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수금도 직전년도 대비 60억원 이상 늘어나며 현금 흐름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