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은 기업 재무 전략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유동성 진단 없이 투자·조달·상환 전략을 설명할 수 없다. 재무 전략에 맞춰 현금 유출과 유입을 조절해 유동성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THE CFO가 유동성과 현금흐름을 중심으로 기업의 전략을 살펴본다.
81억원(재작년 말)→3820억원(작년 말).
기업공개(IPO)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이후 달라진 두산로보틱스의 곳간 사정이다. 2년 전만 해도 47% 수준이던 부채비율도 10분의 1로 줄어 재무구조도 훌륭하다.
관건은 앞으로다. 올해 두산로보틱스는 생산능력을 증강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유망 기술기업을 인수하는 인오가닉(Inorganic) 전략에 더욱 주력할 전망이다. 본격적인 투자의 시기가 시작되면 '완벽' 그 자체인 재무 흐름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투자의 시기 도래…현금 3820억 용처는
15일 두산로보틱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3820억원으로, 1년 전에 견줘 4616% 증가했다. 부채비율은 4%로 낮아져 업계 최고 수준의 재무건전성을 갖추게 됐다. 지난해 10월 IPO로 약 4200억원을 조달한 이후 이렇다 할 투자·재무활동 없이 돈을 곳간에 넣어둔 결과다.
협동로봇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두산로보틱스가 곧 지갑을 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협동로봇의 경우 개발에 필요한 기술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아 진입장벽 자체가 높지 않은 편이다. 두산로보틱스가 글로벌 4위의 수준급 업체라도 계속 앞서나가기 위해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셈이다.
업계는 생산능력 증강 움직임에 먼저 주목한다. 이 회사는 현재 수원공장(2200대)과 외주 주문(1000대)으로 협동로봇 3200대를 생산 중이다. 늘어나는 수요에 대비해 2026년엔 1만1000대의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게 내부 목표인데, 이를 위해 약 310억원을 수원공장 증설과 제2공장 신설 자금으로 책정해 둔 상태다.
수익성 개선이 급한 회사 사정을 감안하면 곧 자금 집행이 예상된다. 두산로보틱스는 처음 양산에 들어간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영업손실로만 820억원을 냈다. 통상 대량생산으로 고정비는 줄고 이익률이 높아지는 규모의 경제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 이상 매출이 늘게 되면 수익성도 좋아질 것으로 점쳐진다.
업계 관계자는 "두산로보틱스는 장기적으론 미국과 유럽에도 생산거점을 확보할 것으로 알려진다"며 "올해는 외형 성장과 수익성 개선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인수합병 사례 언제쯤…배당 나설 가능성은 낮아
더 큰 지출이 있을 수도 있다. 두산로보틱스의 목표는 사업 다각화에 있다. 로봇 분야는 이제 막 시장이 열리기 시작해 성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간 협동로봇에서 자율이동로봇(AMR), 스마트팩토리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가겠다고 밝힌 이유다.
실제 두산로보틱스의 지난해 공모자금 사용 목적 중 '타법인 투자금'이 2850억원으로, 전체 조달액의 70%에 이른다.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기 위해 당장 올해부터 주요 기술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인오가닉(Inorganic)' 전략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두산로보틱스는 지난 8일 두산그룹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두산인베스트가 결성한 펀드에 약 200억원을 출자했다. 두산인베스트먼트는 로봇을 포함한 미래 유망 산업군에 있는 우수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을 발굴할 전망이다.
주주환원 활동에도 관심이 모인다. 다만 두산로보틱스의 경우 당장 돈 들어갈 곳이 많은 데다 아직 순손실을 내는 만큼 풍부한 유동성에도 배당에 나설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두산로보틱스가 연구개발(R&D) 활동에 적극적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두산로보틱스는 최근 기업설명회(IR)에서 올해 칵테일, 베이커리, 수화물 핸들링 등 신규 로봇 솔루션 개발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매년 매출의 20%가량을 연구개발 비용으로 지출해 온 만큼 100억원 이상의 지출이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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