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와 주주 사이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진 요즘이다. 기업 총수를 회장님이라고 존칭하기보다 '형'으로 부른다. 오너의 경영 방식부터 라이프 스타일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만큼 오너의 언행이 기업의 주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오너의 말 한마디에 따라 주가가 급등하기도, 리스크로 돌아오기도 한다. 더벨이 오너 경영과 주가와의 상관관계를 들여다봤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삼성물산의 주가가 최근 3년 사이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다년간 박스권을 탈피하지 못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움직임이다. 호실적과 주주환원 정책 강화, 정부의 기업가치 증대 정책 등이 맞물려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정작 회사 최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1심 재판 결과가 무죄로 나오자 주가는 소폭 하락했다. 오너의 사법 리스크보다 시세차익을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과거에도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주가 흐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오히려 투자자들은 행동주의 펀드들로부터 주주제안을 받은 삼성물산이 주주환원에 더 속도를 낼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재용 회장 '무죄' 이후 주가 하락..."단순 시세차익 매물"
올해 삼성물산 주가가 반등한 시기는 지난 1월 18일이다. 당시 11만5400원(종가 기준)이던 주가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지난 2일 15만4300원까지 올랐다. 2주 만에 약 33% 올랐다. 작년 실적에 대한 기대감, 주주환원 정책 확대 가능성, 윤석열 대통령의 '저PBR 기업 가치 제고' 발언 등이 주가 상승 재료였다.
시장은 업황이 어려운 건설부문뿐만 아니라 모든 사업 부문이 호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고 삼성물산은 그에 보답하는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물산은 동시에 작년 3월에 발표한 3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을 올해부터 이행하는 로드맵도 발표했다. 여기에 정부가 PBR이 낮은 기업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주가 상승에 불을 붙였다.
삼성물산의 주가 상승세가 꺾인 건 공교롭게도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1심 판결이 무죄로 나온 이후다. 재판 결과가 나온 5일 주가는 한때 15만5900원까지 오르는 양상을 보였으나 14만94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다음날인 6일에는 14만2700원까지 낙폭을 커졌다가 일부 회복해 14만7500원에 장마감했다. 전일 대비 1.27% 내린 수치다.
이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정당성을 법원이 인정한 것과 별개로 투자자들이 시세차익을 실현한 영향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이날 외국인은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이고 기관은 매도하는 흐름을 보였다. 삼성물산 IR부서 관계자는 "그동안 주가가 크게 올라 차익을 실현하고 상황을 다시 지켜보려는 기관이 많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 지분 18.26%를 보유한 최대 주주지만 그의 사법 리스크가 그간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실제로 이 회장이 2017년 2월 17일 경영권 승계 과정을 둘러싼 불법 의혹으로 검찰에 구속됐을 당시 삼성물산 주가는 당일에 1.98% 하락하긴 했으나 이틀 만에 회복했다. 삼성물산이 지분을 보유한 삼성전자의 주가 상승이나 회사 실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 부문의 실적 개선 등이 주가 급등 요인인 경우가 많았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삼성물산이나 삼성전자 등은 사업 규모가 워낙 크고 조직이 비대해 주가와 오너십의 상관관계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라고 말했다.
◇행동주의펀드발 주주환원 강화에 더 관심
투자자들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다. 지난 2일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 안다자산운용, 시티오브런던 인베스트매니지먼트 등 다수의 행동주의펀드로부터 주주제안을 받은 삼성물산이 주주환원책을 더 강화할지에 시선이 쏠린다.
핵심은 배당 확대와 자사주 추가 매입이다. 행동주의펀드들은 2023년 결산배당금으로 보통주 4500원, 우선주 4550원을 요구했다. 삼성물산이 책정한 보통주 2550원, 우선주 2600원 대비 2000원가량 높은 수준이다. 삼성물산이 이를 받아들이면 약 7400억원의 재원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행동주의펀드가 제안한 자사주 추가 매입 규모는 5000억원이다. 삼성물산은 올해부터 3년간 3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할 예정인데 자사주를 더 사들여 주가를 부양하라는 얘기다.
주주제안을 받은 삼성물산은 정식으로 주주제안이 접수된 만큼 향후 이사회에서 결격 사유 등을 살펴보고 3월 정기주주총회 상정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상법상 주주제안 요건은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의 3% 이상 소유, 6개월 전 발행주식의 1% 이상 보유 등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주주제안 요건 등 적법성을 이사회에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행동주의펀드들이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얻어 다음달 표 대결에 나선다고 해도 이 회장 측이 이길 가능성이 높다. 이 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의 삼성물산 지분은 33.28%다. 우호 지분인 KCC의 삼성물산 지분 9.18%까지 더하면 40% 이상이다.
다만 일련의 과정들은 삼성물산의 중장기적인 주주환원 확대 기조에는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자사주 소각 일정을 더 앞당기거나 배당금을 소폭 늘리는 식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행동주의펀드들이 원하는 수준의 주주환원책을 얻어내려고 하는데, 이러한 환경들로 인해 강화된 주주환원 확대정책 등이 더 탄력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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