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금융당국의 움직임에 발 빠르게 반응해 왔다. 지난해 금융위원회가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추진을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3조원에 자사주 전량 소각 계획을 밝혔다.
올해는 삼성물산이 당초 계획했던 자사주 소각 소요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며 주주환원 확대에 나섰다. 정부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으로 저평가된 기업들의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준비하는 시점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는 무관하게 주주환원을 강화하기 위해 이사회에서 결정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의도야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는 이번에도 정책보다 반 발짝 앞서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한 셈이 됐다.
◇'경영권 방어' 요긴한 자사주 전량 소각 삼성물산의 자사주 정책은 재계 전반을 통틀어도 전향적인 편이다. 보유 중인 자사주의 시장가치가 3조원에 달하는데, 이를 모두 소각한다는 점에서다.
자사주는 기업들의 경영권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금융위원회는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자사주 매입 소각 의무화를 검토했지만 실시하지 않기로 최근 결정했다. 적대적 인수합병(M&A) 및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경우 이를 방어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배경에서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더라도 소각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기업들이 많다. 자사주 소각을 실시하더라도 기존 보유 자사주 물량은 소각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전량을 소각하는 사례는 드물다.
삼성물산이 자사주 소각이라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최대주주 일가의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이 안정돼있는 상태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최근 삼성물산 지분 120만5718주를 처분했음에도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33%로 나타났다. 이를 시장가치로 환산하면 9조원에 달한다.
자사주 소각에 대한 주주들의 지속적인 요구도 있었다. 지난해 연말 미국 헤지펀드 화이트박스는 삼성물산에 서한을 보내 주주환원 정책을 확대해달라고 요구했다. 화이트박스는 기존 자사주 소각 플랜에 더해 추가적인 자사주 매입을 실시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서한에 담았다.
실제 보유 중인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자본총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자사주의 추가적인 매입이 일어날 경우 자본총계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를 통해 자기자본이익률(ROE) 및 PBR 등의 지표 개선할 수 있는 셈이다.
단 삼성물산은 추가적인 자사주 매입보다는 기존 자사주 소각 계획을 앞당기고 배당을 확대하는 등의 방향으로 주주환원정책을 확대했다. 신사업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만큼 삼성물산 나름의 '절충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가상승 모멘텀에 PBR 1배 육박 삼성물산은 자사주 소각과 더불어 배당금 규모를 확대하며 주주친화정책을 강화했다. 삼성물산은 관계사 배당수익의 60~70%를 배당금으로 지급하는 배당정책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배당금으로 '최대치'인 70%를 적용, 보통주 주당 2550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총 4173억원 규모로 직전해 대비 10%가량 늘어난 규모다.
이같은 삼성물산의 행보에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1일 삼성물산의 주가는 오후 2시 기준 전일 대비 7% 오른 주당 14만7900원이다. 52주 신고가에 해당한다. 특히 저PBR 테마로 엮인 데다가 자사주 소각이라는 '호재'가 발생하며 이번주 들어서만 삼성물산의 주가는 23.4% 상승한 상태다.
주가 상승으로 삼성물산의 PBR 역시 1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일 오후 기준 삼성물산의 PBR은 0.9배로 나타났다. 지난해 삼성물산의 PBR은 0.5~0.6배 사이에서 움직였다.
단 이같은 PBR 개선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적 및 성장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올해 삼성물산은 북미·호주·중동을 중심으로 태양광 사업개발 및 설계·조달·시공(EPC) 수주를 확대하고 청정수소 국내 도입 프로젝트에 참여, 배터리 리사이클링 사업 해외 투자를 실시하는 등 신사업 추진을 본격화한다.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 역량 확보를 통한 초기 시장 선점 및 바이오 분야 신사업 기회 발굴에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