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마블과 엔씨소프트는 꽤 긴밀한 관계다. 리니지 IP(지식재산권)로 엮여 있을뿐 아니라 서로 상당한 규모의 지분을 상호 보유했다. 한 쪽 주가가 떨어지면 다른 쪽도 평가손실을 보는 관계인데, 최근 몇년간 양사 주가가 부진한 탓에 조단위 평가손실이 쌓였다.
현재 넷마블은 엔씨 지분 8.88%(195만주)를, 엔씨는 넷마블 지분 6.9%(584만2800주)를 가지고 있다. 앞서 두 회사가 2015년 2월 지분 맞교환 방식으로 동맹을 맺으면서 상호 투자한 지분이다.
두 회사가 연합을 맺은 것은 엔씨가 넥슨과 경영권 분쟁 중이었던 상황과 무관치 않다. 넥슨은 2012년 김택진 엔씨 대표의 지분 14.7%를 인수해 엔씨 최대주주에 오르면서 경영권을 위협했다. 하지만 넷마블이 백기사로 나선 덕분에 엔씨가 우호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넷마블과 엔씨는 주주간 협력 의무를 맺고 각각 특별관계자 지위에 올랐으며 의결권의 공동 행사를 약속했다. 동맹에 기반해 넷마블은 엔씨의 리니지2, 블레이드앤소울 IP를 활용한 ‘리니지2 레볼루션’, ‘블레이드앤소울 레볼루션’을 출시하기도 했다. 게임 수익 일부를 엔씨가 로열티로 인식하는 방식이다.
이 지분동맹은 6년 만인 2021년 해제됐다. 이에 따라 서로 특별관계자 지위에서 내려왔지만 두 회사 모두 아직 지분을 팔지 않고 그대로 보유 중이다. 엔씨가 넷마블과 체결한 리니즈2 등의 IP 라이센싱 계약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두 회사 주가가 최근 맥을 못추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엔씨 주가는 최근 1년간 40.8% 떨어졌고 3년 전보다는 80% 이상 미끄러졌다. 넷마블은 1년 전과 주가가 비슷하지만 3년 전과 비교하면 역시 56% 하락했다. 상호 보유한 지분가치가 떨어져 대규모 평가손실이 발생한 배경이다.
넷마블의 경우 현재 약 70개 기업에 출자하고 있다. 이 가운데 관계기업은 지분법으로 회계처리되고 다른 지분증권 등은 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으로 당기손익이나 기타포괄손익에 반영된다. 규모를 보면 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은 지난해 9월 말 연결 기준으로 1008억원,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은 4906억원 규모를 가지고 있다.
넷마블이 가지고 있는 엔씨 지분은 이중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으로 분류된다. 엔씨 주가가 떨어지면서 넷마블은 2021년 엔씨 주식에서만 5616억원, 2022년엔 3803억원에 이르는 평가손실을 봤다. 이 기간 공정가치를 반영한 엔씨 지분의 장부가가 1조8155억원에서 8736억원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아직 2023년 사업보고서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주가 추이를 반영해서 계산하면, 지난해 말기준 엔씨 지분 장부가액은 4690억원 수준으로 짐작된다. 전년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 경우 2023년 한 해 동안 발생한 평가손실만 4046억원. 3년간 누적된 평가손실을 셈하면 1조3465억원이다.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자산에서 생긴 평가손실은 손익계산서를 거치지 않고 자기자본에서 바로 깎인다. 넷마블은 2022년부터 순손실이 이어지고 있는데 평가손실마저 자본을 갉아먹으면서 부담을 더하고 있다.
같은 방식으로 엔씨가 넷마블 지분에서 본 평가손실은 3년간 4288억원으로 추산된다. 넷마블 주식의 장부가액이 2021년 초 7683억원에서 2023년 말 3395억원으로 줄면서 2021년 380억원, 2022년 3774억원, 2023년 134억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3년간 두 회사의 평가손실을 합치면 1조7753억원에 달한다.
양사를 비교했을 때 엔씨는 3년간 넷마블보다 훨씬 적은 손해를 봤다. 하지만 취득 당시와 비교하면 이야기가 반대로 달라진다. 엔씨는 넷마블 지분 매입에 3803억원을 썼는데 작년 말 기준 이 주식의 장부가가 그보다 408억원 줄었다. 반면 넷마블은 3911억원에 매입한 엔씨 지분의 장부가가 작년 말 기준 135억원 증가했다.
엔씨의 지분가치가 급락한 이유는 2020년~2021년 초 주가가 급등하면서 한 때 주당 100만원을 넘겼다가 이듬해부터 가파른 하락세를 그리고 있어서다. 넷마블로선 당시 얻었던 평가이익을 다시 잃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