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기업에 재고자산은 '딜레마'다. 다량의 재고는 현금을 묶기 때문에 고민스럽고, 소량의 재고는 미래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또 걱정스럽다. 이 딜레마는 최근 더 심해지고 있다. 공급망 불안정에 따른 원재료 확보의 필요성과 경기침체에 따른 제품 수요의 불확실성이 샌드위치 형태로 기업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벨은 기업들의 재고자산이 재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살펴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방산부문의 수출 호조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K-9자주포와 다연장로켓 천무의 폴란드 수출에 이어 올해는 K-9자주포의 폴란드 2차 수출계약뿐만 아니라 호주에서도 보병전투차량 AS-21(레드백)의 수출계약을 확정지었다.
잇따른 해외수주로 일감이 풍족해지는 동시에 일감을 소화하기 위한 재고자산 규모 역시 불어나고 있다. 선수금 유입을 통해 현금 유출은 최소화하고 있으나 당분간 방산부문의 재고자산 운용효율 둔화가 불가피한 만큼 평가손실의 관리가 재무분야의 주요 과제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8일 공시를 통해 호주 법인 HDA가 호주 국방부와 3조1649억원 규모의 보병전투차량 공급계약을 1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HDA를 통해 레드백 장갑차 129대를 2028년까지 순차 공급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4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 군비청과도 K-9자주포 2차 수출을 위한 3조4475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2022년 8월의 1차계약(3조2039억원)에 이은 성과다. 이 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 천마 수출계약(약 5조원), 이집트 K-9자주포 수출계약(약 2조원) 등 초대형 계약을 연달아 터뜨리며 K-방산 수출 전성시대의 문을 열었다.
잇따른 수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방산부문(한화시스템 제외한 지상방산) 수주잔고는 2021년 5조719억원에서 올해 3분기 말 20조66억원까지 급증했다. 이날 공개된 레드백 수주와 앞서 공시된 폴란드 2차계약까지 더하면 연말 기준 잔고는 25조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부담스러운 점은 이 기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재고자산 보유량도 1조6048억원에서 3조2626억원까지 불어났다는 점이다. 방산부문 재고자산이 6900억원에서 2조1435억원으로 크게 늘며 전체 재고자산 증가를 견인했으며 마찬가지로 연말 수주를 고려하면 재고자산의 추가적인 증가가 불가피할 공산이 크다.
재고자산 증가는 운전자본의 비대화로 이어져 현금흐름을 막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에서는 계약 이후 납입되는 선수금을 바탕으로 수주 일감을 순차적으로 소화하고 있는 만큼 향후 현금흐름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는 입장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량이 지난해 말 3조698억원에서 올해 3분기 말 1조9834억원으로 감소했다. 다만 이는 한화오션 인수를 위한 유상증자 참여 등 관계기업 투자지분 취득을 위해 올해 1~3분기에 걸쳐 1조8983억원을 지출한 탓이 크다.
이 기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5643억원으로 집계돼 전년 1~3분기 -1908억원에서 플러스로 전환했다. 재고자산 비대화에 따른 현금흐름 경색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다만 재고자산을 소화하는 효율이 둔화하고 있다는 점은 경계할 요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재고자산 회전수(연환산 매출원가를 기초재고와 기말재고의 평균으로 나눈 값)은 2021년 3.2회에서 지난해 2.9회, 올해 1~3분기 2.2회로 꾸준히 하락 중이다. 적어도 재고자산이 비대해지고 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는 말이다.
기업의 재고자산이 늘어나면 재무라인에게는 평가손실 리스크의 세심한 관리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다. 이런 현상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재고자산 평가손실액은 2021년 495억원에서 2022년 866억원, 올해 1~3분기 1047억원으로 증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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