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프로그룹은 올들어 공정자산 5조원을 넘기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대기업 집단에 이름을 올렸다. 상장한 4개 계열사인 에코프로·에코프로비엠·에코프로머티리얼즈·에코프로에이치엔의 합산 시가총액은 60조원. 이중 시장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지주사 에코프로의 기업가치만 봐도 17조원에 달한다. SK㈜(약 12조원), ㈜LG(약 13조원)와 같은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지주사보다 높은 수준에 시가총액이 형성돼있다.
외형적으로는 이미 대기업의 틀이 형성돼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히려 일부 대기업들보다는 앞서나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만큼 내실 다지기에 힘써야 할 시점이 됐다는 평가다. 특히 다른 기업에 비해 미흡하게 갖춰진 지배구조는 향후 리스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ESG기준원은 에코프로의 지배구조 등급으로 '매우 취약'에 해당하는 D를 부여했다.
◇독립성 확보, 갈 길 먼 이사회 기업이 좋은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는가에 대해 판단할 때 가장 먼저 살펴볼 수 있는 지표는 이사회다. 주주총회 개최 관행·주주환원과 같은 요인도 지배구조 평가의 기준 중 하나지만 결국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곳이 결국 이사회다.
에코프로는 이사회 구성에 있어 법적인 요건은 충족한 상태다. 자산 2조원이 넘지 않는 상장사의 경우 이사회 구성원 중 사외이사의 비중이 4분의 1 이상이 되도록 하는 요건만 충족하면 된다. 에코프로의 별도법인 기준 자산총계는 1조2328억원으로 회사의 이사회는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3명으로 이뤄져 있다.
송호준 대표이사와 최상운 경영지원본부장, 박재하 경영관리본부장이 사내이사로 이사회에 참여 중이다. 사외이사로는 김재정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안태식 서울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하종화 세무법인 두리 회장이 활동 중이다. 사외이사들은 모두 2025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법으로 정해진 사안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다. 이사회 중심 경영의 수준을 가늠할 때는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 이를테면 한국ESG기준원의 모범규준에서는 "대규모 상장법인의 경우에는 전체 이사의 과반수(최소 3인 이상)를 사외이사로 구성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에서 대규모 상장법인이란 자산 1조원 이상 상장사를 뜻한다. 사외이사를 3인 이상, 이사회의 과반수가 되도록 구성해야 한다는 규정은 상법상 자산 2조원 이상인 상장기업에게 해당하는 법규다.
에코프로 이사회의 구성은 이같은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사외이사가 3명이기는 하지만 이사회의 과반을 채우지 못했다.
과반을 달성하지 못한 사외이사 비중에 더해 대표이사에게 권한이 집중돼있는 구성도 이사회의 독립성 제고를 발목 잡는 요인이다. 그간 에코프로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해 운영한 적이 없다. 현재 송호준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 직책을 겸직하고 있다. 직전에도 당시 대표이사였던 김병훈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대표이사가, 그전에도 이동채 전 에코프로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도맡았다.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일은 에코프로그룹 전반의 기조이기도 하다. 에코프로는 물론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에코프로에이치엔 모두 '대표이사=이사회 의장' 공식을 따른다.
◇투명성vs효율성, 기로에 선 에코프로 사실 사외이사의 숫자를 늘리고 대표이사와 의장을 분리하는 등 이사회의 독립성을 높이는 일은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외부인들에 의한 감시망이 두터워지는 셈이라 지배구조 평가에서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더 정교한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효율성은 떨어진다.
특히 이차전지 사업이 그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던 터라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적절한 시점에 투자결정을 내리는 일이 중요했다. 효율성이 가장 최우선 순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거버넌스 개선 작업에 나서는 이유는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한 지배구조가 향후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집단 지정, 급격한 기업가치 상승으로 에코프로그룹을 지켜보는 시선이 부쩍 많아진 상황이다.
에코프로그룹 역시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는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선언이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선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이차전지 기업들이 그간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집중한 측면이 있다"며 "전반적으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만큼 내실 다지기에 집중할 시점이 됐다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인 공감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