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말 LX인터내셔널의 한국유리공업(현 LX글라스) 인수를 조건부 승인했다. KCC글라스, 한국유리공업, LX하우시스로 나뉘던 건축용 코팅유리 시장에서 LX인터내셔널이 한국유리공업을 인수하면 LX그룹이 시장 점유율 과반을 차지하는 만큼 가격 인상률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한국유리공업은 LX인터내셔널 품에 안긴 뒤 LX하우시스의 건축용 유리 사업을 443억원에 양수하며 그룹 내 단일 유리 사업자로 탈바꿈했다. 이에 따라 LX글라스와 KCC글라스가 양분하던 건축용 코팅유리 시장 양강 체제가 더욱 굳건해졌다.
두 사업자의 출범은 유리 시장에 대한 오너가의 굳은 의지가 밑바탕이 됐다. 오너 회사로 출발했다는 공통점 외에도 이제는 각 그룹의 막내격으로 자체적인 신사업 경쟁력을 보여줘야 하는 공동의 고민거리도 안고 있다.
◇최초의 판유리 사업자 한국유리공업
LX글라스는 1957년 설립된 한국유리공업이 모태다. 전후 재건 사업이 한창이던 시절 최태섭 명예회장이 유엔한국재건단(UNKRA)의 지원을 받아 이봉수·김치복 회장과 함께 창업했다.
당시만 해도 유리제품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던 상황으로 한국유리공업이 처음으로 판유리 국산화에 성공하며 가장 오래된 유리업체로 이름을 남겼다. 1980년대 중반 금강(KCC)이 유리산업 진출을 선언하기 전까지 국내 판유리 시장은 한국유리공업의 제품 '한글라스'가 독점하는 체제였다.
주요 건자재 사업자들과 비슷하게 한국유리공업 역시 전후 재건 사업의 중추로 떠오르며 급속도로 성장했다. 1962년 2공장을 준공했고 그해부터는 해외로도 유리제품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후 재건 사업 이후 경제개발기에는 자동차 유리 시장(1971년)에도 진출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다만 1980년대 들어 금강의 유리사업 진출로 국내 유리시장은 한국유리공업과 금강의 양강 체제로 바뀌었고 여기에 1990년대부터 저가 중국산 제품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유입되며 한국유리공업은 돌파구를 모색해야 했다. 이를 위해 중국, 폴란드, 인도네시아 등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는 한편 자회사의 사업구조를 단일화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결국 대주주가 프랑스 건자재 회사 생고방그룹 산하 투자회사 소피앙(SOFIAG)으로 바뀌었으며 2005년에는 소피앙의 보유 지분율이 80%까지 늘면서 경영권이 넘어갔다. 한때 유리 사업만으로 재계 자산순위 40위권(한글라스그룹)까지 올랐던 한국유리공업은 생고뱅그룹 산하 자회사로 있다가 2018년 자진 상장폐지를 거쳐 2019년 사모펀드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로 매각됐다.
지금의 LX글라스로 탈바꿈한 것은 올해 10월이다. 지난해 3월 LX인터내셔널이 인수 주체로 나서 한국유리공업 인수를 결정했고 올해 1월 이 회사의 주식 100%를 5904억원에 취득하며 LX글라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
구본준 LX그룹 회장이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한 이후 첫 인수대상으로 낙점했다는 점에서 그룹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실제 LX그룹은 LX하우시스의 유리 사업을 한국유리공업에 넘기고 사명도 LX글라스(올해 10월)로 바꿔 LX 색채를 입히는 데 주력했다. 특히 LX글라스의 모회사인 LX인터내셔널은 LX글라스를 연결고리 삼아 건자재 소재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유리공업의 35년 맞수 금강, KCC글라스로 독립
LX글라스의 유일한 맞수라 할 수 있는 KCC글라스는 KCC에서 독립하기 전 유리사업부에서 출발한다. 1958년 설립된 금강스레트공업(현 KCC)은 기존 슬레이트 건자재뿐 아니라 건설, 도료 등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며 건자재 전영역에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유리 사업 진출은 비교적 늦은 1986년이었다. 그해 사업목적에 유리 제조·가공·판매업을 추가하고 프랑스 생고뱅그룹으로부터 판유리 제조기술을 도입해 국내 유리산업 진출을 선언했다. 1988년 첫 제품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당초 계획보다 속도를 내 1987년 자동차 안전유리 공장, 1988년 판유리 공장을 각각 준공해 빠르게 시장에 진출했다.
이미 건자재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였던 만큼 금강의 유리사업은 단번에 한국유리공업을 위협했다. 50(한국유리공업) 대 40(금강)으로 이어지던 점유율 싸움에서 중국산 저가 제품이 침투하며 양사 점유율 모두 조금씩 떨어졌지만 경영권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한국유리공업과 달리 금강은 점유율 방어에 성공하며 2003년 처음으로 점유율에서 한국유리공업을 앞섰다.
KCC의 첫 판유리 생산(1988년) 이후 35년이 흐르는 동안 두 회사는 점유율 측면에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유리 시장의 양강체제를 이뤘다. 이 사이 한국유리공업은 최대주주 변경 및 경영권 이양과 같은 이슈가 있었지만 KCC는 오너회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공고히 했다.
다만 2020년 고(故)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차남 정몽익 회장이 유리·바닥재·인테리어 사업 부문을 분할해 KCC글라스를 설립하며 이제 독자적인 사업체로 유리사업을 펼치고 있다. KCC가 KCC글라스 지분 3.58%를 보유하고 있긴 하나 사실상 독립된 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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