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업무의 꽃이다. 주주의 지원(자본)이나 양질의 빚(차입)을 얼마나 잘 끌어오느냐에 따라 기업 성장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최적의 타이밍에 저렴한 비용으로 딜(Deal)을 성사시키는 것이 곧 실력이자 성과다. THE CFO는 우리 기업의 조달 전략과 성과, 이로 인한 사업·재무적 영향을 추적한다.
현대모비스 자금 조달을 책임지는 배형근 재경본부장(부사장)이 해외에서 그린론으로 대규모 차입을 일으킨 배경에는 최근 증가한 '외환차손'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외환차손은 환율 변동에 따라 외화 부채를 상환할 때 발생하는 손실을 가리킨다. 외화환산손실과 달리 이미 실현됐다는 점에서 요주의 대상이다.
◇잉여현금흐름 1조에도 대규모 외화 차입
최근 현대모비스는 해외 금융기관 7곳으로부터 총 9억4000억달러(약 1조2500억원)를 10년 만기로 차입하는 데 성공했다. 북미에 전동화 부품 생산시설을 짓기 위한 자금 조달이기 때문에 '그린론(Green loan)'을 활용해 조달 금리를 낮추는 데 집중했다.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의 신용 보증까지 더했다.
사실 현대모비스의 현금창출력만 놓고 보면 연간 약 1500억원 수준의 차입은 하지 않아도 된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현대모비스 잉여현금흐름은 연평균 1조원이 넘는다. 설비투자와 지분투자를 제외해도 1조원의 현금이 남는다는 얘기다. 이는 연결로든 별도로든 동일하다.
이러한 흐름은 올해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외에서 전동화 부품 생산시설을 짓기 위해 설비투자를 지속하고, 신기술 확보를 위해 지분투자를 계속하고 있음에도 현금창출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올해 상반기 잉여현금흐름은 연결기준 약 1조800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배가 넘는다.
그런데도 조달 금리를 낮추는 데 집중하며 해외에서 대규모 자금을 빌린 건 최근 부쩍 높아진 외환차손 때문이다. 2021년 연결기준 1333억원이던 외환차손은 2022년 2214억원으로 66% 증가했다. 별도기준으로는 같은 기간 517억원에서 1660억원으로 200% 이상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외환차손은 연결과 별도 모두 지난해보다 증가했다.
◇달러로 빌려 달러부채 갚는다...외환차손 감축 전략
외환차손은 주로 달러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달러 부채를 다른 화폐로 갚을 때 발생한다. 간략하게 말하면 전에는 1달러를 1100원으로 갚을 수 있었지만 현재는 1320원에 갚아야 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 인하에 명확한 의사를 밝히고 있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2030년까지 북미에 전동화 부품 생산시설을 짓기 위해 총 13억달러(약 1조7272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그린론으로 조달한 자금의 약 40%를 웃도는 규모다. 전보다 대미 투자가 늘어날 예정이기 때문에 현대모비스에 외환차손 관리는 중요해진 상황이다.
외환차손을 줄이는 방법은 달러 부채를 달러로 갚는 것이다. 원화로 바꾼 달러가 아닌 현지에서 직접 조달한 달러로 갚으면 외환차손을 줄일 수 있다. 현대모비스도 이번에 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달러를 빌리며 이러한 전략을 취한 것으로 분석된다.
더불어 그린론과 무보 신용보강을 동시에 활용해 자금을 조달한 건 외환차손처럼 증가한 이자비용을 관리하기 위해서다. 올해 상반기 현대모비스 이자비용은 연결기준 761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84% 증가했고, 별도기준으로도 같은 기간 동일하게 184%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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