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사들이 부여하는 기업의 크레딧은 자금 조달의 총괄자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핵심 변수다. 크레딧이 곧 조달 비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THE CFO는 기업 신용등급의 방향성을 좌우할 CFO의 역할과 과제를 짚어본다.
HD현대일렉트릭은 고유가 덕에 수주 호황이 계속되고 있다. 과거 일감이 없어 싸게 수주한 탓에 비상경영을 선포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제 옛날 일이다. 장비공급이 모자라 현대일렉트릭이 골라서 수주를 하는 입장이 됐다. 수년 만의 신용등급 상향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5일 HD현대일렉트릭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 등급전망(아웃룩)을 'A-, 안정적'에서 'A-, 긍정적'으로 조정했다. 나이스신용평가가의 경우 지난해 4월 이미 'A- 안정적'에서 'A-, 긍정적'으로 바꿨는데 이번에도 같은 전망을 유지했다.
현대일렉트릭이 과거 A- 수성조차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황이 크게 좋아졌다. 이 회사는 2017년 현대중공업 전기전자시스템사업이 분사해 설립됐다. 첫 회사채 신용등급으로 A-를 부여받았는데 대규모 순손실이 이어지면서 BBB급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경영환경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2019년 9월 현대일렉트릭이 이사회를 열고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당시 재무전략을 도맡았던 인물이 현재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이철헌 경영지원부문장(전무)이다. 이 전무는 2019년 현대중공업에서 현대일렉트릭으로 이동, 같은 해 11월 CFO에 올랐다.
이후 현대일렉트릭은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확충, 비핵심자산 매각과 동시에 임원 40% 축소, 유휴인력 감원 등 구조조정에 총력을 기울였다. 결국 2020년 영업흑자에 성공,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이듬해 공모채 수요예측이 역대 최고 흥행을 거두면서 투심 회복을 증명했다.
특히 이번 아웃룩 상향에는 주력제품인 고압기기 수주가 대폭 확대되면서 이익창출력이 강화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 현대일렉트릭은 그간 중동, 북미, 아시아, 유럽 등 해외 매출처로부터 수주 확대 노력을 계속해 왔다. 그 결과 2020년 말 15억달러에 그쳤던 연결기준 수주잔고는 올해 6월 말 37억달러까지 불어났다.
중동 지역에선 유가상승 효과를 봤고 북미에선 노후기기 교체수요, 신재생 에너지 투자확대에 따른 전력 인프라 수요 증가가 호재로 작용했다. 내수시장 역시 조선업황이 개선되면서 선박용 제품 수주가 늘어나는 추세다. 또 수요가 넘쳐 공급자 우위 시장이 만들어짐에 따라 현대일렉트릭의 선별적 수주가 가능해졌고 자연히 수주의 질도 좋아지고 있다.
실제 현대일렉트릭의 연결 상각전영업이익(EBITDA)는 2022년 6월 말 659억원에서 올해 6월 말 1300억원 수준으로 2배 가까이 점프했다. 다만 이 전무가 신경써야 할 부분은 현금흐름이다. 현대일렉트릭은 현금창출력 개선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부터 영업활동현금흐름과 잉여현금흐름(FCF)이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다.
수주가 늘자 원재료를 선매입하면서 재고자산이 증가한 데다 2022년 미국 반덤핑 관세 납부 등으로 자금유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연결 순차입금이 4040억원을 기록, 전년(1788억원) 대비 2000억원 이상 급증한 배경으로 지목된다.
올 상반기 역시 납기가 장기인 고압기기 수주 확대로 재공품 재고가 1800억원 규모 늘었고, 외형이 커짐에 따라 매출채권 등이 1560억원가량 증가하는 등 운전자본 부담이 계속됐다. 선수금 등 계약부채가 2222억원 들어온 점은 현금흐름에 긍정적이다. 다만 통상임금 청구소송 관련 판결금 지급으로 1173억원이 나간 탓에 선수금 유입 효과는 제한적 수준에 그쳤다.
이에 따라 상반기에도 잉여현금 적자(-1407억원)가 계속되면서 순차입금이 5477억원으로 더 확대됐다. 같은 기간 총차입금은 전년 동기보다 2500억원 정도 증가한 8501억원을 나타냈다.
물론 현대일렉트릭의 현금창출 여력을 감안할 때 차입 부담이 재무 안정성에 타격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다. 우선 더이상 통상임금과 관련한 자금유출 여지가 없으며 실적도 개선세인 만큼 영업현금 증가는 자연스런 수순이다. 또 연말에는 매출채권을 회수하고 재공품이 매출로 실현되면서 운전부담도 완화될 수 있다. 다만 신용등급 상향을 위해선 이 전무가 추가적 차입 확대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시장 환경이나 사업경쟁력 외에 신용등급 상향 검토를 위한 재무적 요인으로 △순차입금/EBITDA 지표가 1.5배 이하일 것, 나이스신용평가는 △총차입급/EBITDA 지표가 4배를 하회할 것 등을 제시했다. 올 6월 말 연결기준으로 현대일렉트릭의 EBITDA 대비 순차입금은 2.1배, EBITDA 대비 총차입금은 3.3배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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