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10월은 주식에 투자하기 유난히 위험한 달이죠. 그밖에도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겠군요." 마크 트웨인의 저서 '푸든헤드 윌슨(Puddnhead Wilson)'에 이런 농담이 나온다. 여기에는 예측하기 어렵고 변덕스러우며 때론 의심쩍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주가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상승 또는 하락.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면 주식시장은 50%의 비교적 단순한 확률게임이다. 하지만 주가는 기업의 호재와 악재, 재무적 사정, 지배구조, 거시경제, 시장의 수급이 모두 반영된 데이터의 총합체다. 주식의 흐름에 담긴 배경, 그 암호를 더벨이 풀어본다.
◇How It Is Now 분자진단 헬스케어 전문기업 랩지노믹스 주가는 올해 들어 2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올해 초만 해도 랩지노믹스의 주가는 6000원대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해 7월25일에는 종가 기준 9890원을 찍었습니다. 연초 대비 약 65%가량 오른 셈입니다.
지난달 7일 랩지노믹스는 기존 주주가 소유한 주식 1주당 신주 1주를 배당하는 무상증자를 단행했는데요, 기준가는 4495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주가는 한달 사이 다시 6000원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상증자에 따른 권리락으로 주가가 절반이 된지 한 달 만에 주가가 33%가량 오른 형국입니다.
그간 코로나19 확산에 진단키트 사업을 하며 랩지노믹스와 피어그룹으로 묶인 수젠텍과 씨젠 등이 올해 들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극명한 차이입니다. 수젠텍 주가는 올해 초 1만원 대 안팎을 유지했지만 이달 들어서는 6000원대 중후반에 머물고 있습니다. 씨젠 주가는 2만7000원대에서 2만2000원대로 하락했습니다.
이처럼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랩지노믹스 주가 흐름은 랩지노믹스가 루하프라이빗에쿼티(이하 루하PE)의 품에 안긴 이후 나타났습니다. 루하PE는 올해 1월 랩지노믹스 경영권을 인수했습니다.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구주 인수 등을 통해 약 30%의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루하PE이 첫 바이아웃 포트폴리오 기업입니다. 이후 미국 진출과 디지털헬스케어 사업 등 인수 후 통합(PMI) 작업을 활발히 펼치며 앞서 언급된 기존 피어그룹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Industry & Event 주가가 상승한 데는 여러 영향이 있었지만 시장에서는 최근 랩지노믹스가 마무리한 미국 실험실표준인증연구실(클리아랩, CLIA Lab) 인수를 가장 큰 이벤트로 보고 있습니다. 클리아랩은 미국 FDA가 인증한 실험실로, 이를 이용하면 FDA 인허가 없이 미국시장에 진단 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빠르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랩지노믹스는 지난달 17일 미국 클리아랩 ‘큐디엑스’ 인수를 마무리했습니다. 지분 100%를 취득했으며 인수금액은 약 768억원입니다. 랩지노믹스는 기존 계획보다도 일주일 가량 일정을 앞당기면서 인수를 빠르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는 지난해 말 기준 자산 총액(2507억원)의 약 3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국내 진단 기업의 클리아랩 인수 계약 가운데 가장 큰 규모입니다.
루하PE가 랩지노믹스 인수를 결정하면서 내세운 대표 PMI 전략이 바로 클리아랩 인수였습니다. 랩지노믹스는 미국 내 클리아랩 33만개 가운데 9300개를 검토한 끝에 6개 가량을 클리아랩 인수 후보군으로 압축했습니다. 그 첫 결과물이 바로 큐디엑스입니다. 큐디엑스는 미국 100위권에 드는 업체로 최근 3년 사이 해마다 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반기부터 큐디엑스의 실적이 랩지노믹스의 연결 재무제표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7월에는 랩지노믹스 임원진들이 자사주를 사들이기도 했는데요, 미국 클리아랩 인수를 공시한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글로벌사업본부장 겸 미국법인장을 맡고 있는 조정희 상무와 NGS(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랩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숙 이사가 각각 1억원 규모의 주식을 장내에서 매수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이종훈 랩지노믹스 대표도 총 2억원 규모의 주식 매수에 나섰습니다. 다른 임직원들도 자사주 매입에 동참했고, 이 기간 사들인 자사주 규모만 12억원에 달합니다. 클리아랩 인수 이후 이처럼 공개적으로 주요 임직원들이 장내에서 주식을 사들인 것은 클리아랩 인수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랩지노믹스가 다방면으로 사업을 벌이면서 최근 여러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는데요, 이달 6일에는 미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암 정복 프로젝트 ‘캔서문샷(Cancer Moonshot)’ 추진을 위한 공공·민간 협력체 ‘캔서엑스(Cancer X)’ 참여를 공식화했습니다. 이에 주가가 다시 한번 더 요동치기도 했습니다.
◇Market View 최근 3개월 사이 랩지노믹스를 다룬 대형증권사 리포트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랩지노믹스의 급격한 주가변동을 생각하면 증권사 연구원들의 부담도 이해가 됩니다.
대신 기업탐방 전문 독립리서치 업체 그로쓰리서치는 지난달 8일 발간한 리포트를 통해 목표주가 8000원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제시한 근거는 2025년 매출 2500억원, 영업이익 500억원, 당기순이익 300억원을 낼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해 주가수익비율(PER) 20배를 적용한 수치입니다.
랩지노믹스는 코로나19 확산으로 2021년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는데요, 2021년 연결기준 매출 2024억원, 영업이익 1045억원, 당기순이익 839억원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둔화되면서 실적 상승세도 꺾였는데요, 지난해에는 매출 1448억원, 영업이익 662억원, 당기순이익 479억원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그로쓰리서치는 랩지노믹스가 클리아랩 인수와 미국시장 진출에 따른 사업확장에 힘입어 2021년 기록한 역대 최고 매출을 2025년 갱신할 것이라고 바라봤습니다. 아울러 인수 이후 원가절감 등 비용 통제를 통해 영업이익률도 큰 폭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코로나19 시절 기록한 영업이익률 45~51%대는 무리라고 해도 회사 측이 목표하는 영업이익률 30~40%를 달성한다면 2025년 최대 1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도 가능하다는 전망입니다.
◇Keyman & Comments 주가가 상승세를 타면서 랩지노믹스 경영권을 인수한 루하PE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루하PE는 이종훈 대표와 오래 알고 지낸 최지웅 상무, 오세진 상무가 뭉쳐 설립한 하우스입니다. 이 대표는 약사 출신으로 애널리스트, 벤처캐피탈리스트를 거쳐 사모펀드운용사 대표까지 맡으면서 줄곧 제약바이오 섹터에만 관심을 쏟아왔습니다. 제약바이오 섹터에서 오래 몸 담아오면서 쌓아온 인연들과 시장에 대한 분석능력을 기반으로 랩지노믹스를 인수했습니다.
루하PE가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 랩지노믹스의 곳간을 책임지고 있는 건 오세진 상무입니다. 회계사이기도 한 오 상무는 삼일PwC, 법무법인 율촌 등을 거쳐 ㈜우진, ㈜미래컴퍼니, H&이루자 CFO를 역임하며 CFO로서의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는 인수 직후 랩지노믹스 CFO를 맡았습니다.
오 상무를 비롯한 루하 핵심운용역들은 올해 초 랩지노믹스 인수를 클로징한 뒤 루하PE 사무실이 있는 여의도가 아닌 랩지노믹스 본사가 있는 판교로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랩지노믹스에서는 월급을 한 푼도 받지 않는 무급 임원들이지만 포트폴리오기업의 밸류업에 힘을 쏟기 위한 결정입니다.
오 상무는 랩지노믹스 CFO로 취임한 이후 C레벨의 법인카드 한도를 모두 30만원으로 축소하기도 했습니다. 비용 통제를 통한 수익성 강화를 위해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올해 초 랩지노믹스 인수를 마무리 짓고 오 상무를 만났을 당시, 그는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조심스러워해 그의 손에 겨우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려 보내기도 했습니다. 랩지노믹스 CFO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오 상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병원에 있어 통화가 어렵다는 슬픈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대신 현재 랩지노믹스 대표이자 루하PE 수장인 이종훈 대표에게 주가 부양 계획과 추가적인 밸류업 계획을 물었습니다.
이 대표는 “주가는 부양한다고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주가와 관련해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추가적인 밸류업 계획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가득 찬 목소리로 답을 주었습니다. 그는 “클리아랩을 인수하거나 새로 설립하는 방안 등 기존 클라이랩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을 준비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사업 확장을 위해 사업재편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로로 병원에 간 오 상무가 돌아오면 기운차리라고 바나나우유를 사주겠다는 얘기를 덧붙이며 통화는 마무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