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사는 공개하는 재무정보가 제한적임에도 필요로 하는 곳은 있다. 고객사나 협력사, 금융기관 등 이해관계자들이 거래를 위한 참고지표로 삼는다. 숨은 원석을 찾아 투자하려는 기관투자가에겐 필수적이다. THE CFO가 주요 비상장사의 재무현황을 조명한다.
조선업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지만 중형조선사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적다. 수주를 하고 싶어도 금융기관의 선수금 보증이 제한적이라 기껏 확보해 둔 건조의향서가 파기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기존 일감부터 해소해야 새 선박을 수주할 수 있지만 넉넉하지 못한 현금 여력이 고민거리다.
케이조선(옛 STX조선해양)은 대주주 KHI의 지원을 통해 눈앞의 현금 고갈 위기를 넘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향후 건조물량 증가에 대응할 추가 자금까지 조달했다. 이를 통해 과거 저가에 수주한 물량을 빠르게 소화하면서 수익성을 개선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케이조선은 2023년 상반기 말 개별기준으로 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량이 284억원으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보다 43.3%, 전년 동기보다는 72.4% 감소했다. 2022년 2분기부터 4개 분기 연속으로 현금 보유량이 줄어들고 있다.
상반기 케이조선의 현금흐름을 살펴보면 영업활동에서만 713억원의 현금이 유출됐다. 이 중 절반 이상은 물량 소화를 늘리는 과정에서 운전자금 부담이 일시적으로 불어난 데 기인한다.
케이조선은 상반기 계약자산의 증가, 즉 작업물량의 증가로 인해 195억원의 현금흐름이 묶였다. 작업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생산활동에 필요한 재고도 더 많이 축적해야 한다. 재고자산의 증가로 인해 253억원의 현금흐름이 추가로 제한됐다.
현금 보유량이 넉넉한 대형 조선사들은 이러한 운전자금 증가에 큰 위협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케이조선과 같은 중형 조선사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금융기관들이 대형 조선사와 달리 중형 조선사에는 RG(선수금 환급보증) 발급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사는 RG 없이 선박을 수주할 수 없다. RG를 발급받기가 쉽지 않다는 말은 선박을 대규모로 수주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즉 중형 조선사들은 선박을 수주하면서 수취하는 선수금으로 현금 보유량을 유지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제한된다.
이는 중형 조선사들이 선박 건조량 증가 시기에 영업활동으로 플러스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못해 종종 현금이 부족한 상황을 마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케이조선은 재무활동에서 509억원의 현금흐름을 창출하며 영업활동에서의 현금 유출을 일부 상쇄했다. 특히 장기차입금 증가 300억원이 눈에 띈다. 2018년 3분기 이후로 장기차입금을 보유하지 않는 재무구조를 유지해 오다 21개 분기만에 다시 장기차입을 일으켰다는 점에서다.
이 300억원은 케이조선이 앞서 6월 최대주주 KHI로부터 연 5%의 고정이자율로 빌린 자금으로 만기는 내년 12월28일이다.
2분기 말 케이조선의 현금 보유량이 284억원에 불과했다는 점, 당분간 운전자본 확대에 따른 영업활동 현금흐름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KHI가 지원해 준 300억원은 케이조선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는 것을 막아 준 긴급 자금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케이조선은 자료를 통해 외부 기관으로부터 800억원을 추가로 조달하는 데도 성공했다고 밝히며 당분간은 운전자금 증가에 따른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내년부터는 높은 선가에 수주한 선박의 건조량을 늘리면서 자체적으로 현금 보유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케이조선 관계자는 "케이조선의 주력 건조 선박인 PC선(석유화학제품운반선)은 가격이 꾸준히 높아지는 중"이라며 "현재 건조 슬롯에 여유가 있는 만큼 남아있는 슬롯은 선별 수주전략을 통해 수익성을 더욱 높이는 데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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