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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인(法人)의 탄생과 지분 관계 형성에는 배경과 목적이 있다. 기업은 신사업 진출, 해외시장 개척, 합작 등을 위해 국내외에 법인을 만들거나 지분 투자에 나선다. 이는 연결 회계에 흔적을 남긴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이뤄지지만 모든 관계가 영속하지는 못한다. 지분을 매각하거나 최악의 경우 청산을 택하기도 한다. 법인을 없애거나 주식을 매도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실적 부진이나 본사의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등 여러 이유로 자취를 감춘다. 이는 기업의 사업 전략을 전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더벨이 기업의 연결 회계에서 법인이 명멸하는 과정을 내밀히 들여다본다.
삼성SDS가 HMM과 미국 텍사스주에 설립한 조인트벤처(JV)를 청산했다. 미국 내륙 화물운송(트럭킹) 회사로 멕시코로부터 들어오는 물량을 담당하기 위해 설립한지 약 6년만이다. 예상과 달리 실적이 수 년째 답보 상태에 빠지자 효율성 개선을 위해 양사가 논의 끝에 내린 결정이다.
미국 화물운송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정 지역에 물류가 집중되면서 적체현상이 심화되자 최근들어 물류 효율성을 최적화한 B2B 플랫폼이 빠르게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삼성SDS도 글로벌 물류 솔루션 '첼로스퀘어'를 론칭한 가운데 이를 중심으로 사업 전략을 개편해나갈 방침이다.
◇미국 물류 요충지 텍사스에 세운 조인트벤처
삼성SDS와 HMM 간의 조인트벤처 'Neo EXpress Transportation Inc.'(이하 NEXT)는 2017년 12월 자본금 약 10억원으로 미국 텍사스주 캐롤튼에 설립됐다. 당시 삼성SDS가 경영참가를 목적으로 4억8800만원을 출자해 지분 51%를 취득해 종속기업으로 편입시켰다. 나머지 지분 전량은 4억7000만원 출자한 HMM에게 돌아갔다.
이들이 텍사스에 화물운송 기업을 설립한 것은 지리적 장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내에서도 텍사스는 물류 요충지로 손꼽힌다. 미국 전체 수입량 가운데 약 40%가 로스엔젤리스(LA)와 롱비치를 통해 들어온다. 하지만 운송 인력 부족과 제반 비용 상승으로 물류 적체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여기에 잦은 파업도 한 몫했다.
이에 한국 물류기업들이 2015년을 기점으로 LA와 롱비치에서 텍사스로 이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휴스턴항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대기업을 포함한 수 많은 국내 기업들이 북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요충지로 멕시코에 진출해있다.
삼성전자 역시 일찌감치 멕시코에 진출했다. 케레타 가전공장은 1988년 설립돼 미주 지역에 공급할 냉장고와 세탁기 등을 생산한다. 1996년에는 계열사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등의 생산라인을 한데 모은 복합 생산단지를 티후아나에 세웠다. 삼성SDS의 핵심 고객이 삼성전자임을 감안하면 텍사스만한 곳도 없는 셈이다.
◇'첼로스퀘어' 보급 확대에 집중, 전략 변화에 청산 결정
미국 화물운송 시장 규모는 약 9000억달러 수준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미국 물류시장의 적체 현상이 심화되자 거대한 시장의 패러다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초 미국 기업들은 특정 지역이나 서비스에 특화된 중소형 물류 중개기업을 필요에 따라 이용해왔지만 B2B 플랫폼이 이 빈틈을 파고들며 주목받고 있다.
물류대란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제한된 운송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이에 따라 IT 기술을 접목시킨 B2B 물류 플랫폼 사용이 증가했다. 삼성SDS 역시 2021년 해외 수출입 물류서비스 '첼로스퀘어'를 론칭하며 미국 전략에 변화를 주고 있다.
삼성SDS는 고객의 공급망 계획 수립부터 물류 운송까지 전 과정을 통합 관리, 운영할 수 있는 통합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체적인 SCM(Supply Chain Management) 컨설팅 경쟁력을 토대로 가능했다. 기업물류의 아웃소싱이 활성화됨에 따라 기업 물류 전반을 대행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물류비용을 절감하고 불필요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도화된 물류 전략이 요구된다. 기업들이 물류 아웃소싱을 늘리는 주된 이유다. 이러한 변화에 삼성SDS도 발 빠르게 대응하자 NEXT의 역할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NEXT 설립 당시 예상과는 달리 실적이 답보 상태에 빠졌다. 설립 직후인 2018년 매출액 37억원에 영업손실 5억원을 기록하며 출발했다. 2020년들어 흑자로 전환했지만 지난해 다시 적자를 기록하는 등 성과를 내는데 한계를 보였다.
삼성SDS과 HMM 관계자는 "미국 주변에서 내륙 화물운송을 위해 설립했지만 사업 전략에 변화가 필요했다"며 "실적 자체도 유의미하지 않아 효율화를 위해 양사 합의로 청산을 최종 결정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