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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최근 한화생명의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은 대표직 승진을 앞둔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의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그룹은 굵직굵직한 경영 의사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그 속도가 빠르다는 자본시장의 평가를 받고있다. 특히 경영 승계 이슈와 맞물려 진행되는 사안이라면 단기간 내에 과감한 결단들을 내려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교보생명은 정반대의 분위기를 풍겨왔다. 한화생명과 비교해보면 교보생명의 의사결정은 더딘 편이다. 영업이나 조직 확충 등 대부분 영역에서 보수적인 의사결정을 내렸다. 경영 승계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상당히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업계는 한화생명, 교보생명 각각의 전략적 선택이나 스타일이 오너의 성향에 좌우된 결과로 보고 있다.
◇ 역할상 금융지주 자리에 위치, 오너가 스타일 반영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은 생보업권에서 큰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각각 속한 그룹의 금융 지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양사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보험사의 계리적 가정 특성이나 리스크 관리의 방향성, 판매채널 전략 등 전반적인 경영 전략들이 뚜렷하게 상반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는 각 오너가의 서로 다른 성향이 상당 부분 반영돼 나타난 것으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한화생명은 한화그룹의 핵심 금융계열사다. 금융 부문에서 사실상 지주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화가 한화생명 지분 43.24%(2023년 3월 말 기준)를 직접 보유하고 있으며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추가로 1.75%를 보유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차남 김동원 사장도 한화생명 지분 0.03%를 보유 중이다.
교보생명은 교보 그룹의 핵심 회사로서 현재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교보생명이 지주사는 아니지만 계열사 대부분의 지분을 100%에 가깝게 보유하며 지주 위치에 놓여있다. 그런 교보생명의 최대주주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며 신 회장의 교보생명 지분율은 33.78%,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치면 총 36.91%다. 신 회장의 두 아들이 보유한 지분은 없다.
우선 1분기 예실차 분석 결과를 통해 살펴본 결과로는 한화생명이 교보생명에 비해 계리적 가정의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계리적 가정이 공격적이란 말은 곧 보험사가 미래 위험률이나 손실 가능성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으로 예측하고 있다는 함의를 갖는다.
한 보험 유관기관 관계자는 "올해 도입된 새 회계제도는 그 구조상 경영자들이 어떤 의도를 두고 개입 가능한 여지들이 많고 바뀐 기준에 따라 보험사들이 재무 수치를 산출하는 방식에도 오너의 입김이 상당부분 작용할 수 밖에 없다"면서 "교보생명의 경우 오너 성향상 임의적인 개입을 꺼리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 리스크관리 방향도 차이
이는 각 사의 리스크 관리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보험사는 지배구조법상 CRO 즉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와 리스크관리부서를 두도록 정해져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이같은 규제의 기준선을 떠나 해당 회사가 실질적으로 리스크관리 부서에 얼마만큼의 권한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해당 부서가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알 수 있다.
보험업계 리스크관리 전문가들은 한화생명의 경우 리스크관리 부서의 독립성이 약한 것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정해진 경영 방침을 따르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역할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교보생명은 리스크관리부서의 독립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관측된다. 리스크관리 부서가 정해진 경영 방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경영 방침에 변화를 가져오는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때로는 큰 경영 의사결정에 반하는 의견을 냄으로써 실제로 최종 결정에 대한 권한을 갖게 되는 셈이다.
한 생보사 CRO는 "교보생명은 새 제도 도입 전 리스크 분야 전문가들을 대거 채용해 조직을 세팅하는 등 전문가들의 소리에 귀기울이려는 태도를 취해왔다"면서 "기존 보험사 내부 의견에서 벗어나 최근 변화하는 추세에 맞춰 전문가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해보려는 욕구가 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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