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밥캣은 한동안 그룹에서 애물단지로 통했다. 엄청난 자금을 써서 인수하자마자 실적 악화로 빚이 쌓였다. 두산그룹 뿌리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밥캣을 사들였을 때부터라고 보는 시각까지 있다.
하지만 예전 얘기다. 최근 '두산의 부활'을 지탱하는 실체는 사실상 '밥캣의 약진'이 대부분이라고 봐야 한다. 얼마 전 박정원 회장은 지난해 사상최대 실적을 낸 두산밥캣에 순금으로 만든 두산일두(斗山一斗)를 선물했다. "한 말(斗), 한 말 쌓아 올려 산(山)같이 커져라"는 사명 '두산'의 뜻이 담긴 그릇이다.
2007년 두산그룹의 밥캣 인수는 국내기업이 미국 대기업을 인수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돼 있다. 그 때까지 한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해외 인수합병이기도 했다. 당시 두산인프라코어(현 HD현대인프라코어)가 49억달러, 한화로 6조원에 가까운 거금을 주고 샀다. 하지만 얄궂게도 바로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다. 건설 중장비 수요가 급감하자 두산밥캣은 부진에 허덕였다.
반등이 시작된 것은 2012년 즈음이다. 북미 건설시장이 회복되면서 두산밥캣 역시 같이 살아났다. 다만 밥캣 인수의 후유증을 앓던 두산인프라코어는 두산그룹 자구안의 일환으로 2021년 HD현대그룹에 팔렸다. 두산 측은 두산밥캣에 대해서도 매각을 검토했으나 캐시카우를 남겨둬야 한다는 판단에 매각 대상에서 제외했다.
실제로 현재 두산밥캣은 두산그룹에서 가장 강력한 현금창출원이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지주사 두산의 연결 재무제표에서 두산밥캣(연결)이 차지한 비중을 보면 매출(2조4052억원)은 55.3%, EBITDA(4384억원)는 80.5%를 채우고 있다.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를, 두산에너빌리티는 다시 두산밥캣을 종속 자회사로 두고 있기 때문에 두산밥캣의 실적은 결국 두산에 연결로 집계된다. 영업이익의 경우 연결조정을 거치면 두산(3382억원) 전체보다 두산밥캣(3697억원)이 더 많았다.
반면 순차입금의 경우 두산이 연결 기준 5조5503억원을 기록한 데 비해 두산밥캣은 그 10%를 밑도는 5063억원에 그쳤다. 그룹에 재무적으로 주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는 뜻이다.
주력시장인 북미지역이 밥캣 실적을 이끌고 있다. 두산밥캣은 북미 소형 건설장비사장에서 점유율 1위의 견고한 위치다. 미국 정부가 2021년 3월 국가 기반시설 재건을 명목으로 2조25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수혜를 보는 중이다. 덕분에 지난해 북미지역 매출이 전년 대비 36% 급증했고 전체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할 수 있었다. 매출 70% 이상을 북미에서 내고 있으며 올해도 실적 증가세가 이어졌다.
두산밥캣이 벌어들인 현금은 모회사이자 두산그룹의 핵심인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로도 흘러가고 있다. 두산밥캣은 2021년 두산인프라코어 매각과 함께 두산에너빌리티 종속기업으로 편입됐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지분 46.06%를 보유 중이며 2022년부터 밥캣의 배당유입이 시작됐다.
작년 한 해 두산밥캣에서 두산에너빌리티로 배당을 통해 들어온 돈만 2021년 결산배당 614억원, 2022년 중간배당 307억원 등 총 921억원이다. 그 해 두산에너빌리티의 별도 영업이익(853억원)을 뛰어 넘는 규모다. 올해 1분기에도 2022년 결산배당으로 384억원을 수취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정관변경을 통해 두산밥캣 등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수입을 회계상 영업수익의 일종으로 인식하고 있다. 지급받은 배당액이 매출로 계상되며, 동시에 전부 영업이익에 추가되는 구조다. 앞으로도 두산밥캣이 나눠주는 배당이 두산에너빌리티 수익성과 현금창출력을 떠받치는 기둥이 될 전망이다.
지난달엔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밥캣 주식을 팔아 약 2760억원의 유동성을 확충하기도 했다. 총 500만주(4.99%)를 주당 5만5200원에 불록딜 방식으로 매도했다. 처분결과 두산에너빌리티가 가진 두산밥캣 지분은 51.05%에서 46%대로 줄었지만 지배력은 충분한 수준이다.
이밖에 두산밥캣은 앞서 지주사 두산에 대해서도 유동성 지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두산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2021년 7월 산업차량사업부를 정리했으며 두산밥캣이 지분 전부를 양수했다. 이에 따라 그 해 두산밥캣의 현금흐름에서 약 7542억원이 '종속기업투자주식의 취득' 항목으로 빠져나가 두산에 유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