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기업에 재고자산은 '딜레마'다. 다량의 재고는 현금을 묶기 때문에 고민스럽고, 소량의 재고는 미래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또 걱정스럽다. 이 딜레마는 최근 더 심해지고 있다. 공급망 불안정에 따른 원재료 확보의 필요성과 경기침체에 따른 제품 수요의 불확실성이 샌드위치 형태로 기업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벨은 기업들의 재고자산이 재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살펴본다.
HSD엔진이 재고자산을 확충하고 있다. 반대급부로 재고자산의 운용 효율은 떨어지는 추세다. 일반적으로 재고자산 운용 효율 하락은 영업을 통한 현금 확보에 부정적인 신호다. 다만 HSD엔진의 경우는 이미 흑자 기조가 선 만큼 적정 현금의 확보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HSD엔진은 2023년 1분기 말 연결기준 재고자산이 2695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보다 41.6% 늘었다. 2021년 말까지만 해도 재고자산이 1794억원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재고 확충이 지난해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국내 조선사들이 2021년 시작된 선박 발주 호황기를 타고 대규모 일감을 확보하면서 HSD엔진을 향하는 선박엔진 발주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HSD엔진은 선박엔진 수주잔고가 2020년 말까지만 해도 7725억원에 그쳤으나 올해 1분기 말 기준으로는 2조4873억원에 이른다.
다만 HSD엔진은 재고자산이 늘어난 반면 운용 효율성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도 분석된다. HSD엔진의 재고자산 회전수(매출원가를 기초재고와 기말재고의 평균으로 나눈 값)는 2020년 4회로 정점을 기록한 뒤 2021년 3.6회, 2022년 3.5회로 하락세를 보였다. 올해 1분기에는 2.9회까지 떨어졌다.
재고자산은 운전자본의 구성요소다. 운용 효율성이 낮아진다는 것은 기업의 운전자본이 비대해진다는 의미이며 영업활동으로 창출하는 현금흐름이 경색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HSD엔진의 경우는 다르다. 1분기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196억원으로 전년 동기의 -18억원과 전년 말 -139억원, 전년 총합 -211억원을 모두 웃돌고 플러스로 전환했다. 이를 바탕으로 HSD엔진은 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량이 전년 말 546억원에서 올해 1분기 말 664억원으로 21.7% 늘었다.
재고자산 운용 효율이 낮아졌음에도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증가했다는 것은 영업에서의 이익 창출능력이 개선됐다는 뜻이다. 실제 HSD엔진은 지난해 3분기 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2021년 1분기부터 이어 온 6개 분기 연속 영업손실 기록을 끊고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이후 지난해 4분기 30억원, 올해 1분기 41억원으로 이익을 늘려 가는 추세다.
이러한 이익 창출능력의 개선은 작업량이 늘어나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2021년 이후 HSD엔진의 재고자산을 들여다보면 원재료 재고뿐만 아니라 작업 중인 물량을 말하는 재공품의 재고가 함께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HSD엔진이 작업량 증가를 통해 창출하는 이익으로 재고자산 운용의 비효율화를 커버하는 현 상황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HSD엔진의 공장 가동률이 1분기 말 기준 93.1%로 100%에 가까워져 있기 때문이다.
HSD엔진 측에서는 당장은 걱정이 없다는 태도다. HSD엔진 관계자는 "가동률 100%를 가정했을 때 올해와 내년 예정된 물량은 문제없이 소화할 수 있다"며 "2025년과 2026년에 작업해야 할 물량이 많은데 이에 대해서는 설비투자를 통해 생산능력을 확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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