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조달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업무의 꽃이다. 주주의 지원(자본)이나 양질의 빚(차입)을 얼마나 잘 끌어오느냐에 따라 기업 성장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최적의 타이밍에 저렴한 비용으로 딜(Deal)을 성사시키는 것이 곧 실력이자 성과다. THE CFO는 우리 기업의 조달 전략과 성과, 이로 인한 사업·재무적 영향을 추적한다.
에코프로비엠과 함께 시장에서 주목하는 이차전지 소재 업체인 엘앤에프의 괄목할 만한 성장세 뒤에는 뚜렷한 '투자금 부족'이 있다. 양극재를 공급받은 고객사의 현금 결제가 뒤늦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전방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에 맞춰 대규모 설비투자는 전보다 크게, 그리고 당장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차전지 수요가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엘앤에프는 매출액이 3561억원에서 3조8873억원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4억원에서 2663억원으로 무려 190배 늘었다. 150억원이었던 순손실은 2710억원의 순이익으로 전환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려할 만한 점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전기차와 이차전지 시장의 성장이 초기 단계에 있어 특정 소재 기업에만 의존해 양극재를 확보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오히려 엘앤에프엔 더 큰 성장 기회가 있다. 물론 포스코퓨처엠과 에코프로비엠 등 경쟁사도 마찬가지다.
시선을 이익에서 현금으로 돌리면 달라진다. 2710억원의 순이익을 낸 지난해 엘앤에프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은 마이너스(-) 8643억원이었다. 지난해에 어느 때보다 큰 규모의 양극재 생산과 공급을 했지만 실제로는 8643억원의 현금이 회사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외상 매출과 재고자산 증가가 원인이다. 외상 매출은 이익으로는 그 해에 잡히지만 현금은 뒤늦게 들어온다. 재고자산은 제조하는 데 현금이 투입됐음에도 아직 매출로도 인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금흐름 측면에서는 부정적이다.
지난해 외상 매출로 5720억원의 유입될 현금이 회사로 유입되지 않았다. 이는 사실상 유출로 판단한다. 또한 재고자산 증가로 9673억원의 현금을 사용했다. 총 1조5392억원의 현금 유출이 외상 매출과 재고자산 증가로만 발생했다.
이런데도 생산량 확대를 위해 토지와 생산설비 등 유형자산 취득에 2875억원의 현금을 사용했다. 종합하면 영업활동현금흐름에서 유형자산 취득을 차감한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 1조1518억원인 셈이다.
이는 지난해 사업 유지와 확장을 '필수'로 하는 데 1조1518억원이 부족했다는 의미다. 현금이 부족한 상황에선 내부에 비축해놓은 현금을 쓰거나 새로운 투자자나 금융기관, 채권시장 등 외부에서 현금을 끌어와야 한다. 엘앤에프는 지난해 두 방법을 모두 사용해 현금을 조달했다.
엘앤에프는 2021년에도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 3174억원이었다. 부족한 필수 투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금융기관 대출,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 발행, 신주 발행 등 사용할 수 있는 조달 전략을 총동원했다. 이 결과로 회사 내부에 현금이 쌓였는데 이를 2022년에 곧바로 사용한 셈이다.
관건은 앞으로 더 증가할 필수 투자금을 안정적으로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지속해서 조달할 수 있느냐다. 엘앤에프는 올해부터 내년 8월까지 양극재 설비 확충에 6284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연간 4000억원에 가까운 규모로 지난해보다 설비투자액(유형자산 취득액)보다 크다.
자금 조달 이슈는 지속될 예정이다. 이미 올해 2월 글로벌 전기차 판매 1위인 테슬라와 3조8347억원 규모의 양극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기간은 2024년부터 2025년까지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기존 고객사에 대한 양극재 공급 확대까지 포함하면 사상 최대 설비투자가 계속될 전망이다. 단 원활한 자금 조달이 뒷받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