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업계 선두기업은 1위 아모레퍼시픽과 2위 LG생활건강으로 익숙하다. 하지만 3위에 대해선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순위가 지속 바뀌어 온 탓이다. 애경산업과 에이블씨엔씨(미샤), 클리오 등이 접전을 펼쳐왔다.
그런데 혜성처럼 등장한 기업이 있다. 뷰티테크 에이피알(APR)이다. 지난해 매출(3976억원) 기준으로는 4위, 영업이익(392억원) 기준으론 3위다. 설립 9년 만에 기성업체들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훌쩍 컸다.
성장 공식이 다르다. 직원 평균 연령이 20대 후반에 불과하다. 누구보다 빨리 트렌드와 고객니즈를 읽고 제품화시키는 역량을 갖췄다. D2C(직접판매, Direct-to-Consumer) 시장을 개척한 초기 사업모델이 '다름'을 만들었다. 그렇게 쌓은 고객기반은 히트작을 지속 내놓는 밑거름이 됐다.
최근 유의미한 결과물이 나왔다. 뷰티디바이스 '메디큐브 에이지알(AGE-R)'이다. 출시 1년 반만에 1600억원이 넘는 매출을 냈다. '소수만 누리던 클리닉 서비스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이라는 슬로건으로 내놓은 제품이다. 뷰티시장의 패러다임 전환을 노렸다.
에이피알 최고재무책임자(CFO) 신재하 부사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100조 기업의 공통점 '패러다임 전환'…에이지알로 입증한 가능성
에이피알은 내년 초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하고 있다. IPO는 성장성에 베팅하는 시장이다. 신 부사장은 ‘메디큐브 에이지알’로 성장성에 대한 설명을 대신했다. 뷰티업계의 '게임체인저'가 될 역량이 있음을 입증한 결과물이라는 설명이다. 본래 화장품이 주력인데 디바이스라는 영역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냈다.
신 부사장은 “애플과 테슬라, 넷플릭스, 아마존과 같이 기업가치가 100조원 이상인 기업의 공통점은 기존 패러다임을 전환해 소비자의 생활패턴을 바꿨다는 것”이라며 “APR은 집과 사람에 집중해 패너다임을 바꿀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집이라는 공간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놀이와 문화, 업무에 집중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세탁과 요리, 청소 등 가사노동은 아웃소싱에 맡기는 추세다. 그리고 몸은 주변 모든환경이 디지털화돼도 교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에 착안했다. 고령화시대가 될수록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는 수요도 커질 것으로 봤다.
'집'과 '몸'에 집중해 떠올린 아이템은 뷰티디바이스였다. 집에서 성형외과 시술을 받는 효과를 낼 수 있는 핸드피스 제품을 내놓는다면 패러다임 전환을 노릴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시장조사를 하며 성공을 확신했다. 성형외과 시장을 살펴봤는데 피부미용과 관련해 완전히 장치산업화 돼 있었다. 5억에서 10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장비를 썼다. 당연히 시술비용도 비쌌다. 1회 방문에 70만~90만원이 들었다. 유명 연예인들만 이용하는 수준이었다.
신 부사장은 “소수만 누리던 혜택을 대중화시킬 때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난다”며 “초기 아이폰도 테슬라 전기차도 그랬다. 에이지알을 합리적 가격으로 내놓는 것이 주요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2021년 3월 에이지알 첫 시리즈인 '더마EMS', 2022년 3월 '에어샷·유쎄라딥샷', 같은 해 7월 '부스터힐러'를 출시했다. 모두 20만원 초반대 제품이다. 에이지알은 올 1분기 말 기준 누적으로 80만대를 팔았고, 발생한 누적매출은 1612억원이다.
작년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비결이다. 지난해 매출(3977억원)은 전년에 비해 53.5% 뛰었고, 영업이익(392억원) 176.8% 증가했다. 수익성도 높아졌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9.9%로 전년(5.5%) 대비 4.4%포인트 상승했다.
◇자사몰 글로벌 고객 400만명…뷰티업계의 '넷플릭스'
에이피알의 강점은 D2C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사업자라는 것이다. 기성 업체와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은 알려져 있듯 국내에선 방문판매가 핵심 영업수단이다. 해외선 방문판매가 쉽지 않아 주로 면세점 판매를 이용한다.
반면 에이피알은 사업 초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마케팅을 통해 자사몰로 고객을 유입시켜 제품을 팔아왔다. 자사몰이란 제조사가 스스로 구축한 온라인몰을 뜻한다. 당시 블루오션이었던 SNS 마케팅 시장을 2030세대를 타깃으로 선점하면서 상당한 충성고객을 확보했다. 화장품은 소비자가 한번 만족을 하면 재구매율이 높은 특징이 있다.
자사몰 가입 고객수는 올 3월 말 기준 400만명이 넘는다. SNS에 국경이 없기에 해외시장도 함께 노렸는데 성공적이었다. 국내에서 270만 명을 넘겼고, 해외에서도 140만 명에 육박한다. 유재석 화장품, 김희선 디바이스로 유명한 메디큐브는 110만명을 넘겼다. 작년 매출의 3분의 1 이상이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 일본이 371억원으로 가장 크고 이어 미국(299억원), 홍콩(264억원), 중국(222억원), 싱가포르(120억원), 대만(105억원) 순이다.
신제품을 출시하면 자사몰을 통해 국내외 400만 고객이 인지할 수 있는 구조다. 마치 넷플릭스와 같다. 국내 제작사가 만든 콘텐츠가 글로벌적으로 소비되는 것과 비슷하다. 덕분에 에이지알도 올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274% 늘었다는 것이 신 부사장 설명이다.
뷰티업계의 '게임체인저'가 되겠다는 근거다. 뷰티디바이스가 글로벌적으로도 구조적 성장을 하고 있고, 에이피알은 글로벌 시장을 노릴 수 있는 구조(D2C)다. 더불어 400만 고객이 제공하는 소비패턴(니즈) 정보는 시장공략을 보다 정교히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신 부사장은 “뷰티디바이스 시장은 글로벌 적으로 연평균 25~30% 수준으로 빠르게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미국과 일본은 성형외과 시장에서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에이피알은 에이지알을 화장대 필수품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5년 내 모든 선도 시장에서 1가구 1디바이스(에이지알) 시대를 만드는 게임체인저가 되겠다”고 덧붙였다.
IPO에 대비해 사업고도화도 진행하고 있다. 에이피알은 과거엔 제품을 기획만하고 생산은 외주에 맡겼다. 생산에 필요한 핵심기술과 특허 등을 외주업체가 보유하도록 허용했다. 지난해 R&D 자회사 에이디씨(ADC)를 설립해 핵심기술과 특허에 대한 내재화를 시작했다. 더불어 올해는 직접 생산을 위한 공장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가격경쟁력을 더욱 제고하기 위한 결정이다. 올 1분기 말 기준 현금성자산이 1000억원대라 실탄은 충분하다. 신 부사장은 “디바이스 생산을 내재화해 가격적으로나 생산적으로 초격차를 만들 것”이라며 “디바이스 시장에서 국내에선 1위를 달성한 것으로 보고 있고 3년안에 글로벌에서도 인정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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