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쇼핑은 당기순손실 기조가 7년째 이어지고 있다. 롯데하이마트 영업권, 부진한 점포 유형자산 등을 두고 대규모 손상차손을 계속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에만 5500억원, 지난해는 7200억원을 넘는 손상차손이 빠져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 규모를 유지하려면 손익계산서 바깥의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대만 기업 모모홈쇼핑 지분의 존재감이 크다. 취득할 땐 고작 17억원이었는데 이제 자본 변동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증시가 좋을 땐 대규모 평가이익을 안겼다가 지난해는 수천억의 평가손실을 가져왔다.
롯데쇼핑은 2014년 이후 연결 자기자본을 쭉 17조원대로 유지했으나 2017년 13조원대로 내려앉았다. 사드(THAAD) 사태의 충격파가 본격화한 시기다. 이후로도 자본 규모는 쭉 하향세를 그렸다. 매년 순손실로 출혈이 있다 보니 규모가 깎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21년의 경우 연 6400억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냈는데도 자기자본이 7000억원 넘게 늘었다. 종속회사 롯데컬쳐웍스가 그 해 1400억원의 신종자본증권을 찍어 자본확충을 하긴 했으나 증가 폭을 설명하긴 무리가 있다.
자기자본 하락세를 멈추며 효자 노릇을 한 것은 대만의 모모홈쇼핑(momo.com Inc.) 지분이다. 롯데쇼핑 종속회사인 우리홈쇼핑이 지분 7.92%를 가지고 있다. 우리홈쇼핑은 롯데쇼핑에 2007년 인수됐는데 그 전인 2004년에 모모홈쇼핑 지분을 취득했다.
이때 대만 푸본금융그룹은 홈쇼핑 출범을 위해 국내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여러 기업에 러브콜을 보냈으나 연이은 거절 뒤 우리홈쇼핑이 화답, 17억원을 투자해 1401만4000주(10.01%)를 확보했다.
이후 모모홈쇼핑은 설립 2년 만에 흑자로 전환해 급성장을 시작했다. 우리홈쇼핑이 운영 노하우를 모모홈쇼핑에 전해주고 한때 경영진이 사내이사로 등재되는 등 기여한 부분도 있다. 2012년에는 모모홈쇼핑이 기업공개를 추진하면서 롯데쇼핑 역시 프리IPO(상장전 지분 투자) 형태로 모모홈쇼핑 지분 5.2%를 360억원에 직접 인수했다.
성장에도 불구 모모홈쇼핑 주가는 2019년까지 수년간 200대만달러(TWD) 선을 맴돌았다. 하지만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판매가 늘면서 2020년 600대만달러까지 대폭 뛰었다. 주가가 오르자 롯데쇼핑은 2020년 모모홈쇼핑 지분을 전량 처분해 1700억원의 차익을 챙긴다. 하지만 우리홈쇼핑의 경우 모모홈쇼핑의 추가적인 성장여력을 긍정적으로 보고 지분 매각을 보류했다.
판단은 옳았다. 2021년 대만 증시가 호황을 누리면서 모모홈쇼핑 지분가치가 더 치솟았기 때문이다. 9월 주가가 1800대만달러까지 육박해 피크를 찍었고 우리홈쇼핑은 보유 지분 중 2.1%(380만주)를 장외거래로 팔아 2952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일부만 매각한 만큼 남겨진 지분 7.92%에서도 평가이익이 생겼다. 이 잔여 지분의 장부금액은 2020년 3000억원대에서 2021년 말 1조원으로 대폭 뛰었다. 2021년 롯데쇼핑의 연결 자본총계가 갑자기 늘어난 것도 여기서 발생한 '기타포괄-공정가치금융상품' 평가이익 덕분이다.
문제는 지난해 글로벌 경기 침체에서 대만 증시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모모홈쇼핑 주가 역시 400대만달러대로 하강, 우리홈쇼핑이 보유한 모모홈쇼핑 장부금액은 1조원에서 2022년 연말 460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1년새 5000억원 이상의 미실현 손실이 생긴 셈이다. 취득 당시보다는 여전히 수천억의 지분가치가 불었지만 지난해와 비교하면 반토막이 사라졌다.
이를 포함해 롯데쇼핑은 지난해 기타포괄-공정가치금융상품에서 연결 기준 5400억원의 평가손실이 났다. 이중 일부는 법인세 효과에 따라 이연법인세 자산으로 인식됐고 자본총계에서 감산된 규모는 약 3700억원이다. 지난해 롯데쇼핑의 자기자본이 약 11조였으니 비중으로 따졌을 때는 크지 않다. 하지만 이미 순손익이 마이너스(-3200억원)를 기록했는데 이를 넘는 평가손실이 추가됐다는 점에서 뼈아프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증시가 일부 살아나 모모홈쇼핑 주가도 900대만달러대로 회복했지만 다시 2년 전 수준으로 오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롯데쇼핑의 경우 수년간 순이익이 자본으로 쌓이지 않아서 평가손실에서 오는 변동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